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그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가 차마 더 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그의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인 형과 함께 장애인인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였지만,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그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그는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봐, 혹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하던 날, 그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그를 태운 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그에게 입혀 주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동생을 자랑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그는 시퍼렇게 얼어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앙드레말로의 말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그 후 그는 서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고 국내 대기업의 후원으로 미국에서 우주항공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어머니와 형을 모두 미국으로 모시고 가서 가족들을 보살피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서울대학교 생활수기 공모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사연으로, 필자는 가끔씩 마음이 나약해질 때마다 읽고 또 읽고 있다. 필자도 어린시절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님과 함께 리어카에 무나 배추를 싣고 시장에 가서 팔곤 하였는데, 어머님은 필자에게는 시장의 따뜻한 국수를 사서 먹였지만 정작 본인은 차가운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늘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 마음속에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반드시 성공하여 어머님에게 효도하리라. 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집안을 일으키리라!” 필자의 어릴 적 그 당시에는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열심히 공부하는 길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한번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중간고사 시험기간인데도 불구하고 농사철이라서 어머님과 함께 하루종일 농사일하고 저녁에 시험공부를 하는데 자꾸만 잠이 왔다. 밖에 나가서 우물에 세수를 하고 들어와도 또 잠이 오고 일어나 서서 공부해도 잠이 오고 얼마나 잠이 오던지 도저히 잠을 참을 수 없었다. 필자는 할 수 없이 부엌으로 달려가서 큰 부엌칼을 들고 와서 낡은 나무책상위에 그대로 꽃았다. 그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무언가를 한다면 못해낼 것이 없다고 늘 말씀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내 반드시 이겨내리라 내 반드시 성공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고 아직 큰 성공은 이루지 못했지만, 어린시절 어머님의 모습을 보며 각오를 다지던 그때의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자 하는 필자의 마음은 늘 변함이 없다. 독자 여러분의 어린 시절 삶에 대한 각오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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