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일기
[달구벌아침] 아버지의 일기
  • 승인 2022.08.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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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한 송이 해당화처럼 붉은색 인조 가죽으로 된 겉표지를 슬쩍 들춰본다. 푸른 볼펜으로 써 내려간 글씨들이 주름진 종잇장 사이를 비집고 세월에 풍화된 듯 얼룩져 있다. 아버지의 유품이다. 일기장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인 하구에 다다른 듯, 거센 급물살로 일렁인다. 방구석 저만치에 던져둔 채, 무릎을 꿇고 앉아 마음을 다잡았지만 차마 선뜻 열어볼 수 없다.
1985년 12월 31일
"아무것도 해 놓은 일 없이 한 해가 저문다. 지난날을 돌아보니 큰딸과의 이별이 가슴 아프다. 떠나올 때 누구보다 더 간절하게 보고 싶었는데. 끝내 나타나지 않은 딸애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 안에 전해온다. 언제 철이 들어 이토록 가슴 아픈 아버지의 심정을 알아줄 날이 올는지…. 어디서나 건강해다오 큰딸아. 안녕히 1985년이여."
한 문단을 채 읽기도 전에 몇 번이고 나는 절망한다. 끓어오르는 숨을 고르며 그리움 가득 흘러넘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회한의 눈물이 강물처럼 흐른다. 마음을 가다듬고 일기장을 다시 펼친다. 1985년, 돌아보니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가정형편으로 인해 대학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그때, 졸업식을 코앞에 두고 아버지는 지인이 경영한다는 회사가 있다며 취직을 권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글썽이던 아버지의 충혈 된 두 눈은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당신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가는 비둘기호에 몸을 실었다. 가는 내내 아버지도 나도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가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자갈치시장을 가두고 있던 허름하고 비린내 진동하던 부둣가, 낯설고 물선 초라한 그곳에 내팽개치듯 나를 남겨둔 채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부모로부터 버려졌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올라 다신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연락을 끊었다. 아버지 마음이 내내 고통스럽기를 바라며.
졸업도 시키지 못한 채 딸을 멀리 떠나보낸 삶이었지만 쉬이 형편이 풀리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그 후, 큰돈을 벌어 오겠다며 선원이 되었다. 아버지가 떠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모른 척했다. 배에 오르기 전까지, 행여 내가 올까 하여 목을 빼고 기다렸다며 배웅 나갔던 동생들이 귀띔해 줬지만 안타까운 맘은커녕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꽉 차올라 들끓고 있었을 뿐. 다시 일기장을 넘긴다.
1986년 1월 26일,
"또 한 주가 지났다. 항해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행로와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거친 파도를 지나면 평온한 바다가 있는가 하면 육지에 도달하여 환성을 지르며 행복감에 젖어 들 때도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몸을 가눌 수가 없을 만큼 파고가 높더니 오늘은 제법 잔잔해졌다. 인도양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대서양으로 접어든다. 오랜만에 월력을 보니 다시 또 구정이다. 제사상이며 애들 등록금은 또 어떻게 해결할는지. 언제쯤이면 돈 걱정 없이 살게 될는지…. 아!"
겨우 하루를 읽었을 뿐인데. 또다시 먹먹해진다. 나야말로 되돌리고 싶다. 아버지가 떠나시던 그때 그 부둣가로, 그럴 수만 있다면.
가끔, 중년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벽잠 설쳐가며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할부 인생이라며 기가 죽은 남편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굽은 등을 본다. 아이들의 등록금과 과년한 딸애의 결혼자금을 염려하며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일을 그만둘 수 없다던 그의 걱정처럼 아버지가 차마 다 끌어안을 수 없었던 세상 또한 있었을 것이란 걸.
부모와 자식 간에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빌려주듯 어깨를 내어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삶에 지치고 그리움에 목이 메고 외로움에 두려웠을 가족 간에. 아버지의 힘겨움을 자식이 보는 일이나 자식의 상처를 부모가 보는 일이나 그 무엇 하나 다름이 있었을까. 자식인 내가 늘 기대고 싶었던 아버지의 품처럼 아버지도 자식에게 기대고 싶었던 날이 있었을 텐데.
1988년 1월 16일,
"오늘도 긴 하루였다. 예나 다름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소낙비라도 한줄기 쏟아질 것 같더니 끝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계곡이나 하천마다 흘러온 물줄기를 다 받아주던 바다, 궂은날이나 맑은 날이나 큰딸인 나를 불러 파전에 동동주 한 잔 건네 주고받으며 짠하고 기울이던 건배사처럼 아버지가 그립다. 그럴 때마다 사진 속 아버지를 불러내어 답을 구한다. 꿈속에나 글 속, 무엇보다 내 붉은 지갑 속에 여전히 들앉아 살아계시듯. 돌아가신 지 몇 해가 흘렀지만, 아직 나는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하천의 담수와 바다의 염수가 만나 드넓은 바다로 이어지듯, 아버지의 일기를 닫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저 하늘나라에서도 염려와 그리움으로 빈 들녘의 허수아비처럼 선 채로 계시지는 않을까. 사는 내내, 돌아가시던 날까지도 원망으로 가두었던 아버지를 이젠 흘려보내기로 한다. 저 먼 수평선 노을꽃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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