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집배원이 오는 시간에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가고
뒤늦게 몸은 어슬렁거리며 걸어나가
집배원 오토바이 소리가 어디쯤 있는지를 가늠한다
기껏 온다고 해야
전화요금, 전기요금, 세금고지서나
얼굴도 모르는 청첩장뿐인 걸 알면서도
혹여, 낯익은 목소리 하나 딸려 올지 몰라,
자칫, 그 편지 나를 만나지 못해 반송될지 몰라,
집배원을 기다린다
문득,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물음표 하나에
스스로 겸연쩍은 웃음 매달고
발길을 돌려
노을 하나 걸려있는 원두막을 오른다
어쩌다 억세게 운 좋은 날
낯선 시인의 편지라도 오는 날은
그 편지 한 획 한 획을 따라
몇 번이고 읽으며
나의 노을이 날개를 단다.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및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1986년 시집『너 떠난 자리에』를 상재해 등단. LG산전(주) 전무이사, 서울보건대학 강사 역임.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시집으로『타는 저녁놀』(1988) 등 12권이 있으며, 현재 충북 제천에서 창작 활동.
이 시를 읽노라면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의 서정을 실감케 한다. 갖가지 통신은 물론 영상매체가 시간과 공간을 무너뜨린 오늘의 문명 속에서도 체온이 담긴 `편지’를 기다리는 시인의 삶의 여유와 정감이 물씬 풍기는 시편이다. `낯선 시인의 편지라도 오는 날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 이라는 시인의 노래는 오늘날 현대인이 잃어가고 있는 삶의 정서와 정감을 되짚어 보여 준다.
이일기 (시인·계간`문학예술’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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