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창작랩 안성환 성과전…“수많은 기억 조각들 끄집어 내 시각화”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창작랩 안성환 성과전…“수많은 기억 조각들 끄집어 내 시각화”
  • 황인옥
  • 승인 2022.09.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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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까지
주관적이지만 최대한 객관화
평면 작품과 큐브설치도 병행
관객들 위로·희망 기운 받기를
입주작가작
안성환 작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인간의 삶도 시간을 따라 쉼 없이 흘러간다. 소중한 순간들을 잠시라도 붙잡으려 안달하지만 불가능한 욕망이다. 사진이나 그림 또는 음악이나 글, 그것도 아니면 마음을 빼앗겼던 장소나 물건들로 순간순간을 증명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부차적인 행위일 뿐, 그 어떤 것도 인생 전반을 기록 할 수는 없다.

안성환 작가는 좀 다른 접근법으로 시간의 잔인함에 맞선다. 그가 믿는 것은 기억이다. 기억이야말로 그에게는 삶을 증명하는 완벽한 증거다. 특히 그가 예술로 심화하는 주제는 망각된 기억. 여기에는 비록 망각이라는 강을 건널지언정 그것마저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인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는 그 망각된 기억을 조형언어로 시각화하며 삶의 증거로 제시한다.

기억은 유통기한이 있고, 망각은 불가피한 평상이다. 특별한 기억은 죽음마저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대부분의 기억들은 망각의 강을 지나 소멸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는 망각이 곧 소멸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망각되는 과정에서 무의식을 잠식하고 어떤 기억은 새롭게 가공되어 재 기억 된다고 믿는다. 그 재 가공된 기억들이 내면을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지목한다.

기억은 많은 부분 가공된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일들은 주관적인 감정이나 판단에 의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공되고 왜곡되어 기억된다. 3명이 동일한 사건을 겪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기억을 다시 꺼냈을 때, 세 명의 기억이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그 증거가 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현상을 흔히 목도한다. 작가 역시 기억의 왜곡 현상을 인정한다. 문제는 기억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 할 수 없다는 것. 기억을 말이나 글, 그림으로 전달할 순 있지만 누군가의 기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망각된 기억을 무의식 저 편에서 끄집어 내 그림으로 펼쳐놓는데 작가정신을 발휘한다. 그가 끄집어 낸 기억은 기억의 총체 또는 기억의 덩어리이기보다 기억의 조각이다. “수없이 많은 기억들 중에서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기억은 주관적이지만 그는 기억의 객관화를 추구한다. 망각의 늪에서 기억을 끄집어낼 때 상상을 더하며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애쓴다. 비록 자신만의 시각적인 형태로 서술하지만 내용에서만큼은 객관성을 확보하려 것. 그것이 곧 일반인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전제가 된다고 인식한다. “제 작업은 ‘망각의 기억들이 시각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을까?’를 사유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기억의 조각들은 물감의 중첩으로 위용을 갖춘다. 마음 가는 대로 물감을 캔버스에 뿌린 다음 밀대나 끌로 밀며 밀도를 높여간다. 드러남과 숨김의 반복된 행위 속에서 화면은 보다 단단해진다. 특이한 점은 캔버스를 스스로 제작하는데, 이때 캔버스 천의 앞면과 뒷면을 바꾼다는 것. 매끈한 면이 뒷면이 되고 뒷면이 앞면이 되는 것. “뒷면이었던 앞면은 망각된 기억의 조각이며, 매끈한 뒷면은 의식이 또렷한 기억을 의미합니다.”

평면 작품과 함께 정육면체 큐브 설치 작업도 병행한다. 큐브는 망각된 기억의 백업 파일에 해당된다. 넓고 깊은 무의식의 공간에 저장된 기억들 중 한 조각을 끄집어내 큐브에 백업한다. 정육면체 큐브 설치 작품은 뇌의 정리본능에 대한 형상화다. “뇌는 계속해서 백업 작업을 수행하고 있고, 저는 그런 뇌의 속성을 정육면체 큐브로 시각화해 보았어요.”

기억한다는 것은 기록이며, 기록하는 행위는 과거에 대한 애착의 표현이다. 그는 희노애락(喜怒哀樂) 중 어느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믿으며, 그것이 곧 우리 인생의 총체로 본다. 그가 기억에 접근하는 근저에도 생에 대한 애착이 깔려있다. 많은 경우 기억이 위로가 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곧 더 나은 삶을 향한 또 하나의 열쇠로 작용한다는 믿음이다.

“살다보면 아프거나 지칠 때가 있고, 그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삶과 내면을 채웠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위로받고 새로운 힘을 얻고는 합니다. 제가 작업을 하면서 그런 감정들을 경험했듯이 관람객들도 저의 작품을 통해 위로와 희망의 기운을 받기를 바랍니다.” 안성환 작가가 참여하는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창작랩 성과전은 3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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