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의 추석
영호의 추석
  • 여인호
  • 승인 2022.09.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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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의 추석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버지의 벌초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연필보다 낫자루를 먼저 잡은 것도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20여 기의 산소 벌초를 당신 혼자서 하셨습니다. 속정이 깊은 아버지는 후손이 끊긴묘 두어 기도 함께 벌초를 했습니다. 예초기가 나오기 전까지의 벌초는 낫과 톱, 갈퀴 등으로 사람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고단한 작업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말동무 겸 벌초 보조로 어린 영호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이르게는 추석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벌초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영호가 지게를 진 아버지를 따라 벌초를 할 산소에 도착하면 멀리 경부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이 흐릅니다. 아버지가 낫으로 풀을 베면 영호는 산소 주변의 망개나무(정확한 이름은 청다래덩굴이며 잎에 떡을 싸서 찐떡이 망개떡이다. 실제 망개나무는 따로 있다.) 열매인 망개나 개금나무의 열매인 개금을 따 먹기로 합니다. 자라면서 낫질이나 갈퀴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벌초가 끝나면 추석이 가까워졌습니다.

추석 음식 준비는 어머니의 시간입니다. 영호가 결혼을 한 뒤에는 아내가 도왔습니다. 제사를지내는 집은 세 집에서 네 집이 되었다가 또 세 집이 되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먹지 못했던 기름진 음식을 맛보는 게 추석이었습니다. 어려도 공식적인 음복이 허용되는 날이니 술맛을 조금 알아가는 날도 추석이었습니다. 어쩌다 김천의 아랫장터에서 새 신발이나 옷을 하나라도 장만하는 추석이면 말 그대로 한가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영호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때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벌초를 했습니다. 최근 몇 년의 벌초는 영호와 동생 둘이서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코로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올해는 모두 16기의 산소를 벌초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다녔던 산소들에 합장한 부모님의 산소도 더해졌습니다. 아버지가 했던 후손 없는 산소는 그 자리를 찾지 못해서 더 이상 벌초를 하지 않습니다.

30여 년 전부터 벌초의 필수품은 예초기입니다. 처음 예초기를 사용한 날은 손이 너무 떨려서 수저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초기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합니다. 벌초를 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밭에 난 풀을 제거하는 데도 자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벌초는 평균 10일 이상이 걸렸습니다. 지금 동생과 하는 벌초는 하루면 충분합니다.

9월 4일 일요일에는 김장용으로 8월 13일 토요일에 씨를 뿌려서 키운 배추와 무를 솎았습니다. 물김치를 담기에 적당한 크기로 자랐습니다. 모두가 동생의 지극정성 덕분입니다. 배추와무를 솎고 다듬는 것은 누나들 몫이고 씻는 것은 영호가, 아내는 양념을 준비하는 등의 분업으로 물김치를 담았습니다. 맛있는 물김치를 누나들께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고향집 마당 이곳저곳에 둘러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외가 쪽에 추석 선물을 두 가지씩이나 준비해 준 대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생질녀(큰 누나 딸)인 이수진에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마당에 둘러앉은 모두와도 돌아가면서 스피커폰 통화를 했습니다. 추석을 앞둔 김가네 풍경입니다.

추석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제사가 없는 누나들이 아내와 함께 음식을 장만합니다. 제사는 고향집에서만 지냅니다. 간편하기는 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추석 다음날에는 누나들 식구가 옵니다. 명절마다 선물을 준비하는 이수진의 가족이 올 때도 있습니다. 넉넉한 음식 덕분에 마음이 푸근합니다. 추석 사흘 후가 어머니 기일입니다. 또 추석 같은 음식 준비가 되풀이 됩니다.

벌초를 언제까지 지금과 같이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추석 음식이나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생각해 봅니다. 벌초나 추석 풍경이나 온고지신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도 온고지신이 필요합니다. 영호는 이번 추석에 온고지신을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김영호 대구교대부설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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