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만 주시면 싼 이자로 드리겠습니다’
날개 위에 쓴 일수대출 폰 번호가 빤히 나를 올려다본다
어젯밤 읽다 둔 시집 책갈피, 춘삼월도 아닌데
호롱불 쫓아 날아든 범나비
오토바이 타고 일지매처럼 획획 뿌리는
화투장보다 조금 큰 목단꽃을 표창으로 던지는 것은
사회 윤리에 반하는 불법
그래서 이번에는 범나비를 던진 것이다
그걸 주어 가면 백 장 한 묶음에 백 원을 받는다는 아주머니를
어제 나는 단골 미장원에서 만났다
이 사이로 침 찍찍거리며 던지던 오토바이 주인
그걸 왜 집어 가냐며 큰소리 치길래
‘당신들 이거 불법 아니냐’고 맞불을 놓은 아주머니는
아직도 자신이 목단꽃인 줄 안다
비리의 온상에 그려진 일수대출
목단의 열은 고스톱에선 대접 받지 못했어도
훨훨 범나비 떼 불러들인 게 틀림없다
허리 굽혀 붉은 꽃 한 송이 주우려다
아뿔사! 내가 나비를 잡았다
◇권순우= 경북 의성 출생, 1995년 <대구문학> 수필 신인상, 2019년 <인간과 문학> 시 신인상,수필집 <그리운 날의 비망록>.
<해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며 상가마다 정확히 던지는 날카로운 실력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도 일어난다. 어느 날은 할머니들이 허리를 굽혀 그 카드를 줍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저걸 뭐 하러 줍지? 어지러워진 길거리를 치우는 것인가? 생각했었는데, 그게 백장에 백 원이 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목단 꽃처럼 여린 사람의 마음을 훔쳐버리는 범나비 떼의 음흉한 유혹을 조심해야 할 일이다.
-김인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