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혼자 놀기
[문화칼럼] 혼자 놀기
  • 승인 2022.11.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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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혼자 놀기에 대한 글을 시리즈로 써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혼자 놀기에 대한 나의 화려한(?) 자랑질이 그럴싸 했나보다. 실제로 나는 혼자서도 아주 재미나게 시간을 보낸다. 아니 재미나다는 표현보다는 잘 보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가 혼자 보내는 시간은 그만큼 소중하기도 하고 재충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름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한다. 루틴을 따라하는 것이 아닌 그날 또는 그 때 상황에 따라 마음가는대로 움직이는 편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계획이 별 의미 없다.

그러나 보통의 일상은 이렇다. 외부 일정이 없는 토요일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행복하다. 아침은 간단한 샐러드와 커피 한 잔으로 때운다. 그리곤 집 청소를 한다. 물청소 후 잘 건조된 화장실의 반짝이는 수전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다. 이어서 빨래를 하는데, 건조대에 세탁물을 널 때 걷어 들일 것 까지 생각해서 너는 것이 중요하다. 속옷과 수건 그리고 양말 등을 잘 분류해서 가지런히 널면 나중에 편하다. 청소와 집안 정리가 끝나면 맛있는 점심을 준비한다. 내가 할 줄 아는 요리 종류는 많지 않지만 손맛은 있다고 자부한다. 기름지고 맵고 짠 음식은 피하는 편이라 속이 편한 음식으로 정성들여 차려 먹고 설거지 까지 끝내면 보통은 독서로 이어진다.

햇살 가득한 휴일 오후 거실 바닥에 앉아 고요한 가운데 책을 읽는 시간은 몸과 마음이 이완되고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책 읽을 때는 음악을 잘 틀지 않는다. 그래야 집중이 되고 조금이라도 머리에 남는 게 있다. 최근 기사에 의하면 '멀티 테스킹'이 두뇌를 망친다는 이야기도 있다. 왠지 한 가지만 하면 뭔가 아쉬운 것 같아 음악을 들으며 책이나 신문을 볼 때도 있는데 확실히 집중이 되지 않고 쉬 피곤해 진다. 그래서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책을 보다가 눈이 뻑뻑해 지면 음악을 듣는다. 나는 한 때 성악곡만 들었다. 그것도 모노시대 성악가들의 음반만 사 모으고, 집중해서 들었다. 그 시대 전설의 성악가들은 뭔가 다르다고 느낀다. 한마디로 차고 넘쳐 큰 강물처럼 다가온다. 그러다 우연히 '가을음악'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오케스트라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가을음악이라는 주제는 너무 광범하기도 하거니와 왠지 성악곡은 그런 느낌에 와 닿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쇼팽,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틈나는 대로 들으며 주제에 맞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런 시간을 통하여 나는 교향곡, 협주곡 등 악기가 내는 소리와 친해졌으며 정상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등에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튼 휴일 조용한 시간에는 이런 기악곡을 주로 듣는다. 성악가 출신인 나에게는 성악곡은 감상보다는 분석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해가 기울어지면 산책 겸 시내 나들이에 나선다. 목적지는 영화관과 맛있는 저녁 그것도 혼밥이 가능한 식당이지만 일부러 멀리 돌아서 이곳저곳 둘러보며 가는 편이다. 사실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손님을 반기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1인분씩 주문이 가능한 경우라도 내가 피하는 메뉴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음식 선택에 제한적이고 편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은 귀하다. 따라서 가는 곳은 주로 정해져 있다. 그리고 영화감상을 위해 개봉관도 즐겨 찾지만 예술영화 전용관 동성아트홀을 자주 찾았었다. 지금은 폐쇄되어 매우 아쉽다. 그래서 요즘은 독립영화 전용관 오오극장을 가끔씩 찾는다. 가슴에 여운이 남는 예술영화를 즐겨보는데 이런 영화 한 편은 나의 내면을 채워 주는 것 같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좋은 영화를 감상한 후 걸어서 귀가하는 발걸음은 즐겁다.

때로는 혼자 멀리 길을 나서기도 한다. 혼자서 길을 떠날 때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오가는 차안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감상한다. 그러니 꽤 먼 거리의 여행길도 알차게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그야말로 유유자적이다. 천천히 걸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전통시장도 즐겨 찾는다. 혼자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노라면 온 몸과 마음이 여유롭고 하루가 충만해진다.

가을이 깊어졌다. 아침저녁으론 제법 추운 날씨다. 입동도 며칠 전 지났으니 머잖아 겨울이 올 것이다. 아내와 딸과도 여건이 허락하면 여행을 즐겨 다니고, 맛 집도 일부러 찾아다니는 편이다. 좋은 추억들이 참 많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못지않게 혼자서 보내는 것 역시 소중하다. 이 계절에는 더욱 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서 생각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스스로에게 가장 정직해질 수 있는 이런 시간은 삶에 꼭 필요하고 느낀다. 그러니 나의 혼자 놀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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