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화랑, 류이섭 ‘from the nature’展
동원화랑, 류이섭 ‘from the nature’展
  • 황인옥
  • 승인 2022.11.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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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톱밥, 회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다
톱밥서 자연의 본질 가능성 발견
태초의 모습 구현하려 추상 선택
작가적 해석 들어간 풍경 화폭에
파도인 듯 산골인 듯, 다양한 해석
재료 특유의 물성으로 입체감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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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섭 작 untitled. 동원화랑 제공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낌없이 내어주는 존재로 나무만한 것이 있을까? 살아서는 공기와 그늘을 제공하고, 죽어서는 목재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편익을 위해 자신의 온몸을 내어준다. 심지어 목재를 가공하고 남은 톱밥까지도 거름으로 쓰이거나, 재가공 되어 효용재가 된다. 이만하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표상이자 현자(賢者)의 경지가 아닐는지.

류이섭 작가는 나무의 마지막 순간을 회화와 연결 지으며, 나무와 회화에 새로운 생명력을 확보한다. 그의 의식을 사로잡은 것은 몸값을 자랑하는 목재가 아니었다. 하잘 것 없는 버려진 톱밥. 작업은 톱밥에 접착제나 등의 물성들을 혼합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이후 혼합재료를 캔버스 표면에 손으로 정형이나 비정형의 곡선이나 직선으로 드로잉을 하고 말린다. 마지막은 곱디고운 색을 칠하며 아름다움과 품격으로 빛나는 예술작품으로 완성한다. “톱밥의 부피감이 평면에 입체감을 제공하며 회화에 생명력을 제공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비중으로 회화의 확장에도 기여하게 됩니다.”

톱밥을 핵심 재료로 사용한 지는 7년 정도 됐다. 애당초 톱밥을 회화에 끌어들인 데는 “자연의 감성으로 회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의도”가 컸다. 미술적인 행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주제가 ‘자연’이었고,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가장 원초적인 톱밥에서 ‘자연의 본질’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자연이라는 대상은 범위가 넓고 무한하기 때문에 표현의 제한이 없을 것 같다”는 것도 화가로서 자연에 끌린 이유 중 하나였다.

“철학자들도 거창한 철학을 설파하다가도 결국 자연으로 회귀하는 경우를 더러 보잖아요. 결국 자연은 인간에게 본능인 것 같아요.”

작업의 형식은 드로잉이며, 직선과 곡선으로 구축된 드로잉의 실체는 풍경이다. 하지만 실경이 아닌 추상으로 추출된 풍경이다. 더 본질적인 자연을 담아내기 위해 추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가장 원초적이면서 가장 온전한 자연은 실재하는 풍경의 경지보다 순수해야 했다. 그 순수가 ‘추상’으로 귀결됐다.

그의 작업이 가시적인 풍경보다 비가시적인 자연의 내면을 포착하는데 집중하는 만큼, 스스로 풍경을 해석하는 역할에 비중을 둔다. 풍경을 읽어내는 작가의 주체성이 높은 만큼 작업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이고 사유적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다. 작업에서 진동의 폭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이 진폭을 자유자재로 수용할 수 있는 형식이 그에겐 드로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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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섭 작 untitled. 동원화랑 제공

관건은 “흔들리는 진폭을 어떻게 표면에서 감출 수 있느냐?”다. “자연을 해석하는 저의 감정 상태를 추상으로 표현했을 때 제 감정을 화면에 다 드러낼 수는 없어요. 관람객이 저의 감정에 휘둘리는 화면을 구축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것’과 ‘저것’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중성적인 지점을 찾아야 하죠.”

작업 초기부터 주제는 자연이었다. 주제에 따른 재료적인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고, 자연과 밀접한 재료를 염두에 두고 찾았다. 톱밥 이전엔 얇은 종이나 한지를 물에 풀어 죽처럼 만든 후 물감을 섞어 사용했다. 종이가 그의 의도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듯 했지만, 내심 더 원초적인 재료에 대한 갈망이 없지 않았다. 그 즈음에 우연히 제재소에 버려진 톱밥에 눈길이 갔다.

“톱밥을 보는 순간, 기존에 사용하던 종이와의 연결성도 확보되고, 제가 찾던 ‘원초적인 요소’도 꽤나 만족시키는 재료로 인식됐어요.”

톱밥으로 자연의 감성을 불어넣은 결과, 회화에서 생명력이 꿈틀댔다. 실경이 아닌 본질적인 자연을 염두에 두고 추상성을 확보한 결과였다. 보는 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볼록볼록한 드로잉 곡선은 파도인 듯, 첩첩 산골인 듯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가 “화면에 닮고 싶은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풍경만은 아니”라고 했다. “어느 한 순간, 한 장소에 공존하는 모든 것을 포착해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풍경을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나 대기의 온도, 자연의 파동까지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의 모든 작품의 제목은 동일하다. ‘자연으로부터’다. 시기마다 재료나 표현법이 변화하고, 주제도 더 촘촘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사안마다 세밀한 제목을 붙이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열린 화면을 제공하기 위한 그의 의지가 자리한다.

“제가 제목을 붙이는 순간 관람객들은 그 제목에 끌려들 수밖에 없고, 그들의 상상력은 제한적이 되겠죠. 저는 그 점을 경계하고 있어요.”

색채는 화려하다. 화면에서 색에 대해 거침이 없는 그의 태도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색과 형태를 회화의 구성요소로서 동일하게 인식한 결과다. 그에게 형태와 색은 자연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로 다가온다. “형태와 색에 자연을 인식한 저의 감정 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색에 제한을 두지 않아요.”

작업의 특성상 발색을 위한 선택지는 두 가지일 수 있다. 톱밥과 여러 가지 재료들을 섞는 과정에 색을 입힐 수도 있고, 드로잉이 끝난 후 색을 칠할 수도 있다. 그는 후자를 택한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된 후 화룡점정으로 색을 칠한다. 단색보다 몇 가지의 색이 중첩되지만 마지막 화면은 겹쳐진 흔적만 남기고 중심적인 하나의 색으로 갈무리된다. 칠하고 마르는 반복적인 과정에서 색은 깊이를 더한다.

혼합재료를 물감 대용으로, 붓 대신 몸을 사용하는 것은 회화성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색을 칠하는 행위와 색의 변화를 확인하는 과정 등의 요소들에서 높은 회화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죠.”

그도 구상 작업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자연을 촬영하고 재조합했지만, 구상적인 요소가 강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한 것은 20여 정도 됐다. 계기는 프랑스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다. “한국을 벗어나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싶었”고 경제적인 여건은 열악했지만 결심이 서자 곧바로 출국했다. 결국 프랑스에서 그는 “틀을 깨야한다”는 과제 앞에 섰고, 추상으로 가닥을 잡았다. 프랑스에서 10년 활동하다 귀국했고, 이탈리아와 국내를 오가는 생활을 또 10여년째 이어오고 있다. 틀을 깨기 위한 그의 여정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감성을 주제로 현대사회의 부산물인 ‘톱밥’을 회화 영역으로 끌어들인 류이섭 개인전인 ‘from the nature’전은 18일까지 동원화랑 앞산점에서 열리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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