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문 101, 허남문 개인전 'DMZ서 인간성 회복을 꿈꾸다'
갤러리 문 101, 허남문 개인전 'DMZ서 인간성 회복을 꿈꾸다'
  • 황인옥
  • 승인 2022.11.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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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초소 군복무 경험 바탕
전쟁의 고통·평화 메시지 구현
설치·회화 오가며 전사자 위로
다시-허남문작
허남문 작 ‘그 경계에 서서-비무장 지대’ 연작.

허남문 작가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각 2km로 설정된 907만 제곱킬로미터 지역인 DMZ(Demilitarized zone·비무장지대)에서 군복무를 했다. 그가 본 DMZ의 풍경은 남북이 대치하는 최전선의 삼엄함은 남의 일인 양, 자연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인간의 발길이 끊기면서 가장 최상의 환경이 조성된 것.

그러나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 아래에선 여전히 전쟁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이었다. 세월의 흔적에 삭아 나뒹구는 철모들과 아직도 발굴하지 못한 유해들, 전쟁 발발 이전에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은 마을 터가 70여년 전의 시간에 정지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온 청춘들이 전쟁의 포탄 속에서 스러져 지금도 DMZ 땅 아래서 잠들지 못하고 있고, 그는 그 비극의 현장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긴장과 불안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했다. 그곳에 있는 매순간, 강한 책임의식에 짓눌렸다.

“전쟁에서 돌아가신 군인들에게 엄청난 보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나뒹구는 철모를 보며 하게 됐어요.”

그의 작업은 DMZ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전쟁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비극을 설치와 평면으로 구현한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DMZ 속 자연과 그 아래 여전히 잠자고 있는 비극 사이에서 그는 경계인이었고, 경계인의 시각에서 본 DMZ의 상황을 작업으로 구현했다.

“전쟁에 희생된 군인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어요. 그들을 꿈에도 그리웠을 고향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을 작품으로 승화했어요.”

전시가 한창인 갤러리 문(MOON)101에 설치 작품 ‘그 경계에 서서’가 전시되어 있다. 닥종이로 캐스팅한 철모 40개를 4열로 중앙에 배치하고, 주변에는 낙엽을 깔았다. 철모 위 영상에는 DMZ 공간을 형상화한 하늘이 흘러가고, 이따금 전투기 비행기도 지나간다. 그가 본 DMZ의 풍경이자 DMZ에서 여전히 발굴되지 못한 유해들에 대한 표현이다. “비행기 소리를 듣고 전사자들이 영혼이나마 깨어나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했어요.”

설치 작품이 직접적인 표현이라면 평면 작품은 보다 은유적이다. 캔버스에 색을 올리고 거친 풀로 만든 붓으로 쓸어서 제작한다. 평면 작품 ‘스페이스(space)’다. 점에서 시작한 그리기는 붓으로 쓰는 과정을 통해 선의 형태로 드러나고, 선들의 연결로 하나의 면이 존재감을 발한다. 현실로부터 출발한 공간은 우주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가 “점,선,면 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회화적 요소로 공간을 만든다”고 했다. “선과 선 사이의 경계들에 욕망과 고통, 행복과 희망이라는 인간 삶의 모습들을 추상의 형태로 새겨 넣습니다. 그 모습들이 확장되고 깊어지면 삶의 출발선인 우주의 공간으로 나아갑니다.”

경계는 그의 작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적인 요소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연결하는 지점이자 둘 사이의 화해를 모색하는 중재자에 해당한다. 그는 “경계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면의 경계, 명암의 경계, 공간의 경계, 국가 간의 경계, 사람과 사람간의, 나와 나와의 경계는 존중을 위한 필수 덕목인데, 그것이 변질되어 충돌과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의 지점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에게 경계는 하나의 지점으로 연결된다. 바로 ‘화해’다. 그는 “경계는 화해의 통로이며 인간성 회복의 출발선”이라고 했다. “DMZ에 갇혀있는 유해들을 고향으로 돌려내는 비극에 대한 치유라고 생각해요.”

작업의 재료나 형식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왔다. 캔버스 이전 작업의 재료가 닥종이였다. 스티로폼에 칼로 예리하게 선들을 긋고, 선들 사이에 닥종이를 붓고 말리면 평면이 드러났다. 그 위에 색을 칠하며 완결점을 찍었다. “닥종이는 제 아버님이 닥종이 제조업을 했던 역사와 무관치 않습니다.” 그리는 대신 빗자루 형태의 붓으로 캔버스 표면을 쓰는 행위 또한 어린시절 한옥 마당을 쓸던 기억에서 출발했다.

화면은 단색화 일변도다. 색채에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단색을 선호한다. 2000년도부터 단색을 고집했다. “단색이 사람의 감정을 강하게 건드린다”는 것이 단색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다. 결국 소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색이 사람들과의 교감지수를 높게 끌어올린다는 믿음이 강했어요. 결국 그림은 소통을 전제로 하니까요.”

전쟁의 비극으로부터 출발해 삶과 우주의 공간으로 확장하며 인간성 회복을 염원하는 그의 전시는 2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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