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야기, 조각보 김경희 작가 개인전
박물관이야기, 조각보 김경희 작가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2.12.1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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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조각보를 추구
전통과 현대, 음악과 조각보의 결합
17일까지
김경희 작
김경희 작
 

전시장 벽면에 피아노 건반이 펄럭인다. 흰 천과 검은 천을 바느질로 이어 붙여 만든 조각보의 변형된 버전이다. 또 다른 작품은 평면 액자 속으로 들어가 있다. 일정한 넓이의 띠들을 씨실과 날실 직조기법으로 교차한 격자 형식의 작품인데, 반부조처럼 액자 속에 구현했다. 작업에 사용되는 띠는 전통보자기의 끈의 일종이다. 조각보 작가 김경희가 전통 조각보를 재해석한 작품들인데, 작품의 뿌리인 전통 조각보의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할 만큼 간결하고 현대적인 미감으로 넘실된다. 복합문화공간인 박물관 이야기에 그의 보자기 예술작품 20여 점이 걸렸다.

시작은 미약했으되 그 끝이 창대한 것으로 전통보자기만 한 것이 있을까? 옷을 만들고 남은 쓸모없는 자투리 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이면 형형색색의 밥상보나 패물보, 보따리 등의 조각보가 됐다. 생활용품으로 사용됐던 전통 조각보의 아름다운 예술성이 재평가된 것은 현대에 와서다. 어머니들의 억척스러운 생활력이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환골탈태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희 작
김경희 작

한국인들은 전통 조각보에서 누군가의 미술작품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네델란드 화가인 몬드리안이 삼원색과 무채색을 활용하여 직선과 직각의 구성으로 질서와 균형을 추구한 추상미술의 하나인 신조형주의 작품들이다. 세계적인 추앙을 받는 그의 미술보다 훨씬 이전부터 만들었던 전통 조각보가 예술은커녕 생활용품 중에서도 보잘것 없는 용품에 불과했다는 것은 인지하면 선조들의 미적 감수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무명(無名)의 조각보에조차 아름다움의 가치를 투영했기 때문이다.

김 작가 보자기 예술의 출발도 전통 조각보였다. 시어머니가 전통 조각보 명장이었고, 시어머니의 일을 돕기 위한 보조를 하면서 전통 조각보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머니 작업을 도와드리는 것을 넘어서 제 스스로 보자기 예술의 주체가 되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김경희 작
김경희 작

 

전통 조각보를 기반으로 하는 조각보 작가라면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등하기 마련이다. 그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는 전통 조각보를 현대미술의 연장선에 바라보았다. 캔버스를 천으로, 물감을 실과 바늘을 활용한 바느질로 대체하지만 최종적인 화면은 현대미술의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추세를 따른다. 가장 눈길을 끄는 변화는 색채와 조형미에 있다. 전통조각보의 화려한 오방색의 향연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그는 흑백의 조화를 통해 단색화에 집중한다. 배경은 동시대 미술에 대한 지향과 맞물린다. “저의 조각보는 동시대적인 현대적 미의식 추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조형미 또한 전통 조각보를 넘어있다. 피아노 건반을 천과 바느질로 구현하기도 하고, 흰 띠와 검은 띠를 격자 형식으로 교차시켜 세련되고 현대적인 조형미를 획득하기도 한다. 바느질한 흔적이 드러나는 뒷면과 드러나지 않는 매끈한 앞면을 뒤바꿔 뒷면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바느질 재료인 천도 비단과 마의 혼합직물인 갈포 비단을 사용하고, 바느질 대신 손으로 띠를 교차시키는 새로운 기법도 적극 활용한다. 그는 “현대미술의 경향은 ‘어떤 것이든 미술이 될 수 있다’는 태도가 지배적인데, 나의 보자기 예술 또한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전통과 현대, 음악과 미술, 미술과 바느질의 결합을 통해 저만의 개념을 설명하고 새로운 조형성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와의 융·복합에 열려있는 태도는 그의 남다른 이력과 맞물린다. 그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피아노와 함께 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공부하며 음악적인 사고나 원리에 자연스럽게 흡수된 그가 결혼 후 시댁의 가풍에 이끌려 조각보에 매료되었지만 음악적인 감수성과 기질이 조각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음악과 조각보를 모두 섭렵한 저의 특수한 상황들이 전통 조각보로 출발한 저의 조각보를 현대미술의 범주로 격상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김경희 작가가 박물관이야기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각보를 시작하면서 전문성 확보를 위해 공부도 본격화했다. 그는 부산 동아대학교 조형디자인 석사(섬유)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 박사(섬유예술)을 졸업했다. 부산 갤러리 아트숲, 서울 이화 아트 갤러리 등에서 4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한국 섬유미술 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부산 주천 조각보 박물관 실장으로 재직하고 있고, 부산 동서대학교 패션 디자인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면서 그의 조형미는 반복된 기하학적 형태와 작업에서 발생한 바늘땀의 규칙적 리듬감으로 드러났다. 또한 조각천 사이에서 드러나는 시접의 처리 방법에 따라 단순한 시각 이미지를 다양하게 시각화하기도 한다. “일반적 바느질 기법인 홈질에서 확대되어 저는 보다 손맛이 강한 감침질을 합니다. 회화의 붓질처럼 저의 손맛이 감침질이 훨씬 더 수용하기 때문이죠. 이것처럼 저는 조각보를 바느질이 아닌 회화의 범주에서 해석해 갑니다.”

조각보의 어떤 매력에 끌려 조각보 예술가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는 “바느질을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우기 일쑤”라고 했다. 무엇보다 수정이 용이하다는 점도 조각보의 매력 중 하나로 꼽았다. “저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형태를 만들어 갈 수 있고, 얼마든지 변형도 가능한 것이 조각보의 장점이죠. 작가가 제어 할 여지가 높죠. 더 크게 집중하거나 더 적게 집중하거나 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조각보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조각보에 음악을 접목하고 바느질이 일정하지 않아도 그것마저 수용한다. 이런 태도는 조각보를 내적 표현이나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그의 소신으로부터 왔다. 그는 자신의 조각보를 “내 감정 상태가 하루 하루 기록되는 일기”라고 했다. “20대의 바늘땀이 다르고, 30, 40대의 바늘땀이 다릅니다. 숙련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원숙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저는 계속에서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만 저의 이야기가 배어있는 저만의 조각보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조각보의 창조적 계승을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로 삼아 작업하는 김경희의 박물관 이야기 개인전인 ‘보자기 그 넘어’ 전은 17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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