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해...화폭 붉게 물들인 일출 보며 새해 힘찬 다짐
[박승온의 민화이야기] 해...화폭 붉게 물들인 일출 보며 새해 힘찬 다짐
  • 윤덕우
  • 승인 2023.01.1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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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
사실주의적 전통 화법 거부
해돋이의 전체적 인상 표현
조선 대표 화가 현제 심사정
화면을 상중하 3단으로 구분
해·파도·잉어 섬세하게 담아
故 이건희 기증 ‘해학반도도’
환상적 경치는 연하장에 딱
2023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다. 필자 나름의 각오와 다짐이 필요해 12월 마지막 날 해맞이 일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자기에게 가장 솔직해 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일출 여행의 의미는 한해가 가고 또 새해를 맞을 때도 소중한 사람과 더불어 꿈을 말하고 희망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2023년 1월1일 아침 6시 부산 영도 해맞이 장소로 정한 곳은 해양대학교 방파제 언덕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구름 없는 하늘도, 모여 있는 사람들의 기운도, 해맞이 행사장의 떠들썩한 분위기도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조건이 다 마련되어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 아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 모네의 해돋이 그림이 떠올랐다.
 

모네작인상해돋이마모땅
<그림1> 모네(Claude Monet) 작 인상, 해돋이(Impressionism, Sunrise),1872, 캔버스에 유채, 50x65cm 프랑스 마르모땅 모네미술관 소장.

서양의 회화사에서 자연의 풍경이 인물의 배경 차원을 넘어 본격적으로 작품의 중심적인 주제가 된 것은 19세기 초 자연주의에 이르러 시작되었다.

밀레, 코로, 루소 등의 화가들은 빛을 관찰, 연구하면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아 자연을 표현하지만 자연주의의 사실성과는 분명히 다른 예술, 인상주의(Impressionisme)가 드디어 도래했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 표현이 아닌 어떤 대상을 보고 화가가 느낀 주관적인 느낌대로 그림을 그렸던 에두아르 마네를 시작으로 하여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 많은 화가들이 동시대에 쏟아져 나왔다. ‘인상주의’라는 말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1874년 ‘무명 화가, 판화가, 조각가 협회 독립전시’가 사진작가 펠릭스 나다르의 아틀리에에서 열리게 되었고 여기에 모네도 참여했고 이때 “인상, 해돋이(Impressionism, Sunrise)”도 전시 되었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 모네가 외젠부댕에게 그림을 배웠던 르아브르(Le Havre) 바닷가의 해돋이 모습을 그린 것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모네는 해돋이의 사실성을 그려낸 것이 아닌, 해가 떠오르면서 그의 눈에 담긴 변화하는 빛의 순간을 포착하여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데 비평가이자 기자였던 루이 르로이(Louis Leroy)는 본 작품을 보고 “인상적이다”라며 비아냥거리면서 이것은 아기 수준의 벽지만도 못한 그림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이러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던 작가들을 ‘impressioniste’라고 부르기까지 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인상주의’라는 예술 사조의 이름을 낳게 만든 사건이 되었다.

이제 우리 그림의 역동적인 일출을 소개한다.
 

심사정작어약영일간송미술관소장
<그림2> 심사정 작 어약영일(魚躍迎日) 1767년 제작 지본담채, 129×57.6㎝,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6명 중 한명인 현제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의 그림으로 ‘어약영일(魚躍迎日)‘도는 거센 물결 속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를 향해 뛰어오르는 잉어 한 마리를 그린 그림이다.

이런 그림들의 기원은 중국 황하의 용문을 뛰어 넘은 잉어는 용으로 변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등용문(登龍門) 고사로 널리 알려진 과거급제 기원 그림이다. 화면 위쪽에 “정해 춘중(丁亥春仲) 위 삼현 희초(爲三玄戱艸) 현재(玄齋)”라고 써넣어 심사정이 회갑 된 해인 “정해(丁亥, 1767)년 2월 삼현(三玄)을 위해 장난삼아 그리다. (丁亥春仲爲三玄戱艸)”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후배의 등과(登科)를 기원하기 위해 그렸음직도 한데, 삼현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과거 준비생이었던 것 같다.

화면 하단 부분 해를 향해 뛰어오르는 물고기는 비범하게 잘 생겼다.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안 되지만 격랑의 파도와 기세 충만한 해돋이의 장관과 결합해 잘 어우러져있다. 이런 착상을 화면에서 예술적으로 승화시켜낼 수 있는 화기(畵技)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도 심사정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수염 하나 측선(側線)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려낸 잉어의 사실적인 묘사나, 길고 짧은 필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역동성을 잘 살려낸 수파(水波)의 모습, 적재적소에 베풀어진 능숙한 선염(渲染)에서 현재의 원숙한 화기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또한 화면 하단부터 점차 넓이를 줄여가면서 상중하 3단으로 화면을 분할하였는데, 이는 잉어가 뛰어 넘어야 할 3단계의 폭포를 암시하는 동시에 드넓은 수면과 반복적인 형태의 수파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단조로움을 보완하며 이 그림의 묘미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자칫 촌스럽게 되기 쉬운 붉은 해는 거의 다 떠오른 우아한 둥근 모습으로 은은한 서기(瑞氣)가 감돈다. 새해의 다짐을 담을 그림으로도 더없이 훌륭해 보인다.
 

핵학반도도-국립중앙박물관
<그림3> 작가미상, 해학반도도 병풍(海鶴蟠桃圖 屛風), 157.2x295.6cm, 견본채색,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다(海)와 학(鶴)과 복숭아(蟠桃)를 중심으로 해, 구름, 산, 불로초 등 장수의 상징물들이 그려진 그림을 뜻한다.

위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이건희 회장 기증전”에 나온 작품으로 그림의 분위기는 딱 봐도 새해 연하장의 배경으로 쓰일 듯한 장면이다.

저 멀리 치솟은 바위산 중앙으로 붉은 해가 떠올라 불그스름하게 물든 대기 속에 환상적인 경치(仙境)는 모네의 일출그림과 심사정의 격동적인 일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지만.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오래살기를 바라는 희망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저 붉은 해 안에 담겨 있는 것 같다.

2023년 새해 해맞이는 필자에게는 생애 처음 경험하는 장면이었다. 기상청에서 예고한 시간에 어쩜 그렇게 딱! 떠오르는지…. TV에서 나오는 일출의 장면과는 그 감동의 무게가 달랐다. 그 빨간 해를 보면서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해본다. 사람 구실, 나이 값은 제대로 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 나가다 보면 앞서 보여드렸던 일출의 그림들처럼 인상적이고, 격동적이고 그러면서도 조용히 평온하게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마무리 할 수 있을 듯하다.

박승온ㆍ사단법인 한국현대민화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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