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철 작가 개인전…28일까지 갤러리 토마
이영철 작가 개인전…28일까지 갤러리 토마
  • 황인옥
  • 승인 2023.01.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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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세계서 우리가 염원하는 이상세계 찾아”
시적인 감성·동심 조합 풍경 구축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중성적
글 기록 후 스케치하고 캔버스로
중학교 시절 글짓기대회 장원도
관념 소재에 한국화 표현 기법
벽화·강연 통해 재능 사회 환원
꽃랑이 이영철 작 '봄소풍'.
이영철 작 ‘봄소풍’

이영철 작가의 풍경이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속 가상의 선경(仙境)인 이상향을 닮았다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을 얻는다. 표현기법에서 동양회화와 서양회화, 시대적 배경이 과거와 현재라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도원화기’ 속 중국 후난성의 어부가 발견했다는 복숭아꽃 만발한 낙원의 순수를 이영철의 풍경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도연명의 이상향이 현실 너머의 완전한 세계를 의미했다면, 이영철은 인간이 그토록 갈구하는 이상향인 희망과 사랑, 행복의 충만한 세계를 현실에서 발견한다는 것이다. “저는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염원하는 이상세계를 찾아갑니다.”
 

이영철 작 '연가-꽃 달 별들의 밤'.
이영철 작 '연가-꽃 달 별들의 밤'.

 

◇ 순수한 동심으로 표현하는 자연풍경

그림의 소재는 자연이다. 들꽃, 호랑이, 새, 섬, 달, 나무 등의 자연물들이 풍경을 구성하는 개체들로 선택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연 풍경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다. 그의 풍경에는 시적 감성과 동심이 아로새겨져 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시적인 감성과 동심을 조합하여 하나의 풍경을 구축하는 것이 그만의 특화된 구성법이다.

그의 풍경에서 심상으로 전달되는 정서는 순수다.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놀이처럼 그렸던 순수가 풍경을 감싼다. 노련한 화가가 그린 동화라고 할 만큼 그의 풍경들은 잠자고 있던 저 먼 기억 속 유년기의 순수한 감성 세포들을 일깨운다. 하지만 결코 어눌함으로 치우치지는 않는다. 그는 세련되고 절제된 동심의 결정체로 풍경들을 시각화한다.

“어린시절의 동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가정으로부터 그의 그림은 출발한다. “80살 된 노인이 어린 시절 친구를 만났을 때 순간적으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현상 속에 내재된 동심이 있습니다.”

이영철 작 '호기심심'.
이영철 작 '호기심심'.

 

◇ 그리움을 동심의 순수로 승화

이영철 개인전이 갤러리 토마에서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자연을 동심의 세계로 표현한 작품 30여점을 출품했다. 자연과 동심을 그림의 소재로 채택한 이면에는 아련한 슬픔이 자리한다. 시리도록 순수한 동화같은 풍경의 내면에 곰삭은 그리움이 있다. 그는 유년기에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을 잃었고, 일찍이 처절한 이별 앞에 서야 했다.

떠나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의식 한 켠에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반짝이다, 그림을 만나 큰 불씨로 키워내고 있다. 그의 반짝이는 풍경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떠나가기 전의 행복했던 시절과 맞닿아 있다. “수면 아래 잠자던 그리웠던 풍경들을 화폭에 옮겨요. 슬픔이 정화된 제 심상의 풍경들이죠.”

진한 그리움과 이별의 슬픔이 그림의 밑바닥에 깔려 있지만 풍경 속 대상들은 평화롭다. 치열함 삶의 현장보다 어린시절 기억 속 순수했던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비결은 슬픔을 순수 로 치환한 정화(淨化)에 있다. “정화된 순수한 감정이 표현한 풍경에 현실세계의 복잡함을 굳이 개입시킬 이유는 없었어요.”

그에 의해 정화된 풍경은 다분히 중성적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다. 익살스럽지만 사랑스럽고, 귀여운 듯하지만 진지하고, 아련하면서도 친근하다. 실제 대상들도 매화꽃인가 싶으면 복사꽃 같고, 호랑이인가 싶으면 고양이가 스쳐갈 만큼 중성적이다.

그는 “어떻게 보든 감상자의 몫”이라는 입장을 취하지만, 해석의 여지가 넓힌 것은 작가의 역량이다. “사람들에게 섬을 떠올리라고 주문했을 때, 각양각색의 섬을 상상합니다. 저는 제 그림에서 그 수많은 상상들을 모두 열어두고 싶었어요.”

그의 풍경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구성력이다. 호랑이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달빛이 비추는 바다 위 섬에 매화꽃이 만발한다. 미루나무 아래 노랑머리 소녀의 머리 위엔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어린 호랑이가 얹혀있고, 구절초 만발한 들판에는 남녀 한 쌍이 초승달 아래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 그림과 문학이 하나의 세계로 연동

풍경 속 대상들의 구성력에 따라 한 편의 동화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자박거린다. 모두 어린시절의 아름다웠던 기억과 연동된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밥이 식지 않도록 이불 밑에 둔 밥이 달과 같았던 기억을 떠올려 구절초를 고봉으로 그려 넣습니다.”

그가 “그림 이전에 글이 먼저”라고 했다. 화가 이전에 문학가이기도 하다라는 의미였다. “평소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나 감정들을 글로 기록하고, 그것을 글 옆에 스케치로 시각화하고, 캔버스에 옮겨 그립니다.” 글이 먼저여서 그림을 그리기 전 이미 제목이 결정된다.

제목이 명목상의 설계도가 되지만, 실질적인 설계도는 글과 글을 토대로 그려놓은 스케치다. 순수한 동심을 표현한 이면에 차갑고도 지적인 이성의 작용이 있다는 이야기다. “철저하게 계산되지 않으면 순수한 동심을 표현하기 힘듭니다.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 버리죠.”

문학적인 재능은 중학교 때 이미 비집고 나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산골 소년이 김천의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자 목말랐던 문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무시로 드나들었고, 그때 문학도의 꿈이 커져갔다. “중학교 시기에 그림 뿐만 아니라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도 장원을 할 만큼 글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았어요. 하지만 결국 미대에 진학했죠. 그림에 대한 갈망이 더 컸던 것이죠.”

대학 졸업 후 전업 작가로 살아가지만 그에게 글과 그림은 이미 내면에서 일체형으로 탑재되어 있다. “상상이 글이 되고, 글이 그림으로 표현되니 결국 글과 그림은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그의 창작활동에서 그림과 글을 둘로 나눌 수 없다는 증거는 그의 저서들에서 이미 증명된다. 그는 그림에세이집 ‘그린 꽃은 시들지 않는다’(2011)와 ‘이영철 화집’(2022)을 출간했다. 혜민스님이 쓴 명상치유 에세이집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7)과 ‘혜민스님의 따뜻한 응원’(2022)에는 그의 그림을 싣기도 했다.

◇ 순수한 동심에 이입된 동양철학

그림의 내적 기반은 단순 풍경을 넘어선다. 그의 그림은 동양철학의 보고다. 어린아이의 동심 속에 사실은 심오한 동양철학이 차고 넘친다. 철학적인 담론들은 풍경 속 대상들에 직간접적으로 대입된다. 첫사랑의 표상인 남녀 한 쌍을 풍경 속 수많은 구절초 중 하나처럼 작게 표현하고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동양적 자연관을 피력하거나, 빛나는 달은 태양이라는 존재에 의해 달이 빛난다는 겸손의 가치를 강조한다. 더 넓게 펼쳐지는 꽃밭이나 풀밭은 무릎까지의 길이로 표현하며 차오르는 욕망에 대해 경계하고, 밥공기에 구절초를 고봉밥처럼 표현하고는 개별적인 존재들의 위대성을 강변하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동화같은 풍경이지만 그 속에는 불교철학이나 노장사상이 있습니다. 결국 극과 극은 통하니까요.”

철학적인 주제는 무거운 추상이 제격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풍경을 고집한다. 이때 강도 높은 노동은 그가 자처한 수고로움이다. 그는 수천, 수만 송이의 들꽃 송이의 섬세한 붓 터치로 사랑스럽고 예쁜 화면을 완성하며 철학적인 주제들을 시각화한다. “섬세한 기질과 예쁜 것을 좋아하는 타고난 성향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진정성이 극대화 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시류에 따라 제가 타고난 기질에 반하는 그림을 그렸을 때 과연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라고 자문했을 때 저는 아니라고 보았어요. 저의 본성대로 그리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믿었죠.”

그가 그린 심상의 풍경은 현대화된 전통한국화다. 선과 여백, 먹과 명암, 관념적인 소재로 불교철학이나 유교, 노장 사상을 시각적으로 서술한 한국화의 정신과 표현기법을 차용한다. 색채 또한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며 전통 한국의 미(美)를 적극 수용한다. “서양의 재료로 표현하지만 결국 한국인이기 때문에 우리 것에 기반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동심 풍경에 사랑과 행복의 가치 심어

이번 전시 제목 ‘사랑, 봄 소풍’에 동화같은 순수한 그림을 추구하는 그의 속내가 숨어있다.

동심이 향하는 손끝에 희망과 사랑, 행복의 가치들이 자리한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꿈, 사랑, 우정, 여우, 웃음, 열정 등의 가치 회복이야말로 그가 그리는 이상향이자 동심의 세계다. 불현 듯 그가 “화가는 세상에 온 모든 생명이 사랑으로 지구별에 찾아와서 사랑으로 행복별을 소풍 다니다가, 사랑으로 우주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꿈을 꾸고, 그 꿈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화가로서 저는 사람, 나무, 풀꽃, 길냥이, 강아지풀 등의 지구별 생명체(Earthlings)가 서로 돕고, 위로하며 대양심(大洋心)으로 하나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의 그림에서 핵심 주제인 사랑은 실천적인 행위로 가시화되기도 한다. 그는 벽화 사업이나 오지 강연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재능의 사회 환원을 실천한다. 그런 행보를 통해 자신의 그림에 보내는 대중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결국 그는 화가이자 문학가이며 또한 구도자였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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