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시집 ‘환승역, 고흐’가 싹틔운 인세 2,160원
[화요칼럼] 시집 ‘환승역, 고흐’가 싹틔운 인세 2,160원
  • 승인 2023.01.1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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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죽음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인정하고, 정면으로 응시하면,
죽음이라는 불안과
삶의 좀스러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그제야 나는 마음껏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플라톤이 2500년 전에 물었던 ‘존재의 의미’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다시 물었다. 하이데거가 쓴 대표작 ‘존재와 시간’은 플라톤의 구절을 인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오늘날 우리는 ‘존재한다’는 말이 본래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가?” 그는 물음에 답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다시 질문은 이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존재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 당혹스러움에 빠져 본 적이라도 있는가?” 그의 답은 여전히 단호하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하이데거는 철학적 사유의 근원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바라본다. 그의 물음은 궁극적이고 포괄적이다.

하이데거는 세계를 온전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현상학을 동원한다. 그는 오늘 나에게 묻는다. “그대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가?” 현상학은 “자기 자신을 현시하는 그것을, 그것이 자기 자신의 편에서 자기 자신을 현시하는 그대로 그것의 편에서부터 보이도록 한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한 통의 카톡으로 ‘나 자신에 즉해서 나 자신을 현시하는 일’이 있었다. 근년에 발간된 적 있는 나의 시집『환승역, 고흐』가 출판사에 의해 최근 전자책으로 발간되었고, 고객의 주문에 따른 판매 인세가 발생하였다는 내역 보고서가 날아든 것이다. 통장에 찍힌 인세 금액은 2,160원, 적나라하게 나 자신을 깨우쳐 보여주는 초라한 현시다. 뜻밖의 일로 나를 돌아보게 된 미약한 숫자 앞에서 결코, 나는 비참하지 않았다. 출발의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길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존재자로서의 시작이라는 것, 그 냉철함,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너끈하다.

도서출판 학이사에서 보내온 카톡 내용을 새해 벽두에 꺼내 읽으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시인님! 안녕하셨습니까? 올 한 해도 저희 학이사를 보살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전자책 판매 인세 송금 내역입니다. 너무 적어 죄송하지만, 누군가가 이렇게라도 읽는다는데 위안을 받습니다. 새해 온 가족이 더욱 건승다복하시길 바랍니다.” 신중현 대표의 인사글이다. 편지 아래에는 전자책 인세 보고 내역이 첨부되어 있었다. 출간일, 판매기간, 판매가격, 판매채널, 인세송금내역 등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깨알같은 내용과 깔끔한 일처리 방식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의 단면을 읽는다. 비록 인세 숫자의 자릿수는 미약하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이름이 호명되고, 어디선가 나의 시를 사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음을 깨달았다.

삶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단어와 싸우는 시인, 또는 작가, 그가 특정한 존재자의 영역을 의미하는 세계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는 누군가에 의해 세상에 던져진 존재자의 총체로서의 세계일 뿐이다.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세계에 대해 주목한다. ‘인간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 세계는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세계를 의미하며 그것은 우리 스스로 현상학적 방법으로 직접 대면을 통해 생성된다. 그래서 하버마스(Habermas)는 하이데거 철학의 공헌을 과학에 의해 식민지화되어 가고 있는 일상 세계의 위기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했던가. 일상의 삶 속에서 만나는 세계를 직시하라는 묵언을 듣는다.

하이데거는 다시 철학의 종말을 주장하고 철학의 자리에 예술을 등장시킨다. 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과 근원에 대해 실제 예술작품으로부터 묻는다. 진리의 생산은 예술가의 몫이 아니다. 예술가는 작품 안에서 세계와 대지의 내밀한 통일과 투쟁으로 격돌하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는 탄생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생성하는 존재자의 ‘개시성(開示性)’이야 말로 예술가 또는 예술작품으로 호명되는 최종 근거일 것이다. 다시 붓끝 다듬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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