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금호 섶에는 갈대가 천지삐까리…갈잎이 노래하네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금호 섶에는 갈대가 천지삐까리…갈잎이 노래하네
  • 김종현
  • 승인 2023.01.3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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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금호갈대밭, 바람소리, 새 노래, 넘실거림 그리고 갈대풀피리
갈대란, 물 섶에 자란 가로 풀
문발·울타리·떼배 등으로 사용
금호 섶 노곡을 ‘갈골’이라고 해
그리스신화 등에도 갈대 등장
민초들, 갈대밭에서 생계 의지
어린 순·뿌리로 김치·삶은 나물
약용으로 해독제 등에 사용
줄기로는 채반·함·삿갓 만들어
금호갈대밭
금호 갈대밭 그림 이대영

◇갈대가 손짓하고, 노래하는 금호강

갈대(蘆葦, reed)란 물 섶에 자란 가로 풀을 칭하며, 여기서 갈이란 강, 거랑(걸), 호수 혹은 강을 칭하는 말이다. 가로 풀(대)이란 문발, 울타리, 갈대떼배(葦舟), 지붕이영, 삿자리(시신을 싸는 갈대자리)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한다.

선비들은 갈대 붓(葦筆, reed pen), 갈대피리(萎箸) 등을 만들었다. 갈대마을 혹은 갈마(강섶마을), 갈대밭, 노위(蘆葦, 북한어론 로위), 가로(삿자리용 갈대)밭 등이 갈대에 연유하고 있다. 강(개울, 걸, 거랑, 거렁 등)을 가람이라고 했으며, 한양 한강을 한가람(한가람)이라고 했다. 불교사찰을 승가라마(僧伽羅摩)의 준말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삼천 대천 세계 안팎에 있는 산이며 수풀이며 강이며 바다며(三千大千世界)”는 14487년 발행된 석보상절(19:13)의 구절이다. “강 위에 또 가을빛이로되 불같은 구름은 끝내 움직이지 아니하도다.”는 1481년 간행된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 초간본(25:25) 구절이다.

금호(琴湖江) 섶에는 갈대가 대구사투리로 천지삐까리였다. 금호 섶 노곡(魯谷)을 조선시대문헌에서는 ‘갈골(蘆谷)’이라고 했다.

갈대는 그리스신화에서 “거인 포리페모스(Polyphemos)가 바다의 신인 갈라티아(Galatia)를 사랑했는데, 어느 날 포리페모스는 목동 아키스의 품에 갈라티아가 안겨있는 꿈을 꾸자 질투에 불타 그 날 그를 살해했다. 갈라티아는 아키스의 피를 강물로 바꾸었는데 이때 아키스의 모습이 강물에 비추자, 갈라티아는 만져보려고 손을 뻗는 순간 어깨에서 갈대가 돋았다고 한다.” 또한 갈대 피리를 처음 연주한 사람은 사티로스 판(Satyr Pan)이었다. 판이 아름다운 요정 시링크스(Syrinx. 갈대라는 뜻)를 쫓아가 그녀를 끌어안으려 하자, 판(Pan)을 좋아하지 않는 시링크스(Syrinx)는 강의 신들에게 기도를 했고 사랑스러운 갈대로 변해버렸다. 이 정도의 그리스신화에 비하면, 금호(琴湖)의 연유를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중국 악기)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물이 맑고 잔잔하다.”는 표현은 너무 사실적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 봉상왕(烽上王)을 폐위시키고 을불(乙弗)을 옹립할 때, “국상(國相) 창조리(倉助利)가 가을 9월에 후산(侯山)의 북쪽 사냥터에서 뒤따르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같이하는 자는 내가 하는 대로 하라고 하면서, 갈대잎(蘆葉)을 모자에 꽂으니 사람들도 모두 따랐으므로, 마침내 왕을 폐하고 미천왕을 옹립하였다.”라고 돼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사이를 막고 있는 갈대밭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 “짙푸른 갈대, 흰 이슬 서리가 되었다. 내가 말하는 그 분, 강물 저 한 쪽에 계시네. 물결 거슬러 올라가 그분을 따르려 해도, 길이 험하고도 멀도다. 물결 거슬러 헤엄쳐 그분을 따르려 해도, 희미하게 물 가운데 계시네. 무성한 갈대, 흰 이슬에도 아직 마르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그 분, 물가에 있다. 물결 거슬러 올라가 그분을 따르들려 해도, 길이 험하고 비탈졌네. 물결 거슬러 헤엄쳐 그분을 따르려 해도, 멀리 모래섬 가운데 계시네. 더부룩 우거진 갈대, 흰 이슬에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그 분, 물가에 있다네. 물결 거슬러 올라가 그분을 따르려 해도, 길이 험하고 오른쪽으로 돈다. 물결 거슬러 헤엄쳐 그분을 따르려 해도, 멀리 강물 속 섬 가운데 계시네.”

또 다른 하나는 아무리 멀다고 해도 갈대떼배(葦舟) 하나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데 “누가 황허가 그렇게도 넓다고 했던고? 갈대 배 하나로도 항해할 수 있는데(誰謂河廣 一葦杭之), 누가 송(宋)나라가 그렇게 멀리 있다고 했던고? 발뒤꿈치를 들고서 보면 바라다 보이는데.” 이와 같은 호연지기를 두보는 “중흥의 여러 장수들이 산동을 수복하고, 승전보가 알려지니 밤도 낮처럼 밝았네. 황하가 듣기로 넓다지만 갈대배를 타고 건넜다니, 오랑캐 놈의 운명도 쪼개지는 대쪽 신세로구나(中興諸將收山東, 捷書夜報淸晝同, 河廣傳聞一葦過, 胡兒命在竹中).”라고 표현을 했다.

조선시대 해변에선 염전, 저습지역에서는 갈대밭(蘆田)에서 부평초 같은 민초들이 생계를 의지했으니 갈대는: i) 먹거리론 어린 순과 뿌리를 김치로, 삶은 나물, 갈대 밥으로, 그리고 약용으로는 해독제와 토사곽란의 특효약으로 사용했고, ii) 갈대 줄기로는 밥 고리, 채반, 함(상자), 삿갓, 초립과 백립 등을 만들었으며, iii) 갈대꽃 이삭으로는 방비자루(房掃), iv) 동서양을 막론하고 갈대로 악기의 리드(reed)를 만들었기에 동양의 태평소, 향피리, 서양에서는 오보, 색소폰 등의 피스(piece)로 제작했다. v) 수염뿌리(염근)는 잘게 쪼개서 붓(葦筆)을 만들거나 무명천에 풀(밀가루 혹은 감자가루) 먹이는 풀 솔, 밥솥 씻는 솥솔, 우마 등 가축의 등짝을 긁는 등솔을 만들었다.

명종11(1556)년에는 노전(蘆田)을 내수사(內需司)에서 관할하면서, 노전세(蘆田稅)를 부과했으며, 다 가꾸어 채취할 때도 절수(折受)라는 명목으로 또 다시 돈을 내라고 했다. 이렇게 돈 뜯기가 극심해지자, 철원(鐵原)에서 노전으로 먹고 살았던 임꺽정(林巨正, 생년미상~1562)이란 혈기왕성한 젊은이에게 노전세(蘆田稅)에다가 절수까지 착취하자 임꺽정 민란이 일어났다.

이와 같이 썩어문드러짐을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은 ‘애절양(哀折陽)’이라는 시 첫머리에 “갈밭마을 젊은 아낙 길게도 길게 우는 소리, 관아 앞문에까지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蘆田少婦哭聲長,哭向縣門號穹蒼).”라고 읊었다.

금호의 명칭유래에 ‘비파소리’라는 표현이 있는데 오늘날 같으면 가야금(거문고) 소리로 표기했을 것인데 당시는 그렇게도 중국에 대한 사대사상(事大思想)에 사로잡혔는지 비파소리라고 했다. 이제는 ‘갈대풀피리(葦草笛) 소리’ 혹은 ‘갈대피리(葦笛) 소리’로 표현함이 바람직하다. 1922년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이 쓴 동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에서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The light of golden sand in the yard, the song of reed leaves outside the back door)”처럼 ‘갈잎의 노래(song of reed leaves)’로 적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강소천(姜小泉, 1915~1963)이 1937년에 발표한 ‘소풍(逍風)’이란 동요에 나오는 “단풍잎이 아름다운 산으로 나가자! ... 들국화 향기로운 들로 나가자! 갈대가 손짓하는 들로 나가자! 금잔디에 누워서 하늘을 보면, 벌레소리 들려오는 들로 나가자!”처럼 “갈대 잎이 손짓하고, 별빛이 유혹하는 금호(Kumho’s reed-leaves beckon, its starlight tempts).”라는 표현도 좋다.
 

 
글 =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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