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작가 개인전…갤러리 더 블루 내달 4일까지
김영태 작가 개인전…갤러리 더 블루 내달 4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2.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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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예술의 공통적 지향점은 휴머니즘”
소헌 자제 답게 학생때 미술 두각
건축학 전공 후 영남대 교수 재직
경북고역사관 등 곳곳에 설계작
재직 때도 세계적 건축물 회화로
4~5개 작품들 기승전결로 연결
모래·골판지 등 다양한 재료 사용
작업량 방대 넉달만에 또 개인전
“역사속 건축과 미술은 상호 작용”
김영태작-결-연작
김영태 작 ‘결’ 연작
김영태작-획-연작2
김영태 작 ‘획(劃)’

작업실 벽면에 걸린 특이한 연대기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고, 새로운 사조들을 창시한 인물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특이점은 건축물과 미술작품 사진이 동시에 붙여져 있다는 것. 미술 분야에서는 큐비즘을 이끌었던 피카소의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 다다이즘의 중심이었던 마르셀 뒤샹의 변기 작품, 그리고 잭슨 플록과 앤디 워홀의 작품 등이 보였고, 건축 분야에선 비엔나의 로스하우스와 르 코르뷔제의 롱샹교회, 훈데르트바써하우스, 시드니오페라하우스 등의 건축물 사진이 발견됐다.

건축물을 설계하고 대학에서 건축이론을 가르치다 은퇴 후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김영태 작가가 그린 미술연대기표였다. 건축가이자 미술 작가인 그가 “건축을 알면 미술이 보이고, 미술을 알면 건축이 보인다”는 말로 미술과 건축의 상관관계를 언급했다. “역사적으로 건축과 미술은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어요.”

갤러리 더 블루에서 20일 오후 6시에 개막하는 김영태 개인전엔 ‘미술과 건축이 그의 내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뤘는지?’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결’, ‘소(素)’, ‘철’, ‘획(劃)’ 등의 주제를 연작으로 시각화한 작품 17점을 통해 그는 건축과 미술을 회화 속에서 융합하며 조화롭게 이끌고 있다.

◇ 회화 속에서 미술과 건축의 융합 시도

인류사에서 건축의 근원을 거슬러 가면 미술을 만나게 된다. 미술이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듯이, 건축과 그림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해왔다. 건축이나 미술 공히 공간을 다룬다는 공통점으로 묶여있다. 김영태의 삶에서도 이 둘의 관계의 인류사에서 보여주었던 진화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때로는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건축과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미술이 경쟁관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관계로 조화를 추구하기도 하며 두 분야가 그의 곁을 지켰다.

“건축이 직업이었기 때문에 건축이 표면에 강하게 드러날 때도 많았지만, 미술은 본능적으로 열망하는 분야여서 강렬하진 않지만 조용하게 평생 제 곁을 지켰어요.”

건축과 미술을 병행했던 그의 삶의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둘 사이의 경쟁은 피할 수 없었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것은 미술이었다. 대구를 대표하는 서예가소헌 김만호 선생의 자제답게 그는 일찍이 서예를 배웠고, 중고등학교 시기에는 미술부에 소속되어 그림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발휘했다. 당시 스승이나 동료들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찬사를 아낌없이 받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와 그림을 병행했어요. 그림을 곧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으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죠.”

건축이 전면에 나선 것은 대학 진학 후 부터다. 건축학과에 진학하고 대학원 재학 중에 교수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에 근무하며 설계 일을 시작했다. 대학원 졸업과 함께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했다. 하지만 개업 5년 지날 무렵 영남대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로 옮아왔다. 그는 정년퇴임 때까지 영남대 건축학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건축 분야에서의 사회활동 무대는 전국적인 단위로 확장됐다. 대한건축학회 지회연합회장, 건설교통부 중앙건축위원, 문화재청 중앙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고, 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와 대한건축학회 참여이사를 수행하며 대한민국 건축 발전을 위한 일에 앞장섰다.

그가 남긴 건축물들도 쟁쟁하다. 기능과 아름다움의 절묘한 균형감으로 평가받는 영남대 사회관, 종교적 숭고함이 빛나는 천주교 관덕정순교기념관, 학교의 역사와 자부심이 묻어나는 경북중고등학교 역사관, 소박하면서도 품격있는 청도천주교회 동곡공소 등이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이다. 부친인 소헌 김만호 선생을 기념하는 소헌미술관과 선산김씨 문간공파 오덕공 종택인 호연당(浩然堂)도 그의 설계작들이다.

건축에 매진할 때도 미술을 손에서 놓은 적은 없었다. 방학 때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세계적인 건축물들을 회화 작품으로 남겼고, 국내 유명 사찰이나 고택들도 그렸다.

그는 각 시기마다 개인전을 개최하고 그룹전에도 참여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11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림의 소재도 건축물이었어요. 공간을 다루는 저의 정체성이 건축과 그림으로 드러났죠.”

건축에 가려졌던 미술이 다시 부상한 것은 퇴임 후부터다.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자 봇물처럼 분출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오롯이 수용했다. 퇴직 후 구상에서 추상으로 표현 방식의 변화를 시도했고, 작업의 내용에서도 분출과 정제의 과정들을 거치며 정체성의 문제로 집약돼 갔다.

“정년 이전엔 내외부의 건축물을 통해 건축가로서 가지는 시공간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면, 정년 이후에는 좀 더 저의 내면으로 들어왔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제 삶의 여정들이 화면 중앙에 자리를 잡았죠.”

◇ 개인적인 정체성을 주제별로 시각화

이번 전시작들은 퇴임 후 변화된 작업 세계를 대변한다. ‘결’ 연작에선 건축이 인식하는 공간에 대한 관점과 건축 재료의 변천사를, ‘획’ 연작에선 한옥의 서까래를 서예의 획과 연결 지었다. 개인적인 정체성의 문제에서 더 확장된 세계로의 이동을 암시하는 작품들도 발견된다. 전시작인 ‘소(素)’ 연작에서 본질로부터 출발해 현상계의 삶을 지나 다시 본질로 되돌아가는 존재의 여정을, ‘철’ 연작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순환하는 자연의 4계절 변화를 표현했다.

“개별성에서 보편성으로, 그리고 내재된 본질 세계로 계속해서 확장해 가고 있습니다.”

화면은 지극히 구조적이다. 황금비율을 떠올리는 면 분할, 사선 등의 건축적인 선들의 활용 등에서 건축적인 구조가 두드러진다. 색을 통한 분할에서도 구조적인 요소에 진심인 그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가 “‘결’ 연작에선 건축의 구조들을 적극 활용했다면, ‘철’ 연작이나 ‘소’ 연작에선 보다 은유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언급했다.

하나의 연작들은 4~5개의 작품들로 연결된다. 4~5개의 개별 작품들이 각각 기승전결로 묶여 있다. 이런 구조는 소설의 전개방식과 흡사하다. 주제를 풀어가는 그의 서술이 치밀하고 견고하다는 의미다. 그가 “주제를 기승전결로 구조화하며 내용을 심화해 간다”고 귀띔했다.

이번 전시작들에서 작업의 재료인 물성에 연구가 묻어난다. 작품들에 모래, 톱밥, 나무, 청동, 철판, 골판지, 패턴이 그려진 섬유, 커피 생두를 담았던 마대자루 등 다채로운 재료들을 사용했다. 각각의 물성들은 골판지에 청동이나 철판 조작을 덧대거나 톱밥을 바르는 식으로 구현했다. 톱밥은 흙 대용으로 선택했다.

그에게 미술 재료는 “개념을 심화하기 위한 도구이자 회화적인 깊이감 확보를 위한 매개”로 인식된다. “건축 재료의 변천사를 이야기하기 위해 실제 변화해온 재료들을 화면에 사용하고, 화면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패턴이 있는 천에 물감을 중첩하기도 했어요.”

색채와 건축적인 공간분할이라는 요소들로 각각의 연작들을 구현하지만, 각 연작들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르다. “한 작가의 작품들이 맞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표현된 양상들이 제각각이다. 금, 은, 동 등의 단색화면에 화면분할, 색의 중첩을 통한 느슨한 색면 분할, 전통 한옥의 서까래와 서예의 획이 만난 집적과 해체 등 다채롭기 그지없다.

한 작가가 동시에 다양한 화풍을 구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에게 비결을 물었더니 “대학에 재직하면서도 계속 작업을 해 오며 생각했던 것들이 퇴직 후 작업에만 전념하게 되면서 분출하는 것 같다”는 설명이 되돌아왔다. 주어진 작업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만큼 최근의 작업량 또한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불과 4개월 만에 또 다시 개인전을 꾸리지만 전시할 작품들이 모두 신작일 정도로 작업에만 몰두하는 일상들이 이어지고 있다. “축적된 기운들이 순간적으로 폭발하고 있습니다.”

건축과 미술이라는 구분이 그에게는 무의미하다. 인류사에 두 장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분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그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여는 핵심 요소로 건축과 미술의 융합을 시도한다. 이런 시도 이면에 편익성(기능), 견고성(구조), 심미성(미)을 3요소로 하는 건축과 아름다움을 골자로 하는 미술의 근원을 파고들어 발견한 공통의 가치인 ‘휴머니즘’이 자리한다.

그는 휴머니즘을 매개로 건축과 미술의 조화를 추구한다. “건축이나 예술이나 결국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 인간애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지향점이 동일하다고 봐요. 저는 그 공통된 지향점을 미술이라는 매체로 서술해 가고 있습니다.” 갤러리 더 블루 초대 김영태 개인전은 3월 4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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