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엄마
[달구벌아침] 엄마
  • 승인 2023.02.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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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는 어릴적, 엄마가 그닥 생각나진 않는다.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 기억은 거의 없지만, 초등학교 이후에도 엄마랑 집에 같이 있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늘 집밖일로 바빴다. 집에 있을 틈이 없었고, 집안일에 시간을 할애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해가 뜨면 밭에 가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고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엄마보다 할머니가 엄마같다. 할머니의 손이 쭈글하지만, 할머니가 내미는 손은 따사롭다. 덮어둔 밥상의 보자기를 들추면 색다른 반찬이 없는데도 참 맛있다. 동글한 얼굴에 주름이 졌고 흰머리에 비녀를 꽂아 옛날 한복입는 조선시대 여자들 같지만 홍희에게 할머니는 밥이다. 배부르고 질리지 않는 한결같은 밥이다.

홍희네 집에는 동네어른들이 자주, 많이 온다. 겨울이면 아랫방에 모여, 여름이면 마당 마루에 모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가 심심하게 놀고 있는 홍희를 보고 놀린다.

“니, 너 엄마 안 보고 싶나? 여기 있는 엄마 니 엄마 아니다. 너 안계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 너 엄마 안계 장터에서 호떡 굽는다. 너 엄마한테 갈래?”

한 명이 이런 말을 하면, 그 옆에 있는 사람도 덩달아 한 마디 거든다.

“그래, 내 며칠전에도 안계장에 갔는데 너 엄마가 니 잘 있냐고 묻더라. 니 보고 싶어 하더라.”

진지한 표정을 짓느라 인상을 구기면서, 한 편으로는 차마 나오는 웃음을 어쩌지 못해 실실 입가로 새어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엄마가 맞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어른들이 그렇댄다. 홍희는 그 말이 참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같이 듣고 있는 엄마는 뚝한 표정만 짓고 있을뿐 기다 아니다 말이 없다. 그렇다는 말인지 그렇지 않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어른들은 몇 번을 그러더니 홍희가 가만히 있자 말을 닫는다. 아니라는 반박을 하지 못하고, 의문만 가슴에 담은 채 홍희는 잠을 자러 간다.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꿈은 아닌데 꿈을 꾼다.

안계장을 버스를 타고 간다. 버스에서 내리니 콧등에 점이 커다란 퉁퉁한 아줌마가 홍희를 반긴다.

야가 누고 홍희 아이가. 이마이 컷나. 이리 온나. 내 니 보고 싶었다. 니는 내 안 보고 싶었나

누군지도 모르는 아줌마가 보고 싶을 게 뭐람.

아줌마가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줌마의 대답이 내 니 엄마 아이가. 동네어른들이 이야기 안 하더나. 내가 니 얘기 많이 했는데. 내가 니를 왜 버›노하면….

등의 이야기들을 할까봐 겁이 나 묻지를 못하겠다.

이끄는 팔을 거부하지도 못한 채 팔을 붙잡혀 질질 끌려간다.

안계장에는 누구랑 왔는지 뒤를 돌아봐도 어디가냐고 붙잡으러 오는 사람이 없다.

홍희는 와락 겁이 나서 꿈을 깬다.

마루에 아직 어른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나고 엄마, 아버지도 같이 있는 걸 보고 다시 잠이 든다. 꿈속에서 홍희는 날아다닌다. 못속에서 이무기같은 괴물이 긴 팔을 뻗어 날아다니는 홍희를 붙잡으려고 한다. 홍희는 잡히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앞뒤로 밀어 속력을 낸다. 못수면에 닿을 듯 말 듯 하다가 쓩 하고 위로 치솟는다. 너무 높이 올라가니 집이 까만점으로 보인다. 다시 내려가려고 방향을 틀고 엉덩이를 아래로 향하니 이번에는 길을 잘못 잡아 못둑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빠르게 내려가 곤두박질칠 것 같을 때 엄마가 깨운다.

“홍희야, 일나라. 얼른 밥 묵고 학교 가라. 늦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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