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역사
[류동학의 세상읽기]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역사
  • 승인 2023.02.2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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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소아시아의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전 세계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관심을 가지고 후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튀르키예(Turkiye)는 서아시아와 남유럽에 걸쳐있는 공화국이다. 다르다넬스 해협, 마르마라 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경계로 서쪽 3%는 유럽(동부 트라키아), 동쪽 97%는 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에 속한다. 수도는 앙카라(Ankara)이며 최대도시는 이스탄불이다 G20과 NATO의 일원이며, GDP 18위, 국방비 순위는 16위이다. 국호인 튀르키예(Turkiye)는 '튀르크인의 땅'을 뜻한다. 튀르크라는 이름은 민족의 이름으로, 본래는 '용감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튀르크는 돌궐(괵투르크,552~745)시절부터 사용했던 고유어 표현이기도 했다. 튀르키예의 면적은 77만 9452㎢ (한반도의 약 3.5배)로 최상위 행정구역은 81개의 주(il)이다. 인구는 약 8천500백만명이다. 1인당GDP는 9406달러 (2021)이다.

튀르키예지역은 힛타이트를 비롯한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비잔틴, 셀주크투르크와 오스만투르크의 이슬람 문화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문명 융화의 용광로 역할을 5000년 이상 해 왔다. 아나톨리아 지역은 신석기 세계문화유산인 특히 12,000년전에 건립된 샨르우르파 시 괴베클리 테페(Gobekli Tepe배불뚝이 언덕)와 기원전 7000년경 신석기 시대 인류최초 도시거주지인 콘야주 차탈회위크(Catalhoyuk)등이 고고학 유적지로 유명하다,

기원전 1650년경에는 소아시아는 세계 최초의 철기 문화를 이룩한 히타이트 왕국(기원전 1650~기원전 1178)이 등장하여 번영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투샤(튀르키예의 보아즈칼레의 보가즈쾨이)는 수도이다. 무와탈리스는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의 군대와 카데시에서 싸워서 격퇴했다(기원전 1286). 하투실리스 2세는 이집트와 화약(和約)을 맺어(기원전 1269) 오리엔트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동편에서는 아시리아에게 압박되고, 소아시아 서부에서는 프리기아가 대두하여, 그리스계 해상 민족의 침입으로 기원전 1180년 히타이트는 멸망했다. 하타이트 유적은 초롬주 햐튜샤(보아즈칼레),야즐르카야암각,알라자회익이다. 이후에는 아나톨리아 지역에는 미다스(마이더스)의 손으로 유명한 프리기아(기원전12세기에서 기언전 6세기), 우라르투(기원전 860~기원전 590), 리키아, 리디아(BC 1200년경 ~ BC 546년), 이오니아, 세계최초의 대제국인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BC 550년~BC 330년) 등의 왕조가 차례로 등장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고는 곧 사라졌다.

기원전 334~333년 알렉산더대왕에게 지배를 당하기도 했던 이곳은 대왕이 세상을 떠난 뒤 카파도키아(기원전 331년~서기 17년,수도 카이세리), 셀레우코스(기원전 312년부터 기원전 63년,하타이주 수도 안타키아), 페르가몬(기원전 282년 ~ 기원전 129년, 수도는 이즈미르주의 베르가마군)의 세 왕국으로 분립되어 존재하다가 로마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I, 재위 AD 306~337) 때 콘스탄티노플이 수도가 되었고 테오도시우스 1세(재위379년~395)사후 아르카디우스(재위 395년 ~ 408년)의 동로마와 호노리우스(재위395년 ~ 423년)의 서로마로 로마의 분열이 일어난 395년에는 튀르키예는 동로마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395~1453)은 결국 오스만튀르크의 메호메트2세에 의해 1453년 멸망하였다.

11세기에 이르러서는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계 민족인 오구즈 튀르크(Oghuz Turks) 일족 이 건설한 제국인 수니파 이슬람 왕조인 셀주크 투르크(1037~1157)가 아나톨리아 고원을 지배하였다. 셀주크족은 서아시아 진출의 선구가 되었고, 다음의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였다. 셀주크 왕조는 알프 아르슬란(재위 1063~1072)과 그의 아들 말리크 샤(재위 1072~1092)의 재위기에 재상 니잠 알-물크(Nizam al-Mulk)의 노력으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1071년 8월 26일 만지케르트 전투(현 말라즈가르트)에서 알프 아르슬란이 동로마 황제 로마노스 4세에 승리하여 튀르크족의 아나톨리아 칩입이 본격화되고 결국 이 지역은 영원히 그리스도 교 세계에서 분리되어 이슬람세계기 되었다. 1071년은 곧 소아시아 반도의 튀르키예작업이 시작된 해이다.

이후 아나톨리아에 세워진 룸 셀주크 왕조(Seljuk Rum 1077~1307)는 몽골인의 서진(西進)을 막아내며 1307년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룸 셀주크 왕조는 소아시아의 튀르크화 및 이슬람화 촉진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이후 1453년 오스만제국(1299~1922)의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건국 이래 2,200년을 이어온 로마제국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며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술레이만 대제(재위 1520~1566)시기의 오스만제국의 영토는 서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에 걸친 광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은 19세기 무렵부터는 쇠퇴하게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다가 패퇴한다. 그 후 1923년 10월 29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는 이 터에 아카라를 수도로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하게 된다. 튀르키예의 지진회복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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