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를 사는 일에 바빠서
자정 넘겨, 물에 후루룩 밥을 만다
검고 둥근 하늘 속의 별을
밥인 듯 먹으며 살고 싶다고
예전에 내가 쓴 시 “별밥” 앞에서
설익은 살점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은
헛되고 주린 욕망을 본다
남지장사에서 얼음 깨고 떠온 물에
어지러운 세속에 탁해진 눈을
미련도 설렘도 없이 꾹꾹 만다
그냥두면, 밥풀 끼리 눌러 붙으니
물 붓고 휘휘 저어 본다
그걸 살짝 끓이니, 죽도 밥도 아닌 죽밥
살아있다는 이유가 겨우 이게 다인
잘 익은 김치 속 속박이
한 토막 짭짤한 무 앞에서도
쓸쓸함은 이제 배가 부르다
◇박윤배= 1962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89년 매일 신춘문예에 시 당선으로 데뷔. ‘시와시학’신인상 수상.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금복문화상 수상. 시집으로는 여섯 번째 시집, ‘오목눈이 집증후군’등이 있음. 5권 통합 본 ‘나의 알약들’ (북랜드) 출간. 한국시인협회회원, 현재 대구예술가곡회 사무국장, 경주문예대학 교수. ‘형상시학회’대표이사로 있음.
<해설> 교직 20년 명예퇴직을 하고 남은 생은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는 각오가 허물어졌다. 벌써 14년째 시를 가르쳐 달라는 사람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여직 하루하루를 쉴 틈 없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늘 통장은 굶지 않을 정도만 채워져 있고, 바쁘다는 핑계로 밥솥에 해둔 밥은 아까워 버리지 못한다. 오늘 하루 밥 안 먹은 걸 알려주는 건 배꼽시계, 밤늦은 시간에 물에 말아 배추김치에 박아둔 덩어리 무와 먹는 밥은 달다. 나를 어린 시절 별 총총하던 강원도 눈 내린 산골의 하늘이 둥근 대접 안에 둥둥 한상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