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물녘 칠성시장 한 모퉁이 노점에서
한평생 파만 몇 줄 놓고 파는 노파
한 뿌리 대여섯 닢 나와 두 줄로 자란 파
땅심으로 겨우 보았다
무슨 파냐고 묻기도 난감하고
거기, 오갈 데 없는 노파심 불러
파절이할 파나 한 단 사자고 그럴까
금세 갈래갈래 쪼개지는 파
긴 원기둥 모양의 관처럼 속이 텅 빈, 평활한 잎이다
끄트머리는 뾰족하게 닫혀 있고
아랫도리는 돌레돌레 감싼 잎집이다
녹색 바탕에 흰빛이 돌고 끈적끈적한 점성이
한파 속 쩍쩍 갈라진 틈새를 보듬어주고 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저, 올곧게 제자리 지키며
늘 푸른 세상 꿈꾸는 노파
어디, 저런 대쪽 같은 파 한 뿌리 없을까
◇김욱진= 2003년 시문학 등단. 시집 ‘비슬산 사계’ ‘행복 채널’ ‘참, 조용한 혁명’ ‘수상한 시국’ 이 있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2020), 제8회 박종화문학상, 제5회 김명배문학상 작품상 수상(2022)
<해설> 밤늦게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파를 찾는데 없다. 눈앞에 보이는 건 김욱진 시인의 시 “파”인데, 이 한편의 시에서 야채로써의 향 짙은 파를 골라내는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결국 집단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혼자서는 제 목소리를 갖지 못할 때, 파 혹은 패의 힘을 빌려 목적을 달성하려는 습성을 가졌다. 혼자 묵묵히 한길로 걸어가는 건 팔리지 않는 파를 앞에 둔 노파의 생업이 그것이고, 요즘 우리에게 더욱 한파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건, 청록파, 칠성파, 서방파도 아닌 좌파와 우파 아니던가. 그러나 배가 고프면 띄울 계란이나 싱싱한 파 없어도 다 맛있다는 건 사실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