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내돈내산’ 명품 소비, 그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내돈내산’ 명품 소비, 그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 윤덕우
  • 승인 2023.03.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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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같은 세상
패션기업 수장 ‘베르나르 아르노’
빌 게이츠 제치고 세계 1위 부자
명품소비 즐기는 ‘L세대’ 영향
그들 모방하는 소비층도 확대
나를 타인과 차별화 시키는
찰나의 우월감에 명품 구입
가격이 비쌀 수록 더 잘팔려
그들의 욕망 탓할 수는 없어
공정성이 훼손된 요즘 사회
명품브랜드
대구 모백화점의 명품브랜드 광고보드이다. 명품은 어두운 도시를 환하게 밝혀주고 인간의 숨어 있는 과시적 욕망 또한 밝혀주는 것 같다.

“子曰(자왈) 富而可求也(부이가구야) 雖執鞭之士(수집편지사) 吾亦爲之(오역위지) 如不可求(여불가구) 從吾所好(종오소호)”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통상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富)를 구해 가져도 떳떳한 것이라면 채찍을 드는 천직이라도 나는 하겠다.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르겠다.”

유학에서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숭상되는 공자이지만 어릴 때 미천한 집안에서 먹고 살기 위해 비천한 일에 종사해야만 했던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부자가 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군자가 부귀를 싫어해서 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늘에 달린 것이어서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논어집주>에서 인용한 양씨(楊氏)의 해설은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이런 점에서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부귀재천(富貴在天), 즉 부귀는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공자가 젊은 시절 부를 추구했으나 부자가 되는 것은 결국 하늘의 뜻임을 알게 된 듯하다.

이렇듯 성인(聖人)이든 범인(凡人)이든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편법을 쓰거나 투기를 하기도 하고 누가 돈 벌었다고 하면 묻지마 투자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세계 최고 부자들과 만나기 위해 비싼 점심값을 내기도 하며, 큰 부자나 대기업 창업자들의 부자 기운을 받기 위해 생가를 방문하기도 한다. 대학생에서부터 직장인, 은퇴 세대까지 가히 ‘부자열풍’에 휩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부의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자는 누구이며, 세계에서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하는 것도 늘 관심 대상이 된다.

보통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하면 빌 게이츠, 엘론 머스크, 워렌 버핏 등을 떠올리며 IT, 제조업, 금융업 등에서 세계 최고 부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년 12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바뀌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제치고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으로 유럽 출신이, 패션업계 기업의 수장이 전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한 점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그 배경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베르나르 아르노’가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회장이자 CEO로 재임하고 있는 LVMH의 매출 덕분이었다. 특히 명품 브랜인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디올(Dior) 등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의 성장은 ‘베르나르 아르노’를 더욱 빛나게 했다. 어쩌면 ‘베르나르 아르노’를 세계 최고의 부자를 만들어 준 것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가의 고급 브랜드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L세대(Luxury-Generation)’들의 소비성향과 그들을 모방하는 소비 계층의 확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하나를 사더라도 제대로 된 것을 사겠다며 적금을 넣어 명품을 구매하는 명품 선호층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명품소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용어가 ‘베블린 효과’이다. 베블린 효과란 저렴한 대체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여 과시하는 욕구 때문에 재화의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증대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 이후 현재까지 경제학의 기본이론은 수요는 가격과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이 법칙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분야가 바로 ‘명품 산업’이다. 잘 안 팔리는 물건 가격에 ‘0’을 하나 더 붙이니 바로 팔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스놉 효과’라는 말도 명품소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과시욕이 비싼 명품을 구입하게 만들지만 그 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재화의 소비를 줄이거나 중단하게 된다는 것이 ‘스놉 효과’이다. 과시적 소비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베블린 효과와 같지만 ‘스놉 효과’는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차별성’을 과시한다는 점에서 베블린 효과와는 다르다. 이러한 스놉효과 때문에 일부 명품들은 가격을 계속 올려도 더 잘 팔린다. 결국 ‘차별성’과 ‘희소성’은 명품의 생명줄인 셈이다. 중저가로 몰락한 브랜드들은 결국 ‘차별성’과 ‘희소성’을 명품족들에게 주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명품 브랜드들이 할인하지 않거나 재고를 태워버리는 것은 어쩌면 ‘자기 생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미국 CNBC 방송은 2022년 세계에서 1인당 명품 구입 지출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 한국인이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2021년에 비해 24%나 증가했다고 하는데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명품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던 셈이다. 모건스탠리는 이런 한국 내 명품판매 증가를 한국인들의 부동산 가격상승에 따른 늘어난 자산이 구매력을 견인했으며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풍조도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의 하락 기조가 강한데 이것이 명품판매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궁금해진다.

명품의 가치를 인정하고 명품 브랜드가 갖는 상징성을 소유와 과시를 통해 높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명품 지향 소비’는 사실 전 세대에 걸쳐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명품 소비를 권위와 연관된 상징적 가치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입장에서 볼 때 ‘명품 지향 소비’는 사회의 모든 영역을 막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예로 정치 팬덤을 들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애장품을 똑같이 소비하거나 굿즈를 소장하듯이, 정치 팬덤들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사진, 영상, 뉴스 등을 퍼나르고 공유하며 심지어 자신들이 스스로 콘텐츠나 짤방을 만들어 확고한 지지세를 보여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라이벌 정치인들이 무너지고 패배하는 모습에 쾌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로 착각한다. 이렇듯 정치를 ‘팬질’하듯이 소비하는 현상인 ‘팬덤 정치’는 남들이 못 가지는 명품을 소유하면서 느끼는 과시욕과 비슷한 듯하다. 더 나아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마치 귀족이 된 양 행동하거나 유력 정치인들과의 인맥을 자랑하는 허세들은 어쩌면 차별성에 기초하고픈 인간의 욕망이라는 점에서 분에 넘치는 명품 소비와 너무나 닮았다.

한편, 포켓몬빵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의 극성 구매행위나 SNS 자랑을 위해 10만원이 훌쩍 넘는 수제버거를 사 먹는 행위, 그리고 소위 ‘점심은 구내식당, 저녁은 편의점, 주말은 구찌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형태도 과시적 소비와 차별성을 이유로 하는 명품소비와 유사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에 비싼 명품 굴비나 한우 세트를 선물하는 것도 고가의 최신 휴대폰을 매번 바꾸는 것도 남과 달라 보이고 싶은 욕망에 기초한 과시적 소비처럼 보일 때가 많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검소하고 부지런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사회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양극화가 커지고 안정된 정규직 취업은 힘들어지고 사회의 공정성은 훼손되고, 내집 마련의 기회가 요원해 졌음을 안 세대들에게 있어 명품구입은 어쩌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타인과 차별화시킬 수 있는 ‘찰나의 우월감’이 명품을 구입하게 만들었다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의대에 가려 하고, 월세를 살더라도 부촌에서 거주하여 자식 교육에 희망을 걸고 사는 것도, 안 입고 안 먹고 모은 돈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명품 같은 삶을 꿈꾸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믈론 그들의 정당한 욕망은 존중하고 존중받아야만 한다.

‘내돈내산’ 명품 구입을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그 어느 것도 자신을 타인과 차별화시켜 줄 수 없는 시대를 탓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명품 같은 세상에 사는 오늘날 ‘제임스 트위첼’이 그의 저서 남긴 글은 꽤 의미 심장에게 다가온다.

“나는 어떤 의사가 플리머스(저가자동차브랜드)를 몰고 다닌다면 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렉서스도 못 타고 다니는 의사라면 그 의사는 실력이 없어서 수입도 별 볼일 없는 의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이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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