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견딤, 그리고 기다림
[달구벌아침] 견딤, 그리고 기다림
  • 승인 2023.03.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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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3월 중순이 되니 꽃이 피기 시작한다. 노란 산수유, 빨간 매화, 아파트 화단의 동백꽃도 활짝 피었다. 출근하는 길 중앙도서관 뒤 종각 앞에 목련도 하루가 다르게 커지더니 하얀 솜뭉치마냥 꽃을 피웠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 따뜻한 햇살과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은 시원한 바람. 그래서 봄이 좋다. 거리를 활보하고 싶고, 신천으로 나가 뛰고 싶고, 갓바위에 오르고 싶을 만큼 활기를 가져다 주는 봄. 두꺼운 옷으로 몸을 칭칭감고 있지 않아도 되어 좋은 봄. 누렇게 죽은 것 같은 나무에 연한 싹이 트는 봄.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봄이 좋다.

시골에 살 때는 봄이 되면 흙이 녹아 폭신폭신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일을 해도 싫지가 않았다. 모든 살아움직이기 시작하는 것들 속에서 같이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땅을 파다가 나오는 벌레조차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이 징그럽기도 하지만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올봄에는 꽃이 핀 화분을 샀다. 보라색 꽃이다. 하나는 크로커스다. 봄에 가장 빨리 피는 꽃이라고 한다. 동그란 꽃봉오리가 너무 예뻤다. 1주일을 참다가 계속 눈앞에 어른거려서 직장을 옮긴 기념으로 샀다. 일찍 샀으면 좋을 뻔했다. 사자마자 꽃이 시들어 잎만 삐죽히 남아 있다. 처음 본 그 때가 절정이었다.

다시 꽃을 보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여름에는 잎조차도 잘라내서 알뿌리만 남기고 물도 주지않아야 된다고 한다. 물을 주면 알뿌리가 썩기 때문이다. 가을이 돼서 물을 주고, 한 겨울 추위를 견디고 나서야 3월초에 꽃이 핀다고 하니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다른 하나는 별모양꽃인 캄파눌라이다. 분홍색 안개꽃이 예뻐서 참다가 사려고 다시 갔는데 보라색 캄파눌라가 그 옆에 있었다. 두 배나 비싼 가격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보라색 크로커스꽃이 일찍 져버려서인지 보라색이 마음에 들었다. 두 개의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려니 뿌리가 하나였다. 크기가 커서 여러 갈래의 뿌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뿌리여서 3분의 2와 3분의 1로 갈라서 두 개 화분을 만들었다. 아직 적응중인지 시들시들하다. 해와 바람이 통하도록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남편이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닫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오늘과 내일, 주말동안 창문을 열어두면 다시 살아나 활짝 필 모습을 기다려본다.

20센티미터 넘게 자란 뱅갈고무나무가 1월에 얼어서 가지가 말랐고, 1센티미터 위치에 싹이 났다. 1주일 지난 후에 보니 연두색이 갈색으로 변해 가시같다. 새로운 가지인가. 죽은 것은 아니겠지. 과연 가시같은 저 작은 것이 쑥쑥 자라서 다시 잎을 낼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말라버릴 것인가. 화분은 큰데 손톱보다 더 작은 존재가 애처로워 조용히 바라본다. 10센티미터 크기에 두 개의 잎이 난 것을 물꽃이 하여 뿌리를 내려 화분으로 옮겨심어 20센티 크기에 잎이 다섯 개가 달려 잘 자라고 있다는 안도감과 기쁨을 바라본 고무나무였다. 다시 크게 자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의심이 든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두고 볼 것이다. 분명 아직 살아있으니 자라날 것이다. 기다려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 견디고 있다. 메마름을 견디고, 추위를 견디고, 갈라진 뿌리가 다시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도록 시간을 견디고 있다. 1센티미터의 줄기만 남은 뱅갈나무도 다시 자라기 위해 살아있는 뿌리와 함게 시간을 견디고 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들이 그들나름의 삶을 살도록 거기에 맞게 물고 바람과 햇볕을 맞춰줄 뿐, 그들의 견딤을 도와 줄 수가 없다.

그들이 죽었다고, 다시 살지 못한다고, 다시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지 못한다고 버리지 않으면 된다. 그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것이 그들이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어 시간을 잘 견뎌낼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살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 나는 나의 삶을 살며 가만히 그들을 보며 기다려야 한다. 그들은 잘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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