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뒤집거나 뒤집히거나
[달구벌아침] 뒤집거나 뒤집히거나
  • 승인 2023.03.2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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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욕실 문 앞, 구석진 자리에 벗겨진 바나나껍질처럼 양말 두 짝이 놓여있다. 뒤집어진 채.

뒤집어진 양말을 보는 순간 내 속이 뒤집어진다. ‘바로 벗어 달라’며 발이 손이 되도록 부탁했건만 매번 뒤집혀 있다.

결혼 후 서른 해가 넘도록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뒤집기를 배울 동안에도 그의 양말 뒤집기는 고쳐지질 않았다.

습관이 된 듯 보였다. 어르고 달래가며 싸워도 봤지만, 쉬이 바뀌질 않았다.

오히려 ‘뒤집어놓지 마’라는 소릴 하면 할수록 잔소리로 알아듣고는 내 속을 더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참 별일 아닌 일로 오래도 실랑이하며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로 벗기가 힘들었던 그처럼 그걸 볼 때마다 뒤집어지는 내 속도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뒤집어진 양말을 뒤집힌 채로 세탁기 속으로 넣어 세탁한 후 그대로 빨랫줄에 널었다. 다 마른 양말은 걷어와 뒤집힌 채로 개켜 서랍장에 넣어 두었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어떤 내가’ 또는 ‘어떤 당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던 건.

그때부터 어떤 기대도, 먼지 한 톨의 바람마저도 그의 어깨 위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여기, 지금, 그저 내 곁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바람조차 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설사 품게 되더라도 드러내거나 드러나지 않게 안전거리를 조율하는 것으로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랐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늙어가길 원했다. 서로 있는 발톱, 없는 발톱, 숨겨진 발톱까지 찾아내 드러내는 것으로 아옹다옹 살지 않기로 했다. 그와 내가 나눠 가질 꿈은 그거면 족했다.

내 마음이지만, 그게 무언지 나도 솔직히 모를 때가 잦다. 뭐가 달라진 것인지 두려워하며 자꾸만 뒤를 들여다보게 된다.

생각은 늘 생각으로 그치기 일쑤였다.

생각은 생각 안에서만 존재할 뿐 생각 밖으로 나와 걸음을 떼지 않았다.

한 발, 떼 놓기만 하면 되는데 그거면 족한데. 그 한 발 떼기가 발등에 태산이라고 올려놓은 듯 힘들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할 만하고 세 번째는 쉽다’고들 하는데.

나는 반려자인 그와 산이 와 몽이라는 이름을 가진 암수 한 쌍의 반려묘와 함께 살아간다.

그들은 가끔, 있는 데로 세운 발톱을 드러내고 싸울 때가 있다.

영역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좁아터진 한 공간 안에서 서로 굳이 나눠가질 게 뭐가 있을까 싶어진다.

양보하고 배려하며 사이좋게 살면 그만인 것을. 굳이 네 일, 내일 네 탓, 내 탓 하며 줄을 그을 것까지 있을까 싶다.

전쟁이 끝난 후의 참상은 인간 세상이나 동물의 세계나 별반 다를 게 없을 듯 보인다.

할퀴고 쥐어뜯어 뽑힌 털들이 온 방 안 구석구석에 얽히고설킨 털 뭉치가 되어 뭉게구름처럼 떠다닌다. 뜯긴 귀에서는 붉은 피가 고이고 부러진 발톱이 각질처럼 바닥을 뒹군다.

날마다 투덕거리고 욕하고 아옹다옹하지만,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잘린 꼬리가 다시 자라나는 도마뱀이나 악어처럼 둘은 눈이며 얼굴 온몸을 서로 핥아준다.

그리곤 어느새 한데 뒤엉켜 창문을 넘어 들어온 햇살에 기대 아지랑이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깊은 잠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잠시 ‘하나라도 먼저 죽으면 남은 하나는 어떻게 살까?’라는 생각에 잠긴다.

이어달리기에서 바통을 주고받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걱정을 주고받는다.

우리들 삶의 모습이 그들과 다름이 있을까. 뒤집거나 뒤집히거나 어떻게 신고 살 듯 무슨 상관이 있을까.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처럼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려서부터 우린 어떤 상황도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는 문장을 알고 있다.

그림 일기장 맨 마지막에 썼던 바로 그 말처럼 ‘오늘도 참 재미있었다.’처럼 사람이 사랑이 또한 우리들 삶의 마지막이 그렇게 재미있게 기억되길 바라본다.

뒤집힌 양말을 꺼내 손수 뒤집어 신던 그가 ‘피식’하고 싱겁게 웃는다.

그의 등을 바라보고 서 있던 나도 따라서 ‘피식’하고 짭짤하게 웃어넘기고 만다. 둘 다 참, 어지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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