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간첩(間諜)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
[윤덕우 칼럼] 간첩(間諜)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
  • 승인 2023.04.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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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느릅나무 가지에 매미가 앉아있네/ 날개치고 노래하며 맑은 이슬 마시느라/ 사마귀가 뒤에 숨어 노리는 줄 모르네” 삼국지 최후의 승자인 사마의가 손자 사마염에게 읊조리도록 한 시다.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은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이 시를 읊조린다. 사마의는 손자가 읊조리는 이 시를 들으며 생을 마감한다. 중국 CCTV가 95부작으로 제작한 삼국지의 마지막 장면이다. 후에 사마염은 위(魏)나라 황제 조환(曺奐)으로부터 선양(禪讓)이라는 명목으로 황제자리를 빼앗아 서진(西晉·264-316년)을 세운다.

삼국지는 1800년여년 전 위(魏)·오(吳)·촉(蜀)3국의 이야기지만 사마염이 읊조린 시는 난세인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시사한다. 이 시는 장자의 산목(山木)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느날 장자의 이마를 스치고 까치 한마리가 밤나무 숲에 앉았다. 장자가 활로 까치를 잡으려 했다. 그때 매미 한마리가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그늘에 앉아 제몸을 잊은 채 울고 있었다. 옆에는 사마귀 한마리가 숨어서 매미를 잡을 생각에 자신의 형체마저 잊고 있었다. 사마귀를 노리던 까치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힘들게 정권을 찬탈했지만 긴장감을 놔버린 서진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사마염이 정권 초기에는 나라 기강을 다잡았으나 지나친 자신감으로 방종에 빠져 사회적 긴장감이 떨어졌다. 귀족사회는 사치와 향락적 퇴폐풍조가 만연해 정치기강과 사회질서가 문란했다. 결국 서진의 4대 황제 민제(愍帝)는 흉노족에게 잡혀 살해됐다. 서진은 그렇게 52년만에 멸망했다. 서진은 멸망 후 5호16국으로 나뉘어 1백수십년 간 난장판의 역사가 전개된다.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혼란기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마염이 읊조린 시를 보면 마치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연상시킨다. TV방송은 온통 먹방과 음악 프로그램이 대세다. 전 국민은 트롯 열풍에 빠져있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1년 이상 전쟁 중이다. 북한은 하루가 멀다하고 무력도발을 감행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다. 국론은 극명하게 분열돼있다. ‘윤석열 퇴진’을 지시한 북의 지령문이 발견돼도 국민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지난 29일 국정원 퇴직 직원 모임인 양지회가 ‘국가대공수사권 정상화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발표자들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 북한 간첩과 종북세력의 천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정원의 국내 보안정보 수집기능이 폐지되면 ‘내란선동’ 사건 등 ‘체제전복’ 사범에 대한 정보수집도 거의 불가능해져 안보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는 것이다. 2020년 민주당은 국정원법을 고쳐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에서 경찰로 이관했다. 3년의 유예기간이 올 연말 끝난다.

국무총리실 소속 경찰제도발전위원장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인 박인환 변호사는 이 날 발제문에서 “북한 간첩의 90% 이상이 외국을 통해 침투하지만 경찰은 해외 대북 정보망이 없고, 해외에서의 정보, 수사 활동이 금지되어 있어 정보와 수사가 분리되면 간첩색출과 검거가 더욱 어렵게 된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독일 통일 전 서독에 파견된 동독의 간첩이 약 4000명으로 추산했으나, 통일 후 3만명으로 확인됐다”며 “국가안보 관련 범죄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기술적, 이념과 사상적으로 최고의 전문가들로 범행 수법은 물론이고 수사와 재판에서의 대응까지도 염두에 두고 철저하게 훈련 받는 등 주도면밀한 판단하에 범죄를 자행하기에 대공수사권의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엄중해지는 안보 상황에서 지난 60년 이상 장기간 구축된 국정원의 대공정보와 수사 시스템의 와해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대안으로 국정원의 외청으로 ‘안보수사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은 지난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수의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북한 지령문 등 100건이 넘는 대북통신문건을 확보한 데 이어 3월 27일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를 구속했다. 북한의 지령문에는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북한이 민주노총에 선거 개입을 지시한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1일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의 간첩 혐의를 수사중인 국정원이, 일당이 해외에서 북한공작원들과 접선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국정원은 일당이 북한 측과 문건을 주고받을 때 쓰인 것으로 보이는 암호화·암호해독 프로그램도 압수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유력시사잡지 정론(正論)5월호에는 “한국에서 좌파가 다시 정권 잡으면 윤석열 대통령 체포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라는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의 기고문이 게재됐다. 간첩들이 우리 사회곳곳에 세력을 확장하고 활개를 치는 소식이 들려도 국민들은 무관심하고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너무나 무력하다. 북 전술핵 위협에도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북한을 옹호하기 바쁘다. 간첩하기 좋은 대한민국. 대한민국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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