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법률] 지역주택조합의 일방적인 설계변경
[생활법률] 지역주택조합의 일방적인 설계변경
  • 승인 2023.04.2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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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대구 형사·부동산 전문 변호사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은 가장 합리적이고 절대선(絶對善)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 다수의 횡포로 인한 소수의 불이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지역주택조합이 정상적인 조합원총회를 거쳐 진행된 설계변경과정에서 일부 조합원이 분양받은 아파트의 일조권이 침해된 사례에서 손해배상을 인정한 매우 예외적인 판결이 선고되었다.

A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 900명으로 1,000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건축하는 조건으로 이미 설계가 완성된 아파트 단지에 대하여 동호수를 지정하여 조합원을 선착순으로 모집하였다. 선착순 모집이므로 일찍 가입한 조합원들은 가장 좋은 위치의 아파트 동호수를 스스로 선택하여 조합원 가입신청을 하였고, 늦게 가입한 조합원들은 불리한 위치에 있는 동호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후 조합은 아파트 사업의 수익성을 더 높이기 위하여 당초 1,000가구 설계에서 1,100가구 설계로 설계변경을 하여 수익을 100억원 더 발생시켜 조합원 분담금을 1,100만원씩 낮추어주었고, 이러한 내용이 적법하게 조합원총회를 통과하였다. 그런데 설계변경 전 양호한 일조조망권을 누리던 약 50세대 전방에 100가구가 증축되다 보니 극심한 일조권 침해가 발생하였고, 총회 과정에서 해당 세대들이 반대하였으나 그 수가 50세대뿐이므로 나머지 850세대가 찬성하여 억울한 피해를 당하게 되어 피해 세대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 법원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조합원 총회를 거쳐 설계변경 되었고,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서에 설계변경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는 사정 등을 고려하면 지역주택조합의 불법행위가 전혀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패소하였다.

항소심에서는 동호수를 지정하는 지역주택조합 가입계약은 ①조합가입계약과 ②아파트분양계약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따라서 아파트분양계약에 따라 당초 공급하기로 한 아파트의 기능이 미달할 경우 비록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적법한 조합원총회를 거친 경우에도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현재도 많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분양사업에서 조합원총회 결의라는 이유로 소수 조합원들의 권리 침해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많은 법률에서 이미 다수결의 원칙에 적절한 통제를 가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낡은 아파틀 철거하고 신축하는 지역재건축 사업의 경우 아파트 소유자 전체의 재건축결의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특별한 경우 각 동별 또는 상가소유자들에게만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해당 동 또는 상가 소유자는 소수이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들만으로 구성된 단위에서 다시 결의를 받도록 하여 소수자를 보호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회사 측과 취업규칙을 작성함에 있어서도 변경된 취업규칙이 전체적으로는 많은 조합원들에게 이익이 되어도 일부 조합원들의 기존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피해 조합원의 동의를 받거나 또는 피해 조합원들로 구성된 별도의 단체에서 다시 결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헌법 차원에서도 모든 법률은 국회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시행될 수 있으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시행될 수 있어 다수결의 원칙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 양곡관리법에 대하여 야당 국회의원 177명 이상이 찬성하였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 170명 이상이라는 엄청난 찬성에도 불구하고 양곡관리법이 시행되지 못한 것을 두고 대통령의 일방적인 거부권 행사는 잘못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다수결의 힘의 논리에 따라 거대 야당이 소수 여당과 합리적이고도 적극적인 협의를 거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법안의 내용을 양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과시켜서 발생한 점에서는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으로 볼 수는 없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과유불급이다. 다수결 힘의 논리나 대통령의 거부권도 남용하면 결국 과유불급의 후유증이 반드시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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