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대체로에서 음료수 사기
[좋은 시를 찾아서] 대체로에서 음료수 사기
  • 승인 2023.05.0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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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희 시인

이런 골목엔 슈퍼마켓 한 곳 쯤이 보여야 하는데,

음료수를 사지 못했다 묵은 때 벗겨낸 바람이 지나간다

300미터 떨어진 대로에서 트럭 한 대쯤 경적을 울린다면 아마 파란 트럭일 테지.

이슥해질 때쯤 길고양이가 숨었다 나타나는 건 찾을만한 번지수.

아이를 중환자실에 두고 일을 나가야 하는 한 여자가 가을뻐꾸기처럼 운다

들숨만으로 운다. 이 울음은 오늘의 주요성분일까 잔류성분일까

시간의 표정들이 대체로에 모이면 틀린 번지수마저 주소가 된다

어떤 일이란 늘 생겨났지만, 궁금한 건 무슨 일.

대체로에 서면

고독을 삼켜야 하는 것처럼 일상이 사건들을 잘 삼켰다

골목 모퉁이 간신히 찾은 슈퍼마켓, 탄산음료 당분이 건강에 해롭다는 건

자주 잊어도 되는 사실. 갈증은 금세 사라진다

대체로 평온한 하루였다

◇이지희 = 계간 ‘시인시대’ 등단. 방송시나리오작가. 미니픽션작가. 대구시인협회, 죽순문학회회원. 2023년 대구문화재단 문학창작지원 선정.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기금선정.

<해설> 난해한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이 깊어졌다. 어쩌다가 시인은 이리도 어려운 모험을 시도 한 걸까? 데체로? 실재 존재하는 도로의 이름일까? 아니면 국어사전적 의미로 “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에 걸쳐서 공통으로”의 대체로 일까? 아무튼 무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묵은 때를 벗겨내고 맞는 바람의 시원함에 덧보태어질 탄산음료가 주는, 갈증해소를 몰고 올, 어떤 증폭된 시원함을 시인은 지금 골목에서 애타게 찾고 있다. 대로에서 300미터 떨어진 그곳이며 파란트럭의 경적소리가 울리는 어스름내리는 그곳에서 길고양이를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그곳이 시인이 찾아낸 대체로가 아닐까? 문맥상으로는 그럴 것이고 등장하는 여자는 난감한 입장의 노동자인데 그녀의 입장을 모두 시원하게 날려주는 “대체로”는 길이 아닌 얼버무리는 말로써의, 아무런 사건도 터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인, 평온한 하루에게 던지는 어떤 탄성의 화두일 터.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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