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에는 호수가 있다
깊고 푸른 호수가 고요의 빛이라면 그 빛은 물과 산을 바라보는 고요, 아니 잎이 오므라든 채 겨울을 나는 가침박달의 흰 꿈이다 사향노루가 곤히 잠든 호숫가, 누군가의 한 생이 저물어간다
밤이 깊으면
십일월에 눈이 온다
빨간 자전거에 꽃이 핀다
◇김상환= 1981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영혼의 닻’.
<해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곳이 산정 아닌가? 그런 산정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깊고 푸른 호수를 시인이 시로 그려둔다는 것은 자신이 아마도 겨울 나는 가참박달나무 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온몸이 흰 나무이면서 때 묻지 않은 흰 눈을 덮어쓰고서야 보일, 어떤 경지를 시인은 한 폭 그림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정신에 정상에 가닿으려는 고결함이, 또는 그런 세계를 꿈꾸고 있는 자신의 독백이 이 시에 바탕이 아니겠는가. 저물어가는 누군가의 한생이 십일월에 눈을 불러 빨간 자전거에 태우는 것 또한 가참박달나무의 꿈일 것이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