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수 개인전 '이웃한 세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21일까지
윤창수 개인전 '이웃한 세계',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21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3.05.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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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부산이야기…부산의 뿌리, 근원, 기원 포착
타인을 향한 이해와 타인과의 소통으로 근원에 다가감
원도심 연작 통해 역지사지 구현
윤창수 작 '주인공프로젝트 01'.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윤창수 작 '주인공프로젝트 01'.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인간의 삶 자체가 고통이지만 고통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관계성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인간의 모든 환희와 고통들이 연결성으로부터 파생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연결성으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여행이다. 여행지의 모든 것들은 관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철저하게 타자화가 가능하며, 그것은 곧 불필요한 감정들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사진작가 윤창수가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은 동일시다. 타자화를 통해 감정의 자유를 느끼기보다 동일시를 통해 감정의 깊은 협곡 속으로 오히려 빨려들어간다. 자신과 무관했던 대상을 특별하게 감각하는 순간부터 대상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시도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삶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그런 과정을 통해 피사체의 본질에 다가간다.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법론으로 "타인을 향한 이해와 타인과의 소통"이 자리한다. 그런 그의 작업세계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개인전 '이웃한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의 사진예술의 종착지는 역지사지다. 철저하게 누군가의 시선이 되어보는 것이다. 피사체를 더 많이 이해알고, 이해할수록 피사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고, 이는 그의 사진이 추구하는 가치다. 피사체와의 동일시는 "대상의 뿌리, 근원, 기원에 다가가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의 사진은 부산이야기로 수렴된다. 부산의 역사와 부산 시민들의 삶의 모습을 포착하며 부산의 근원으로 들어간다. 특히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서민들의 터전이다.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원도심이다. 그곳은 그의 가족이 처음 부산에 터전을 잡은 곳이자 부산의 서민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 지역이다. 

그의 부산이야기는 2011년에 '원도심' 연작으로 시작됐다. '원도심'의 첫 발표작인 '수정아파트' 연작은 "타인을 향한 이해와 타인과의 소통"을 지향으로 하는 그의 작업세계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수정아파트는 산복도로 위쪽에 위치해 있으며, 50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공동주거지다. 그가 20대를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처음 아파트가 지어질 때는 보통의 아파트였지만 5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수정아파트는 산업과 자본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중심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 하지만 수정아파트는 그 역사성으로 보면 부산의 근원이다. 그는 바로 그 지점에서 수정아파트를 기록했다. 

'수정아파트' 연작은 아파트 주민인 할머니들의 모습과 그들이 차린 밥상, 옷장 등을 피사체로 담아낸 작품이다. 각기 다른 피사체지만 따지고 보면 밥상이나 옷장, 할머니 등 할머니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며, 이런 측면에서 모든 대상들은 할머니들의 자화상이다. 이런 가감 없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파트 주민의 삶 속으로 깊게 소통하고 이해한 덕분이다. "처음에는 저를 경계하셨는데 계속해서 찾아뵙고 소통하면서 빗장을 여셨어요."

작품 '수정아파트'의 주제는 '평등'이다. 50년 된 아파트에서 주변부처럼 살아가지만 그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수정아파트를 지키는 노인들은 지금의 우리나라를 일구기 위해 젊음을 바쳤던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살아가는 공간인데 어떻게 주변부가 될 수 있나"는 것이 그가 처음 제기한 문제의식이었다. "저 뿐만 아니라 감상자들도 이분들을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동등하게 봐 주기를 바랐어요."

윤창수 작 '주인공프로젝트 05'.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윤창수 작 '주인공프로젝트 05'.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주인공 프로젝트' 연작도 "정치나 자본의 논리에 밀려났다고 주변부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풍경을 촬영할 때 중심이 되는 피사체가 중심에 오고 나머지는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각각의 대상을 촬영한 뒤 이어 붙여 완성한 작품이다. 이런 방식에 의해 하나의 풍경 속 대상들은 모두 중심이 된다. "주변부를 중심에 놓는 콜라주 작업을 통해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정면성을 드러내려 했어요."  

윤창수 작 '비평범의조화-06'.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윤창수 작 '비평범의조화-06'.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문현동 돌산마을을 촬영한 '비평범의 조화'는 '주인공 프로젝트' 연작 후속 작업이다. 한때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누렸지만 재개발로 지금은 사라진 마을을 13년간 촬영한 작품이다. 2009년에 이 마을이 벽화마을로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진동호인들과 처음 그곳을 찾았다. 당시 그는 여느 사진가들처럼 아름다운 조경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에 끌려 첫 발을 그 마을에 들여놓았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그 마을은 평범하지 않았다. 좁은 마당에는 묘지가 자리했고, 빨랫줄 옆 텃밭 울타리는 묘지의 비석에 의존하고 있었다. 순간 한낮인데도 오싹함을 느꼈지만 막상 그곳의 주민들에게는 산자의 주거지와 죽은 자의 묘지에 대한 경계가 없었다. 그는 삶과 죽음이라는 이질적이면서 비범한 것이 조화를 이루는 광경에 묘한 감정을 느꼈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윤창수 작 '비평범의조화-01'.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윤창수 작 '비평범의조화-01'.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비평범의 조화' 연작에서 색채가 도드라진다. 돌산마을이 디지털 카메라의 조작으로 현실과 전혀 다른 이질적인 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평소에 우리가 알던 자연의 색과 완전히 다른 색이지만 작품을 통해 처음부터 그런 색이었던 것처럼 인식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방법론이다. 이는 색을 통한 역지사지이자 작가 자신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변화를 사지(思之)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역지사지로 생각하려 하지만 인간이기에 완벽할 순 없어 사진 속 색을 통해 완벽하게 역지사지를 구현하고 싶었어요."  

2021년부터 시작한 '거리의 차이' 연작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드러난 현상을 포착했다. 코로나 19로 평소에 거리에서 만나던 노인들을 1년 만에 다시 재회하게 되면서 그 짧은 1년간 현저하게 늙어버린 노인들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아 시작했다. 소통이 단절된 세상에서 노인들의 1년은 젊은이들의 1년과 달랐다.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 만남을 이어가는 젊은층과 달리 노년층은 그야말로 단절을 겪으며 소외됐고, 그것은 육체의 쇠락으로 연결됐다. 어떤 형상을 대하는 태도나 양상이 계층에 따라 현저하게 달라지는 현상을 다뤘다.  

"역병에 대응하는 것마저도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 기록을 '거리의 차이' 연작에서 녹여냈어요." 전시는 21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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