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춘추> 걷는 즐거움
<문화춘추> 걷는 즐거움
  • 대구신문
  • 승인 2009.03.0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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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걸어서 출근을 한다. 초봄의 싸늘한 아침 공기가 아파트 실내 공기에 푹 젖어있던 몸을 이마와 콧잔등으로부터 심폐까지 상쾌하게 휩싸고 돈다.

시원하다. 어깨와 등에는 낮고 깊고 은근한 아침햇살이 출근하는 나를 따뜻하게 격려해준다. 가게 문 여는 소리, 뛰어가는 중고생들, 빨갛고 파란 신호등 색깔들이 훨씬 기분 좋게 느껴진다.

직장에서 차량 이부제를 워낙 엄격하게 지키는 바람에 시작한 출퇴근 걷기가 일년 남짓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출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고, 주말에도 웬만한 모임은 걸어서 다니게 되었다.

걷기에 특별히 좋다는 신발을 신지도 않고, 이른 바 ‘파워 워킹’이라는 요란한 모양새의 걷기를 하지도 않는다. 그냥 구두 신고, 넥타이 매고 천천히 걸어간다.

걸어서 집을 나서면 골목 안에 잘 꾸며진 커피숍을 먼저 지나게 된다.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그 안의 향과 분위기,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꽃집을 지난다. 우리 동네 봄기운이 이 꽃집에서부터 피어나는 것 같다.

지름길로 가기 위해 고급 아파트 정원을 가로지른다. 멋진 조경과 세련된 조형물들이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 같다. 가진 건 없어도 누릴 건 많다.

걸어서 다니면 사람들이 가까이서 자세히 보인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중년 직장인의 덜 깍은 수염도 보이고, 스쳐가는 젊은 여성의 윤이 나는 머릿결에서 상큼한 향수 냄새도 맡아진다.

차를 타고가면 나를 감춘 곳에서 남을 관찰하게 되지만, 걸어서 가면 나도 남도 드러난 곳에서 서로가 교감하게 된다. 보다 살갑다.

걷는 것이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때로는 추위와 바람, 뜨거운 햇살이 걷기를 힘들게 할 때도 많다. 또, 비닐봉지에 싼 물건들처럼 보잘것없는 포장을 한 짐이라도 들고 가야하는 날은 더욱 스타일이 구겨진다. 이런 날은 어떻게 걷지? 그냥 차타고 간다.

이상현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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