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너가
<대구논단>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너가
  • 승인 2009.03.11 17: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아동문학가 · 교육학박사)

지난겨울 방학 중 구미에 있는 경북교육연수원으로 강의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1층 소강당 뒷마당에 암청색의 바윗돌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바위에는 `HODIE MIHI, CRAS TIBI’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글귀 아래에는 `세계의 명언 중에서’라는 출처가 달려있었다.

이 명언이 새겨진 바위는 응달에 놓여있는데다 구석진 곳이라 사람들이 발길이 제대로 닿지 않는 듯하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그 글귀를 읊조려 보았다. 도대체 그 뜻이 얼마나 깊기에 단 네 마디의 말이 이곳까지 알려질 정도로 세계의 명언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이 구절은 어디에서 많이 본 듯도 하였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것은 가톨릭대구대교구청 경내의 성직자 묘지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 묵은 사진을 꺼내어 보았더니 오래 전에 이 글귀를 보고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그 뜻은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왼쪽 기둥에는 `HODIE MIHI’ 오른쪽 기둥에는 `CRAS TIBI’라고 새겨져 있었다.

사전을 찾고 몇 군데 전화를 하여 알아보았더니 라틴어 구절인데 그 뜻은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우리에게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 것일까? 이 구절은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아마도 세상은 돌고 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묘비명으로 많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죽음이라는 무거운 업보가 오늘은 나에게 다가왔지만 내일은 곧 너에게도 다가갈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다. 즉 오늘의 나의 모습은 미래의 너의 모습이고, 오늘 너의 모습은 과거의 나의 모습이라는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로마시대에는 전쟁이 잦았고 따라서 죽음도 많았다. 큰 전쟁에서 돌아오는 장군들에게는 웅장한 개선식이 베풀어지게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 주인공 뒤에서 노예들로 하여금 외치게 한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Memento Mori! Memento Mori!’ 곧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외침이다. 그런데 이 외침은 주인공인 장군을 향한 구호인지, 아니면 주인공을 보고 철없이 환호성을 질러대는 수많은 군중을 향한 것인지가 모호하다. 아마도 둘 양쪽 다 들으라는 구호가 아닐까 싶다. 많은 영광 뒤에는 많은 죽음이 있음을 기억하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다.

웅장한 개선식을 올리고 있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보면 이 순간이야말로 일생의 최고 순간이지만, 이 영광의 순간도 잠시면 지나가고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가르침이 이 구호 속에 담겨 있다.

실제로 당시에는 화려했던 개선식의 주인공이 얼마 지나지 않아 쫓겨나고 목이 잘리는 일이 빈번하였다고 한다. 영광이 크면 그만큼 적도 많아지고 흠도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 천지를 뒤흔드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에 앉아있다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목이 잘리는 일이 많은데, 이러한 운명을 맞지 않으려면 이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구호를 기억해야만 했던 것이다.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너가!’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구호는 실제로 로마 시대 전성기 때에 일상적인 인사말이었다고 한다. 즉 `굿 모닝’이나 `아침 드셨습니까?’와 같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인사말이 이 정도였으니 당시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도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한다. 기존의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은 급격한 도전을 받고 있다. 자칫하면 우리 또한 곧 사라지게 된다. 살을 에는 듯 한 추위가 매서운 한겨울에도 이미 땅속에는 따듯한 기운이 자리를 잡고, 땀을 콩죽같이 흘리는 한여름에도 땅속에는 이미 서늘한 기운이 자리를 잡듯이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오늘은 웃지만 내일은 울게 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