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쉰들러 리스트 같은 리스트는 없나?
<대구논단> 쉰들러 리스트 같은 리스트는 없나?
  • 승인 2009.03.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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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대기자)

요즘 신문을 오르내리는 가장 많은 단어는 단연 `리스트’다. 박연차 리스트와 장자연 리스트가 화제꺼리다. 리스트라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대부분 부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부정부패한 사람들의 명단이기 때문이다. 박연차 리스트는 주로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이라고 해서 흥미를 돋우고 장자연 리스트는 술 접대와 성 상납을 받았다는 의심이 가는 이들의 이름이다.

리스트의 사실여부는 경찰과 검찰에서 가려낼 사항이다. 뇌물이 제공되고 정치자금이 주어졌다면 범죄이기 때문에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도 꼼짝없이 붙들려간다. 장차관을 지내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도 예외 없다. 이러한 리스트는 과거에도 수없이 많았다. 특히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유난히 리스트가 유행처럼 번졌는데 그래서 아들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은 처음에는 무조건 부인하고 본다. “만난 일도 없다” “만났어도 밥 먹고 헤어졌을 뿐이다” “후원금은 받았어도 큰 뭉치 돈을 받은 일은 없다”고 발뺌부터 하고 보는 것이 상식처럼 통한다. 그들 중에는 진짜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버지와 자식의 이름을 내걸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는 모습을 보면 “아! 저 사람은 참말 억울하게 리스트에 올라온 모양이다” 하고 동정심도 인다.

그런데 막상 검찰이나 경찰에 소환되어 들어가기만 하면 액수가 다를 뿐이지 돈을 먹은 사실은 요지부동이다. 그 때는 이미 늦어 거짓말 한 것을 사과할 겨를도 없이 감옥으로 직행한 다음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정확한 표현이다. 적어도 뇌물사건에 관한 한 더 이상 정당한 표현은 없는 듯싶다. 솔솔 냄새가 나는데 아니라고 다잡아 떼다가도 잡혀 들어가면 불어버리는 것은 증거를 들이대기 때문이리라.

이번에 말썽을 빚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는 그렇다 치고 장자연 리스트는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젊고 예쁜 탤런트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가면서 연예계의 실상을 고발한 이 사건은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얘기가 그대로 재현된 것뿐이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이야기고 그럴 개연성도 커서 별로 충격적은 아니다.

그런데 이를 덮으려다가 오히려 일이 부풀어 올랐다. 뜨뜻 미적지근하게 전개하던 경찰의 수사가 아연 활기를 띄우기 시작한 것은 자살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이다. 연예계는 겉으로 화려하고 각광을 받지만 내면에 들어가면 이처럼 낯간지러운 면도 나타난다. 한번 떠보겠다고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지망생들에게 돈을 뜯어내고 몸을 탐하는 행위는 비열한 행동이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동물세계다.!

술 접대, 골프접대도 모자라 성 상납에 이르렀다면 이를 요구한 PD, 연예사 대표, 매니저, 언론사대표 등 수사대상에 오르고 유가족들이 고소한 사람들은 당연히 엄벌에 처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다.

우리는 이들 사건을 보면서 하구 많은 리스트 중에 어째서 사회를 밝게 하고 명랑하게 하는 리스트는 없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웃을 위해서 살신성인한 분들의 리스트, 화재현장에서 불을 끄다가 순직한 소방관 리스트, 범죄자를 쫓다가 되레 살해당한 경찰관 명단 등 아름다운 리스트도 쌔고 쌨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리스트가 큼직하게 신문을 장식해야지 더럽고 치사한 자들의 이름만 나오니 역겹기까지 하다. 리스트로 이름 붙여진 것 중에는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전쟁 드라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 등을 휩쓸었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점령한 다음 무자비한 유태인 탄압을 곳곳에서 전개한다. 아우슈비츠 집단 학살은 지금까지도 그 원흉을 찾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 때 쉰들러라는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유태인이 경영하던 그릇공장을 인수한다. 그는 독일군에게 뇌물을 바치고 나치당원이 되어 소위 완장부대가 된다. 냉혹했던 쉰들러는 유태인 회계사 스턴과 친분을 맺으며 홀로코스트에 대한 양심의 소리에 눈을 뜬다.

아무 죄도 없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유태인을 구해내기로 결심한 쉰들러는 독일군 장교에게 빼내는 숫자대로 뇌물을 준다.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던져 유태인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 때 살아난 사람들의 명단이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사자가 왔다 갔다 한 것은 격동기에는 언제나 있는 일이다.

왕조시대의 고변(告變)은 살생부에 들어 있느냐 여부로 판가름 났고 6.25를 전후한 남북한의 보도연맹 명단, 좌우익 리스트도 모두 생사를 가름 했던 한 시대의 비극이었다. 부정적인 리스트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리스트가 많이 나와야 사회는 밝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정부패 리스트를 엄중하게 다스려 일벌백계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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