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아름다운 정적들
<대구논단> 아름다운 정적들
  • 승인 2009.04.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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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식 (대구대 교수)

우리나라 고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해 몽골에 망한 중국의 송나라는 그 전의 당나라보다도 훨씬 발전된 나라였다.

역대의 사가들은 거란족의 요나라에게 만리장성 이남의 열여섯 주를 빼앗기고, 마침내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망하여 남쪽으로 천도한 송나라를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도 가장 형편없는 왕조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후세의 사가들은 당시 세계 최고의 정치 제도와 경제력, 정신문명과 과학문명을 창조한 왕조였다고 한다. 당나라와 송나라 사이에는 `역사적 단층’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진보를 이룩한 시대였다는 것이다.

송나라는 당나라의 군벌정치를 혐오하여 문치주의를 표방하였다. 이로써 고도의 관료제 사회와 유교적 사회 질서를 구축하였지만 대외적으로는 얻어터지기 일쑤였다. 거란은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약한 당구트족의 서하조차도 이기지 못하여, 해마다 막대한 선물을 주는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이전까지의 `무력 해결방식’에서 `경제적 해결방식’으로 대외정책이 변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유례없는 경제대국이던 송나라로서는 오랑캐를 막기 위해 엄청난 수의 군사를 유지하는 대신 돈으로 평화를 사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었지만, 거란과 서하에게 해마다 주는 세폐는 국가 재정을 압박할 정도였다. 막대한 세폐는 오늘날 이 나라의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이 그러하듯이 일종의 `평화 보증금’이었지만, 평화를 절대적으로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과의 국경선에 대량의 국방군을 두둔시킬 수밖에 없었다. 문치주의로 관료의 수는 당나라에 비해 2배나 늘어났고, 그 봉급 또한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명한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나오는데, 이때 적어도 20만 명의 관료는 무용의 관리로 월급 도둑에 불과하였다.

왕안석의 신법은 부국강병책으로 요약되지만, 위에 든 여러 요인으로 초래된 경제적 압박을 완화하고 대외적 수치를 만회하기 위한 개혁안들이었다. 이에 대해 급격한 개혁은 천하를 혼란시킬 뿐이라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혁을 찬성하는 신법파에 대해 이들을 구법당이라 불렀는데, 왕안석 보다 2살 연상인 사마광(司馬光)이 그 대표였고 소동파도 그에 속했다.

왕안석의 신법은 기득세력의 이익을 정면으로 침해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농촌과 도시 빈민을 건전한 생산층으로 육성하여 국가 전체의 재부를 늘리겠다는 그의 정책은 기필코 기득권층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비판이 워낙 거세 실각하였다가 다시 복귀하고 사임하기까지 그가 정권을 잡고 신법을 실시한 것은 6년, 1076년 56세 때 사직하고 은퇴했다.

1085년 왕안석을 신임하던 신종이 죽고 10세의 철종이 즉위했다. 할머니인 황태후가 섭정이 되었는데, 신법을 매우 싫어하던 그녀는 신법을 모조리 폐지하고 67세인 사마광을 재상으로 등용했다. 이듬해 왕안석도 죽고 곧 이어 사마광도 죽었다.

사마광은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소아격옹도(小兒擊瓮圖)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어릴 때 친구들과 노는데, 친구 하나가 물독에 빠졌다. 모두 쩔쩔매는데, 사마광이 침착하게 돌로 물독에 구멍을 내어 구출했다는 이야기다.

그림으로 그려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일화이다. 왕안석이 신법을 실시할 때 한림학사로 중진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그는 신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명문 출신의 사마광은 서민의 생활과는 먼 곳에 있었고, 빈민에 대한 동정심도 별로 없었다.

왕안석과 사마광은 신법에 대해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책 대립의 논쟁이었다. 이해관계라기보다 국가 경영에 대한 이념의 차이가 그들을 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으며,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시인인 소동파도 정치적으로 구법당에 속했으나, 전근 도중 금릉에 은둔해 있던 왕안석을 방문하였다. 그들은 말하자면 `아름다운 정적들’이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그 일가친지에 대한 수사를 보면서 이들을 떠올리는 것은 왜인가? 촛불 시위 등이 노전대통령 측의 세력과시와 현 정부 흔들기로 해석되고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이를 단박에 차단하는 수단이라는 세간의 시선들이 설혹 일부라도 사실이라면, 이 나라에는 어찌 어른스러운 `아름다운 정적들’이 아니라 `치졸한 정적들’들만 가득한가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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