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청운마을]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여유와 풍요의 땅’
[청송 청운마을]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여유와 풍요의 땅’
  • 배수경
  • 승인 2022.08.2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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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역세권 역참 모습 상상
마을 지명 ‘청운역’서 유래
일제 봉기 ‘청송의진’ 주둔처
마을 경치 ‘취동팔경’에 실려
평해 황씨 집성촌 단합 잘 돼
주민 줄다리기·풍물놀이 참여
영의정·파서정 등 문화유산도
성천댁 ‘국가민속문화재’ 지정
청송군 8개면 136개 마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청운마을은 전통문화와 편리함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청송군 8개면 136개 마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청운마을은 전통문화와 편리함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2022경상북도 마을이야기-청송 청운마을 

 기차역이나 지하철역 주변 500m 이내를 통상 역세권으로 부른다. 교통이 편리하고 유동인구가 많아 상업시설과 업무시설, 편의시설이 많이 들어선다. 생활이 편리하고 투자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역세권이 기차나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면 과거의 역세권은 어디에 형성되었을까. 예전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역참이 있었다. 역참은 중앙과 지방 사이에 명령의 전달과 관리의 사행, 운수를 뒷받침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기관이었다. 역참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있었지만 고려 말 원나라의 영향으로 크게 발전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집권제가 강화되면서 더 활성화됐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의 역참은 41역도 516역으로 전국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짜여졌다. 당연히 이 역참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산이 모여들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그 기능이 점차 줄어들면서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역참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당시의 번창했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청송군 청송읍 청운마을이다. 청운마을의 지명은 이 청운역에서 유래했다

1895년 의정부에서 편찬한 ‘영남역지’에 따르면 안기도(안동)에 본역 및 금소역 등 11개 속역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운역은 안기도에 소속된 속역이었다. 1937년 간행된 ‘청기지’에도 청운역은 청송부 남쪽 10리, 남쪽으로 문거역 40리, 이점평역, 안동 금소역, 각산역까지의 거리 등이 기록되어 있다. 중마 2필과 복마 5필, 역리 400인, 역노 51인, 역비 49인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위전답도 39결 13부 2속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청운역은 한말 일제에 항거하여 봉기한 ‘청송의진’의 주둔처로도 알려지고 있다. 역 앞의 넓은 백사장에서 의병들이 진법을 익히고 사격연습을 했다고 한다. 당시에 번성했던 모습은 현재의 상황으로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청운리는 청송군 8개면 136개 마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예전에는 300호가 넘었었다. 현재도 220호나 된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농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큰 마을이다. 학생들이 많다보니 마을 안에 초등학교도 있었다. 현재는 폐교되고 다문화 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큰 우물이 4개나 있었다. 마을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운 경치는 ‘취동팔경’이란 한시에 고스란히 실렸다. 석판에 새긴 취동팔경은 영이정에 걸려있다.

 

청운마을 입향조인 ‘영이 황덕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영이정’.
청운마을 입향조인 ‘영이 황덕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 ‘영이정’.

 

영이정은 청운마을 입향조인 ‘영이 황덕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다.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으로 전면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1734년 마을 한 가운데에 창건됐다가 1945년 용전천 변인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영이’는 황덕필의 호로 ‘때와 형세를 알고 소요자재(천천히 거닐며 어떠한 속박 없이 마음 가는대로 사는 삶)함’을 뜻한다. 평해 황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줄다리기조형물
청운마을 줄다리기를 형상화한 조형물.
풍물놀이조형물
청운마을 풍물놀이를 형상화한 조형물.

 

예전부터 집성촌이라 단합이 잘 되는 마을로 명성이 높았다. 마을의 단합을 상징하는 것이 줄다리기와 풍물놀이다. 둘 다 단합이 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놀이다.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에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편을 나누어 열린다. 줄 길이만 암수 각각 150m로 연결하면 300m에 이른다. 한 아름이 넘는 원줄에 곁줄을 달았다. 줄은 전 주민이 참여해 한 달 동안 만든다. 줄이 완성되면 행사 당일까지 밤을 세워가면서 줄을 지키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화합하고 단결하는 것이 생활화한 것으로 보인다. 풍물놀이도 유명했다. 매년 정월에 집집이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고 전 주민이 어울리는 축제의 마당을 열었다. 지금은 풍물놀이의 명맥이 끊어졌지만 예전에는 마을 18개 반에 반마다 풍물단이 있었다.

성천댁
마당 작은 집으로 불리는 성천댁.

풍요로웠던 마을이었던 만큼 문화유산도 많다. 입향조 황덕필을 위한 영이정을 비롯해 가의대부 황정필을 기리기 위해 세운 파서정, 유학자 황학 선생이 후학을 양성했던 만취서당과 그를 기리는 만취정이 있다. 마당 작은 집으로 불리는 성천댁도 있다. 안뜰을 중심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口자형 뜰집이다. 대청 좌우에 사랑방 2칸과 안방, 윗방이 배치되어 있고, 대청 앞채에는 부엌과 고방, 외양간이 배치되어 있다.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가민속문화재 제 172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당 작은 집 성천댁은 마당도 한 평, 하늘도 한 평이다. 밤이면 이 한 평의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린다.
 

모든 가정 스마트 방송 설치
LPG배관망구축사업 완료

상수도 현대화사업 추진도

용전천 복원 위해 치어 방류

그렇다면 오늘의 청운마을은 어떤가.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금년에 건립된 224㎡의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만남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마을 총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를 진행한다. 주민 건강을 위한 요가교실과 건강체조교실로도 이용된다. 마을의 모든 가정에는 스마트 마을방송이 설치되어 있다. 스마트방송을 통하여 각종 공지사항이나 재난정보를 전달한다. 외출 후에는 재청취도 가능해 마을 소식을 놓치는 일은 없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은 모두 점멸센서를 부착해 자동으로 켜지고 꺼진다. 주택과 너무 인접한 가로등은 야간의 불빛으로 인한 생활 불편을 줄이고, 농경지 주변은 가로등 불빛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상수도 현대화사업을 추진해 수도꼭지만 틀면 사철 맑은 물이 쏟아진다. 대형 가스탱크를 설치하고 각 가정으로 LPG가스를 공급하는 LPG배관망구축사업을 완료했다. 이제는 밥을 짓거나 조리를 하다가 가스가 떨어질까 하는 걱정도 없어졌다. 연료비도 줄이고 편리함도 갖춘 에너지복지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차량통행이 많은 마을 앞길에는 인도를 설치해 교통사고 위험을 크게 줄였다. 여름철 밤에는 어르신들의 휴식공간이 되기도 한다.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용전천의 옛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매년 쏘가리와 꺽지, 메기 등 토종물고기 치어도 방류한다. 조선시대에 청운역이 원근 각지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었다면 오늘의 청운마을은 생활의 편리함을 두루 갖춘 현대식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통문화와 편리함이 공존하는 마을이다.

윤성균기자·강현수필가

 

<우리 마을은>

황병국 이장
황병국 이장

 

 

황병국 이장...생활 편리함 도모 다양한 사업 추진

“청운마을은 청송군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지만 6·70년대의 이농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하여 마을은 점점 쇠락해가고 있었습니다. 그 점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귀향 이후에 마을을 다시 발전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황병국 이장은 이곳 청운마을 출신이다. 학교를 마친 후에는 구미에 있는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노동조합 부위원장을 맡아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한 노동운동도 했었다.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2002년 귀향했다. 아내도 찬성했다. 2016년 이장을 맡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을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생활 편의시설을 갖추어 어르신들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것이었다.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했다. 마을의 모든 가로등은 자동점멸형 가로등으로 교체했다. 스마트 마을방송을 도입하고, 마을 회관도 건립했다. 상수도 현대화사업과 LPG배관망 구축사업을 추진해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했다. 통행량이 많은 마을 앞길에 인도를 설치해 교통사고로부터 안전한 마을을 만들기도 했다. 좁은 농로를 3m로 확장해 농작업이 편리하게하고 자산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앞장섰다. 무엇보다도 마을의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던 지적재조사사업을 완료했다. 사하라 태풍으로 파손된 마을은 이후 지적불부합지역으로 남아있어 건축 등 소유권 행사에 제약이 많았다. 재산권에 대한 이해관계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지적재조사사업을 완료했다. 마을의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한 것이다.

앞으로는 마을 앞을 흐르는 용전천에 대한 하천복원사업을 추진해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되돌리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6·70년대 고향을 떠났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귀향을 지원하는 귀향닥터 역할도 할 계획이다. 도시에서 정년을 맞은 베이비부머들의 귀향을 촉진시키는 것이 농촌을 살리고 고향을 살리는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황 이장의 귀향닥터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강현수필가

<가볼만한 곳>
 

송소고택
송소고택
◇송소고택...양반가 건축양식 갖춘 고택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꾼이었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에 건립한 고택이다. 99칸으로 민가에서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저택이다. 경북 북부지역 민가양식으로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다.

살림공간과 휴식공간, 작업 및 생산공간을 별도로 배치한 양반가의 건축양식을 갖춘 건축양식이다. 바깥마당에 담장을 설치해 내.외부를 분리했다. 전체적으로는 口자 형으로 총 10채의 건물로 구성됐다.

국가지정 민속자료 250호로 지정됐다. 2012년 문화관광부 지정 한국관광의 별 숙박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연간 7만여 명이 방문하는 관광명소다.

마을 안에 초전댁과 창실고택, 요동재사, 송정고택, 찰방공종택 등 고택이 많다. 강릉의 선교장, 보은의 우당고택과 함께 전국의 3대 99칸 고택으로 불린다.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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