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지만 정치 지형은 국민의힘에게 그 어느 때보다 암울하다.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 부동산 정책 혼란, 코스피 불안 등 여권에 악재가 쌓였음에도 정작 민심이 떠나는 쪽은 야당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지방선거 예측은 명확하다. ‘여당 승리’ 42%, ‘야당 승리’ 35%. 특히 중도층은 한 달 만에 여당 44%, 야당 30%로 격차가 무려 14%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는 여당이 잘한 결과가 아니라, 국힘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완전히 상실해버린 결과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가장 큰 무기인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조차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는커녕, 스스로 내던지다시피 한 채 국회에서 싸울 힘을 방기했다. 최근 몇 년간 민주적 정당 활동의 기본을 스스로 포기해 왔다. 행동은 요란하지만 실질적 정치력은 텅 비어 있다. 국회 안에서의 입법력·정책 조율·감시 기능은 사실상 작동을 멈췄다. 대신 ‘장외투쟁’, ‘현수막 정치’, ‘길거리 마이크 정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정치의 무기고를 버리고 확성기 하나만 들고 전쟁터에 나간 꼴이다.
이런 행태가 반복되자 보수 텃밭에서조차 지역구 의원들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정부를 견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선가 현수막 들고 소리치는 모습만 보이는 ‘구호 노동자’로 전락했다. 보수적 유권자들이조차 “저 사람을 왜 국회의원으로 뽑았는가?”라는 회의에 빠졌고, 그 감정이 누적되며 결국 국민의힘 전체가 혐오정당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오늘의 민심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다. 그것은 배신감에 가깝다. 이재명 정부나 민주당 정책이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도 불안하고, 경제도 불확실하다. 그럼에도 “그래도 국민의힘은 안 된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왜인가? 민심은 지금 여당의 실책보다 야당의 무능과 자기파괴적 태도에 더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아니,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극단적 지지층을 향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를 이어가며, 장외투쟁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지방선거 경선 룰을 ‘당심 70%’로 바꾸는 결정은 그 절정이다. 민심이 떠나고 있는데도 민심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친다는 것은, 마치 침몰하는 배 위에서 구명조끼 대신 쇳덩이를 껴안는 격이다.
정책 경쟁은 실종됐고, 장외투쟁은 반복되고, 국회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이 모든 현실을 외면한 채 국민의힘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우리가 더 세게 싸우면 이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 정치가 아니라 자기 최면 정치, 심지어 정치적 조현증에 가깝다. 실체 없는 적개심만 키우며 중도층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극단의 틀에 가둔다.
반면 민주당도 완벽한 정당은 아니다. 코스피 불안, 경제 혼란, 정책 리스크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 국회·지역·정책 현장에서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야당이 무능할수록 여당은 굳이 잘할 필요도 없다. 야당의 실패가 여당의 성과가 되는 기형적 역설이 작동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지지율 부진이 아니다. 그것은 정당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위협하는 구조적 붕괴다. 유권자들은 묻고 있다.
“국회에서 싸울 능력이 없다면, 왜 국회의원인가?” “정책이 아니라 구호만 외치는 정당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나?” “민생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정치는 결국 신뢰의 싸움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그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잃은 줄도 모른다. 결국 국민의힘이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국회 중심의 정책경쟁 복귀, 계엄 사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책임 인정,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정리된 거리 두기, 중도층과의 신뢰 재구축. 이것이 없다면 모든 장외투쟁은 소음으로만 들릴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이 겪는 위기는 정권의 힘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민심의 문을 닫아걸고 밖에서 소리치기만 한 결과다. 이 착각을 깨지 못한다면, 지방선거는 패배를 넘어 ‘당의 존재 이유’까지 흔드는 심판이 될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상대가 아니라, 스스로 자초하는 혐오다.
윤덕우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