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 ㈜데씨제 대표, 인간공학박사
원·달러 환율이 1천5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대구 시민의 장바구니와 지역기업의 손익계산서, 그리고 도시의 미래를 조용히 흔드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대구는 제조업 중심 도시다. 자동차 부품, 기계, 금속, 섬유 등 수출 비중이 높고, 원자재 대부분을 달러로 수입한다. 환율 1천500원대는 단순한 부담을 넘어 ‘위험 구간’으로 들어선 것이다. 원자재는 달러로 결제한다. 제조업에서 원자재 비중이 높다는 걸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서 ‘숨을 쉴 여유’가 줄어든다.

대기업은 환헤지(환율 위험 관리)를 통해 일정 정도 충격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대구의 제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이들은 환헤지 상품을 쓰기엔 금융비용이 부담되고, 인력도 여유가 없다. 결국 환율이 급등하면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가가 오르면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납품단가는 대기업·원청과의 계약에 묶여 있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가격을 올리면 거래가 끊길까 두려워 비용을 자기들이 떠안는다.

겉으로 공장은 돌아가고 수출도 이어지지만, 내부 손익은 점점 무너진다. 환율 1 천500원은 수출기업에게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상황이 다르다. 원자재 가격 상승 폭이 더 크기 때문에 ‘환율 이익’은 거의 없다. 오히려 수출량은 유지해도 수익이 줄어든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 기업들이 버티기 위해 생산 투자와 인력 채용을 줄인다는 점이다.

고환율의 충격은 기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구 시민의 생활도 흔들린다. 수입 물가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오르는 것이 식재료와 생필품이다. 대구 시민이 매일 소비하는 라면과 커피, 빵과 과자, 외식비가 다시 오르는 이유다. 이미 높은 물가로 지친 시민들은 지갑을 닫는다. 대구의 자영업 비중은 전국에서도 높은 편인데, 소비가 줄면 지역 상권은 직격탄을 맞는다. 고환율은 결국 대구의 골목과 상가의 불빛에도 영향을 준다.

또 하나의 불안 요소는 고환율과 고금리의 연결이다. 환율이 불안하면 한국은행은 쉽게 금리를 내릴 수 없다. 금리를 내리면 원화가 더 약해지고 환율이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대구의 가계부채 문제는 더 깊어진다. 대구는 부동산 경기 둔화로 가계부채 부담이 큰 지역 중 하나다. 집값 조정기에 고금리와 고환율이 겹치면 가계의 심리적 여유가 크게 줄어든다. 이자 부담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면 지역경제의 선순환이 끊어진다.

대구 경제는 이미 인구 감소와 소비 기반 축소라는 구조적 어려움을 안고 있다. 여기에 고환율이라는 외부 충격이 겹치면 지역경제 전반이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어느 날 갑자기 기업이 문을 닫지 않는다. 대신 투자 중단, 고용 축소, 자금 경색,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단계적 악화가 일어난다. 고환율이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조용한 침식 효과’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중소기업의 환위험 관리 지원이 절실하다. 환변동보험과 같은 정책적 장치를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금융기관이 지역 제조업 대상 컨설팅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고환율로 타격받는 식품·생필품 물가에 대한 지역 차원의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 취약계층 지원과 에너지 비용 지원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지역경제 방어막’이다. 셋째, 대구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장기 전략이 중요하다. 원자재 가격 변동에 덜 흔들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전환해야 고환율 시대에도 생존할 수 있다. AI·로봇·의료 산업 등 미래 산업 전환을 말할 때가 아니라, 실제 전환이 가능한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환율 1 천500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금융시장 뉴스가 아니다. 대구의 일자리, 기업의 생존, 시민의 삶의 질까지 모두 영향을 주는 구조적 변수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고환율의 위험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위험일수록 더 빨리, 더 깊이 스며든다. 지역이 살아남으려면 이제는 대구만의 ‘경제 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외부 충격이 올 때 흔들리지 않는 도시, 그 힘이 대구의 미래를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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