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이만(Kooiman)은 현대사회의 특성으로 "역동성, 복잡성, 다양성"을 강조한다: 사회가 일정 상태에서 머물지 않고 역동적으로 변하며, 사회구조가 전체구조와 하위구조 간에 상호작용이 복잡해지므로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또한 많은 집단이 이질적 가치를 추구하므로 단일 행위자에 의한 통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통치, 관리 또는 지배구조"를 의미한다. "함께 통치한다"는 의미의 협치(協治), 공치(共治)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정부의 의사결정 은 3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계층제 거버넌스이다. 과거 일방적인 정부 주도적 결정방식이다. 계층제의 맨 꼭대기에서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둘째, 시장(market) 거버넌스이다. 1980년대부터 신공공관리가 유행하면서 행정도 기업경영과 같이 경쟁을 추구하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는 형태이다.
셋째, 네트워크(network) 거버넌스이다.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결정하는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거버넌스이다.
우리 사회는 AI, 유전자 조작, 양자역학 등 첨단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저출생, 고령화 등의 사회구조 변화로 골치 아픈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정부 단독으로 해결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 강제력을 가진 정부만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전 정부주도 방식만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의료개혁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려는 정책이 의료계의 강한 반발로 의정갈등을 초래했다. 당초 정부 의도와 달리 오히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거버넌스는 1980년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요즈음 정부나 행정 대신에 거버넌스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환경, 교육, IT, 기업, 글로벌, 그린 거버넌스 등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실례로 ESG경영만 보더라도, 지구 온난화와 온실가스 감소 등의 환경에 대한 기업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 그리고 거버넌스란 말에는 참여를 통해 기업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경영하도록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거버넌스의 성공 사례는 IT, 경제, 환경, 복지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실례로 정부의 AI 거버넌스를 들 수 있다. 정부가 초거대 AI를 활용하여 행정 효율을 높이려고 시도한 프로젝트이다. AI를 결합해서 정책 설계부터 민원 처리, 그리고 의사결정까지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 전자정부 수준은 190개국을 대상으로 한 UN 전자정부평가에서 미국 등 여러 선진 국가들을 제치고 3회 연속 세계1위를 차지하는 등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물론 거버넌스가 만능은 아니다. 모든 문제가 거버넌스 방식으로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안들이 기존 관료제 시스템으로 더 잘 처리될 수도 있다. 또한, 거버넌스 과정에서 형식적 참여를 조장하거나, 이해관계의 충돌로 정책결정이 늦어지는 등 많은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주체가 전문성이 부족하거나 정책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롭게 발생하는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집단들 간의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적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비용을 살펴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 2023년 한 해에만 240조원으로 GDP의 10%수준이다. 이제 협상을 통해 동의를 얻거나 비공식적 협력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하고 다원화될수록 '중심이 없는(centerless) 사회', '다중심(multi-centric) 사회'로 변화된다고 한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거버넌스가 문제해결에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거버넌스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