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품은 강,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생명 품은 강,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 임종택
  • 승인 2020.01.12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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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 사색을 선물하다
강에서 바다, 바다에서 비로
기나긴 여정으로 이어진 물
겐지스처럼 삶과 죽음 공존
인간, 물의 순환을 위협하다
각종 오염물질 배출로 수질 악화
온실가스 증가로 해수면 상승
빙하 녹으면 지구 재앙 올 수도
낙동강2-2
사문진교 부근에서 바로본 낙동강의 모습. 무심하게 흐르는 듯하지만 강은 생명의 원천이다.
 
낙동강의낙조
강은 꿈을 꾸듯 흘러간다. 낙동강의 낙조.

 

[나무, 숲 그리고 자연이야기] (18) 낙동강을 바라보며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라고 시작하는 시 ‘겨울 강가에서’는 안도현의 시다.

달성 화원 사문진교 아래 낙동강을 찾은 2019년 마지막 날은 눈은 내리지 않았다. 시(詩)에는 눈이 강물속으로 뛰어들지만 물위에 녹아 없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시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시는 강물이 자신의 가장자리로부터 얼음을 얼려 온몸으로 눈을 받을 준비를 하고 물속 생명들의 포근한 담요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물은 그 밑으로 유유히 흐르고 뭇 생명들의 삶은 추운 겨울에도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겨울 강가에서는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강은 성스럽고 아름답다.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흐름의 묵직함. 내가 침묵의 강을 찾은 시간은 작년 마지막 날 늦은 오후다. 노을진 강은 거울처럼 빛나고 가끔씩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 파랑이 꿈결처럼 아른거린다.

강은 속삭이듯 귀를 강물에 대어 보라고 한다. 순간 저 멀리서 유람선이 미끄러지듯 은밀하게 다가오고 하얗고 긴 은갈치 같은 물결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강물은 으르렁거리며 쓰나미로 몰려와 나를 덮친다. 화들짝 놀라 강둑으로 피했다. 유람선이 만들어낸 파도가 강 어귀에 닫는데는 불과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 높지 않은 파도였지만 새삼 강물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강은 고요함 속에 자신의 폭발적 에너지를 감추고 있다.

강물의 범람은 때로는 인류에게 크나큰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지만 범람으로 인해 주변은 기름진 땅이 생기고 범람을 막기 위해 강을 관리하는 다양한 기술을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 준 것 또한 강이다. 그래서 강은 정(靜)과 동(動)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사물이다. 시인 바이런은 “고통을 통한 깨달음이 있기까지 사람들은 진정 물의 소중함을 모른다. 만일 그대가 사막에서 낙타의 방울 소리를 들었다면 그대는 진리가 있는 곳-샘가에 있기를 바라리라”라고 노래했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비로소 물은 생명이자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숲속 계곡에서 흘러나온 작은 시내가 모여 연못과 호수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해 농경사회가 정착되고 발전하여 왔지만 도시화 과정에서 그 호수는 흙을 메꾸어 건물을 세우는데 제공되었고 지금의 도시가 하천이나 강 이외에는 친수공간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된 것도 좀 더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도시계획을 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심 곳곳에 크고 작은 연못과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물의 도시를 꿈꿀수 있었을테지만 아쉬움이 남겨둔다.

강물이 해를 집어삼킬 즈음 한바탕 작은 바람이 일어 어둠의 그림자가 태양의 흔적을 지우려하고 있다. 이곳의 강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여정을 거치지만 강물은 바다와 서로 잇닿아 있다. 아니 강줄기는 저 물의 땅 아마존과 미시시피와 맞닿아 있다.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듯 인도 북부를 동서로 가르며 벵골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갠지즈강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한쪽에서는 죽음의 의식이 행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살아있는 자가 죄를 씻고 선업을 행하기 위한 목욕재계를 하고 있는 곳. 그들에게 강은 성스러운 곳이자 순례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듯 강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으로 치열한 삶을 산자에게는 목마름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며 죽은 자로 인해서는 영생과 윤회의 깨달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수십 수백억의 뼛조각 녹은 물은 우리의 피가 되고 육신이 되고 영혼이 된다. 유년 시절의 최고의 놀이터는 고향 어귀에 있는 작은 강이었다. 어둑해질 무렵 강둑에 올라 나는 구름이 되어 강물을 내려다본다.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의 내 존재의 모습은 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바람이 되어 강물 위를 울음소리를 내며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깊고 잔잔한 강물위에 내 가는 다리를 세워보려 하지만 대해(大海)를 향한 심연(深淵)의 질주는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새로운 한해는 수평선 위의 붉은 태양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대지를 적시는 강물 위를 조용히 흘러 우리의 곁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밤과 낮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이 그렇게 강물 위에 펼쳐져 영겁을 향해 끊임없이 유영하는 여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렇게 흘러 흘러 다시 돌아오는 여정의 끝은 바로 내가 서 있는 이곳 강이라는 사실이다. 오로지 이 현실만이 저 흐르는 강물에 맞서 힘차게 노를 저을 때 표류하지 않고 이곳에 꼿꼿이 서 있을수 있다.

강은 그렇게 꿈을 꾸듯 흘러간다. 깊은 강물이 태양을 집어삼키고 어둠을 맞이할 때 나는 지구 저 위쪽의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본다. 소련의 우주비행사 가가린은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지구는 새파랗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고, 미국의 아폴로 우주비행사는 지구를 보고 ‘우주의 오아시스’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아시스는 사막의 지하 단층 작용으로 물이 고여있는 샘과 같은 곳을 의미한다. 이는 모두 지구는 공기와 물로 덮혀있는 행성이고 지구는 “물의 별”이라는 애칭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구상의 모든 수계(水系)는 지구의 혈맥과도 같다. 혈맥에서 피가 흐르듯 물은 끊임없이 흐를 것이고 흐르는 물은 천(川)으로 강(江)으로 그리고 심장인 바다로 흘러 수증기가 되고 비가 되어 또 다시 되돌아 온다. 바다는 매년 수심 1.2미터의 물을 태양 에너지에 의해 증발되어 지상으로 끌어올려진다고 한다.

강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고, 물은 차지 않으면 기다린다. 그리고 장애물이 있으면 조용히 돌아가는 겸손함마저 가지고 있다. 옛말에 수도거성이라는 말이 있다. 수도거성(水到渠成)은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생긴다는 뜻이다. 내(川)와 강은 흘러야 그곳에서 수많은 다양한 생명들이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고 서식처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이 또한 물이 가지고 있는 기다림과 인내의 철학을 말한다. 흐르지 않은 강은 생태계가 선순환이 될 리 없다. 그래서 강은 끊임없이 생명수를 바다로 내보낸다.

강 속의 모든 생명 구성원들은 깨어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 모두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온전히 살아있는 강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인간이 버리는 오염물질로 인해 강물과 지하수의 수질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수질오염 중 하나가 바로 산성비다. 산성비로 인한 활엽수의 낙엽은 토양미생물이 적어 발효가 잘 되지 않는다. 썩지 않은 낙엽은 쌓여 겨울철 대형 화재의 원인이 될 뿐만아니라 산성비는 식물의 광합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산성비로 가득찬 강물은 생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온실가스 피해 또한 물과 관련이 있다. 온실가스의 주범은 이산화탄소지만 실제로 지구의 온도를 상승시키는 주역은 수증기다. 온실효과는 유엔의 주요사업의 하나로 전 세계가 명운(命運)이 걸려있는 국가적인 문제다. 해수면의 상승이나 지구의 온도변화를 조절해 주는 빙하가 사라진다면 물부족 혹은 과잉으로 인한 재해는 지구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고 결국 온도조절 능력을 상실한 지구는 평균 영하 18도 이하로 내려가 생물이 살 수 없을지 모른다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나 교토의정서는 경고하고 있다.

강을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품위를 지니고 있는 강은 느리지만 때로는 사색의 장소이자 행복한 우리네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그러한 강일진데 커다란 상처를 품고 있는 강물의 울부짖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강은 그 수많은 질문과 부르짖음을 끌어안은채 오늘도 침묵의 강은 흐르고 있다.

 
임종택(나무치료사·대구한의대 환경조경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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