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용어·신조어·생방송… 19년 동안 ‘최고 난이도’
의학용어·신조어·생방송… 19년 동안 ‘최고 난이도’
  • 한지연
  • 승인 2020.06.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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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 본산’ 대구·경북 주역들-1) 이영미 대구농아인협회 수어통역사
‘거리두기’ 등 수어 지정 안돼
4~5명 통역사 市 정례회 배치
서로 모니터링·피드백 ‘격려’
마스크 미착용 항의에 곤욕
손·표정 등 통해 정확한 전달
시선 분산 줄이려 옷차림 신경
정부 정책 동영상 제작·게시
수어 중요성 인식 계기 됐으면
법률 등 영역별 전문가 양성을
이영미-수어통역사1
수어통역 지원을 이어간 수어통역사들은 코로나19 대구시 브리핑 정례회에서 낯선 의학용어, 신조어 등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악전고투를 겪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구시 브리핑 정례회에서 수어통역 지원에 나선 이영미 수어통역사.
이영미-수어통역사22
수어통역사들은 서로 통역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등 버팀목이 됐다. 이영미 수어통역사(오른쪽)와 유선희 수어통역사.

낯선 의학용어와 신조어, 확진자를 비롯한 병원 입원환자 수 등 쏟아지는 숫자, 생방송에 대한 부담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구시 정례브리핑 수어통역 난이도를 상-중-하로 구분해 말하자면 단연코 ‘상’이다.

즉각적이고 정확한 수어통역을 위한 길은 순탄치 않았다. 내내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원고 한 장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시 브리핑 내용에 대한 의미 전달은 물론이고 음성으로부터 전해지는 말투, 감정, 억양, 뉘앙스 등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한 악전고투다.

지난 2월 중하순 무렵부터 코로나19 시 브리핑 수어통역 지원에 나선 이영미 수어통역사(여·41·대구농아인협회 사무처장)는 브리핑 현장을 떠올리며 “가슴 졸이던 긴장감이 선명하다. 19년차 수어통역 생활 중 가장 높은 난도”라고 말했다.

특히 신천지 대구교회발 집단감염 사태로 지역 내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때에는 압박감이 어마어마했다.

전국적으로 대구지역 확산 추세를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브리핑 초기인 만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수어통역사를 향한 항의가 이어졌다.

수어 또한 언어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손과 몸동작, 표정 등을 모두 필요로 하는 수어는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돼 국어로 인정받았지만 사회인식은 미미한 실정이다.

마스크를 미착용한 수어통역사에 대한 항의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면 정보습득 사각지대에 빠지기 일쑤인 청각장애인에게 상처로 남는 일이기도 했다.

“청각장애인이 정보 전달속도나 양 등 모든 국민과 동등한 입장에서 수어를 통해 사태파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했어요. 수어통역사로서의 의무이기도 했죠.”

이영미 수어통역사는 “정확한 의사전달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모든 수어통역사들이 마스크 미착용이라는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다.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통역사를 제외하고는 브리핑 현장에서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 다소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무엇보다 정확한 의사전달에 집중하면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옷차림, 손톱 상태처럼 사소한 영역도 주의를 기울였다. 시선 분산을 줄이기 위해 단정하고 어두운 색의 옷을 주로 입거나 네일아트를 자제하는 등이다.

특히 ‘낯선 용어들의 행진’을 둘러싸고 고심이 깊었다.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의학용어와 하루가 다르게 발생하는 신조어로 인해 수어통역사마다 제각기 다른 통역을 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초반 각각의 낯선 용어들이 수어 안에서 공용어로 지정되기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되면서다.

‘에크모’, ‘사이토카인’ 등 상당수의 의학용어나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블루’와 같은 신조어는 수어로 지정돼 있지 않아 정확한 의사전달을 위한 수어통역 상의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수어통역사는 “코로나19 관련 세계 및 국내 뉴스를 실시간으로 챙겨보고 용어를 숙지해가며 지문자 혹은 용어를 풀어 표현하는 손동작 등 적절한 방식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전했다.

수어통역 용어 사용상의 안정화는 브리핑 횟수가 늘어나고 한국농아인협회가 공용어를 지정·배포하면서 이뤄져가고 있다.

코로나19 시 브리핑 수어통역 지원활동 중의 갖은 고통을 이겨낼 힘이 되어 준 이는 바로 동료 수어통역사들이다. 이 수어통역사를 포함해 유선희·조미향·이경수 수어통역사 등 4~5명의 수어통역사가 시 브리핑 정례회 현장에 배치돼 활동해왔다.

브리핑 초반에는 2명의 통역사가 주 3~4회씩 교대로 통역을 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시된 3월 말부터는 브리핑 회당 2명의 수어통역사가 배치됐다.

이 수어통역사는 “존재 자체로 든든한 동료들과 서로 브리핑 정례회 모니터링을 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다졌다”고 했다.

그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 청각장애인의 정보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했다는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청각장애인은 시 브리핑으로 발표되는 정책들에 대한 세부정보를 수어로 전달받지 못해 불편함을 느끼기가 부지기수였다.

시 브리핑 현장에서만 전달되는 제한적인 내용을 습득해서는 마스크 수급과 배부상황, 대구시 긴급재난지원금 등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정책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이에 한국농아인협회가 발 벗고 나서 마스크 수급이나 시 긴급재난지원금과 같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세부 내용을 수어로 통역해 동영상을 제작·게시했지만,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없다는 점은 아쉬운 측면이다.

이 수어통역사는 “브리핑 이외에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 브리핑에서 수어통역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수어통역을 하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탓”이라며 “마스크 수급이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1339상담센터 등 여러 면에서 수어통역서비스가 부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대구시에서 코로나19 감염 확산 대응 7대 방역 수칙을 수어 통역해 영상 제작하는 등 최근 들어 수어통역의 필요성을 조금씩 인지해가는 모양새이긴 하다”며 “이번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수어통역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 수어통역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청각장애인의 수어통역 서비스 제공방식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한편, 수어통역사 활동영역 세분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기존에도 청각장애인의 수어통역 요청이 가장 많은 병원 통역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수어통역사가 동반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상전화를 통해 진료내용 통역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며 “수어통역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서비스 제공방식의 다양성이 존중 받아가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어통역이 더욱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영역별로 필요한 전문가를 달리해 교육을 세부 및 확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법률, 의료, 교육 등 각 영역에 따라 전문성을 키운 수어통역사를 별도로 양성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지연기자 jiyeon6@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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