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서악마을] 발 닿는 곳곳 천년 유적…애정 갖고 가꾸니 ‘핫플레이스’
[경주 서악마을] 발 닿는 곳곳 천년 유적…애정 갖고 가꾸니 ‘핫플레이스’
  • 배수경
  • 승인 2020.08.2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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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환경개선사업 ‘좋은 시작’
고분 가리던 대나무·잡목 제거
숲에 가려졌던 삼층석탑 ‘빼꼼’
다양한 꽃 심어 볼거리 제공
흐드러진 구절초 SNS 입소문
‘인생샷’ 찍고자 발길 이어져
 
선도산에 안기듯이 자리잡고 있는 서악마을은 ‘문화재로 인해 피해를 보는 마을’이 아니라 ‘문화재로 인해 덕을 보는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전영호기자
선도산에 안기듯이 자리잡고 있는 서악마을은 ‘문화재로 인해 피해를 보는 마을’이 아니라 ‘문화재로 인해 덕을 보는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전영호기자

 

[2020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경주 서악마을

 

도시 전체가 국립공원인 경주는 여행객들에게는 꽤 매력적인 도시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등의 유적지를 찾아 역사탐방을 하고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라면 새로운 트렌드를 느낄 수 있는 황리단길로 발길을 재촉한다. 보문단지의 벚꽃을 시작으로 동궁과 월지의 연꽃, 황성공원의 맥문동, 첨성대 주변의 핑크뮬리 등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꽃구경도 경주를 찾을 이유를 만들어준다. 최근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뜨고 있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경주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서악마을이다.

높이 398m의 야트막한 선도산에 안기듯이 자리잡고 있는 서악마을은 그동안 태종무열왕릉을 찾는 이들의 발길만 드문드문 머물 뿐 경주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마을이었다.
 

서악마을에 구절초가 피는 10월 중순이면 도봉서당 주차장에서 ‘구절초 음악회’가 열린다. 삼층석탑과 고분 주위로 선비의 기품을 닮은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펴 있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서악마을에 구절초가 피는 10월 중순이면 도봉서당 주차장에서 ‘구절초 음악회’가 열린다. 삼층석탑과 고분 주위로 선비의 기품을 닮은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펴 있는 풍경은 환상적이다.

이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인기를 끌며 경주여행지 목록에 더해지게 된 데는 구절초의 영향이 크다. 소박한 서악동 삼층석탑과 잘 가꿔진 고분 사이로 마치 눈이라도 내린 듯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풍경이 SNS를 통해 입소문을 나기 시작하면서 흔치 않은 풍경을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여행객들과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

서악마을은 걷기에 좋은 마을이다. 마을을 천천히 돌아보는데는 1시간이면 족하다. 무열왕릉이 있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살방살방 걸어 올라가다보면 검은색 기와를 이고 있는 한옥 뒤편으로 완만한 구릉의 서악동 고분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얼핏 보기에도 참 잘 가꿔진 마을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서악마을은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해 진흥, 진지, 문성, 법흥 등 낯익은 이름의 왕릉과 이름모를 고분군들이 산 기슭을 따라 줄지어 자리잡고 있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집 뒤로 보이는 것은 빽빽하게 자란 대나무 숲과 잡목으로 우거진 덤불 뿐이었다. 마을에 이름난 유적이나 문화재가 많다는 것은 주민들에게는 자랑거리라기 보다는 각종 규제와 제약으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아 크게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다.

서악마을 변화는 2011년 문화재청과 경상북도의 지원으로 ‘문화재돌봄사업단’이 서악마을 문화재 주변 환경개선사업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신라문화원(원장 진병길)이 있다.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고분을 가리고 있던 대나무와 잡목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잊혀져가던 문화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분에 잔디를 입히고 주변에 꽃을 심고 누구라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탐방로를 만들었다.

서악마을에는 봄에는 작약, 가을이면 구절초 등 계절마다 아름다운 꽃들로 여행객과 사진기자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맥문동이 예쁘게 피어있는 언덕 아래로 도봉서당이 보인다.
맥문동이 예쁘게 피어있는 언덕 아래로 도봉서당이 보인다.

대나무 숲 사이에서 눈에 잘 띄지 않던 서악동 삼층석탑은 주변을 꽃밭으로 가꿈으로써 서악마을의 ‘핫플’이 되었다. 봄에는 진달래, 연산홍, 작약을,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꽃무릇, 구절초를 볼 수 있다.

 

일명 보희연못으로 불리는 샛골못
일명 보희연못으로 불리는 샛골못

마을을 걷다 만난 연못은 실제 이름인 샛골못보다는 보희 연못으로 불린다. 김유신의 누이동생 보희가 꿈 속에서 선도산 꼭대기에서 소변을 보는 바람에 이 연못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2017년 KT&G 마을가꾸기 지원

담장 낮추고 지붕도 새단장

작년 문화재청 우수사례 선정

4월~10월까지 음악회 개최

꽃밭 거닐며 자연스레 감상

서원·서당 등에서 고택 체험 

문화재가 어느 정도 말끔하게 정리된 이후에는 마을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KT&G의 지원을 받아 2017년부터 마을 가꾸기 사업이 진행된다.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튀는 색의 패널지붕은 유성페인트로 칠했다. 얼핏 보면 기와지붕으로 보인다. 담장도 낮췄다.

30여가구의 한옥이 잘 어우러진 마을에 2층집이 들어설 뻔 했던 일이 있다. 2층집으로 건축허가까지 났지만 신라문화원 진병길 원장과 마을 주민들의 설득으로 집주인은 손해를 감수하고 설계를 변경했다. 지금은 집주인 역시 아주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단다. 마을의 풍경에 ‘옥의 티’를 만들 뻔 했던 일화다. 제대로 된 마을을 만들어 가는 것은 누구 한 사람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악마을은 운 좋게도 주민과 관공서, 그리고 기업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만들어진 보물같은 마을이다.

유적이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고 더 나아가 마을에도 활기를 불어넣은 서악마을의 변화는 지난해 열린 ‘제 1회 대한민국 정부 혁신박람회’에 문화재청의 우수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4월에서 10월이면 매주 토요일 저녁 서악서원에서 고택음악회를 연다. 구절초가 피는 10월 중순이면 장소를 도봉서당 주차장으로 옮겨 ‘구절초 음악회’가 열린다. 관객들은 구절초 사이를 거닐며 사진도 찍고 자유롭게 음악회를 즐긴다. 구절초가 필 무렵에는 평일에는 1천명, 주말에는 3천명 정도가 마을을 찾는다.

음악회 외에도 ‘7080 얄개들의 복고축제’를 열어 교복을 입고 추억의 수학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 프로그램은 ‘2019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악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사액서원으로 고택숙박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악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사액서원으로 고택숙박과 인성교육프로그램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악마을에서는 서악서원과 도봉서당 등 문화재와 4군데의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고택체험을 할 수도 있다. 특히 구절초가 필 무렵 마을에서의 하룻밤은 사람들이 북적이기 전 조용한 마을 풍경을 온전히 독차지 할 수 있어서 인기다. 서악서원에서는 고택체험과 함께 선비복을 입고 예절 체험과 민속놀이 체험 등 인성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서악마을은 ‘문화재로 인한 갖은 규제로 피해를 보는 마을’이 아니라 ‘문화재로 인해 덕을 보는 마을’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 폐사지에 연등을 달아 얻은 수익금으로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잔치를 열고 경로당을 새단장했다. 부녀회에서는 음악회와 축제때 음식을 팔아 마을 공동 기금을 마련한다. 천덕꾸러기가 될 뻔했던 문화유산이 이제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일상이 달라졌지만 부디 올 가을에는 서악마을에서 구절초와 어우러진 신라 천년의 정취를 맘 편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래본다.

안영준·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진병길 신라문화원 원장
진병길 신라문화원 원장

 

“문화재는 활용이 답…사람 머물면 오래 보존”  진병길 신라문화원 원장 

서악서원에서 만난 진병길 원장은 “문화재로 지정된 서원에 사람들이 머물다 가면 망가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문화재 활용이 곧 보존이다”라는 답을 내놓는다.

유적을 아낀다고 문을 닫아놓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으면 오히려 금방 못 쓰게 되고 지금처럼 사람들이 드나들며 매일 청소하고 환기하면 오히려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신라문화원은 93년 경주의 역사와 문화, 관광을 제대로 알리자는 차원에서 개원했다. 2018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선정 지역혁신가로 뽑히기도 한 진원장은 경주 토박이로 문화재지킴이 운동, 문화재돌봄사업단 등 문화재보존활동과 서원,향교 등 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현대적 가치로 재창출하는 활동을 30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

그와 서악마을과의 인연은 10여년전 서악서원을 고택체험시설로 가꿔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부터다. “첫 시작은 서악서원이었지만 천덕꾸러기가 되어 있는 문화재가 눈에 들어와 대나무를 베어 내고 가꾸다보니 마을 전체로 판이 커져 버렸어요.”

지금까지 서악마을의 변화과정에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지금까지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끝이 없다. 지금은 농기구 임대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경주초등학교(지금은 폐교가 된)를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서원과 마주하고 있는 학교 역시 배움의 장소입니다. 이곳을 고택 소유자들을 위한 연수장소와 문화공간으로 꾸미면 어떨까 합니다. 문화예술을 배우고 문화재를 교육하는 공간으로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곳은 없을 듯 합니다.”

[가볼만한 곳]
 

서악마을가볼만한곳-99
무열왕릉

◇무열왕릉

김유신과 함께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뤄낸 태종무열왕릉은 서악마을의 초입에 있다. 많은 능이 주인을 알 수 없지만 무열왕릉 앞에는 비석이 있어 확실하게 주인을 알 수 있다. 국보 25호로 지정된 태종무열왕릉비는 문무왕 1년 무열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지금은 비석의 몸체는 없어지고 비의 받침대인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있다. 거북이가 생동감 있게 조각된 귀부는 국내에 남아있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 된 것이다. 건너편에는 그의 아들인 김인문의 묘가 있다. 8월 1일부터는 주변 정비공사중이라 당분간은 관람이 불가능하다.
 

마애삼존불
선도산 마애삼존불

◇선도산 마애삼존불

선도산 정상에는 마애삼존불이 있다. 옛 사람들은 선도산을 서방정토로 여겨 아미타 삼존불을 모셨다고 전해진다. 가운데 높이 7m정도의 여래 입상은 바위에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양 옆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따로 화강암을 조각해서 만들어졌다. 중앙의 여래입상은 얼굴이 많이 마모되어 있다. 보물 제 6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국 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초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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