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창평리 마을]베트남 ‘리왕조’ 후손 터에 베트남타운 만든다
[봉화 창평리 마을]베트남 ‘리왕조’ 후손 터에 베트남타운 만든다
  • 배수경
  • 승인 2020.10.1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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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국가 ‘리왕조’ 7번째 왕자
쿠데타 피해 황해 화산면 정착
그의 13대손 이장발, 임란서 전사
지역 유림과 후손, 충효당 건립
화반 연꽃, 불교 아닌 國花 상징
郡, 국가지정 문화재 승격 준비
현지 정부, 왕조 후손 공식 인정
郡, 박닌성 뜨선시와 교류 협약
역사공원·문화원 등 조성 추진
 
봉화군 창평리는 베트남 리왕조의 후손인 화산이씨의 세거지이다. 사진 오른쪽위에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활약한 이장발을 기리기 위한 충효당이 있다. 최근 창평리 봉성면 일원에는 베트남 타운 조성이 진행중이다. 전영호기자
봉화군 창평리는 베트남 리왕조의 후손인 화산이씨의 세거지이다. 사진 오른쪽위에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활약한 이장발을 기리기 위한 충효당이 있다. 최근 창평리 봉성면 일원에는 베트남 타운 조성이 진행중이다. 전영호기자

[2020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봉화 창평리마을

 

어머니의 권유가 강했지만 아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와 백일도 지나지 않은 아들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예안(안동)에서 거병한 의병장 ‘김해’가 이장발을 서기로 불렀으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망설이는 것을 본 어머니 ‘덕성 윤씨’의 태도는 단호했다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은 유감이 없는 것이니 이 어미가 있다고 어렵게 여기지 말고 출전하라”고 했다. 자식을 전장으로 보내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효(孝)도 중요하지만 충(忠)이 먼저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시 사람들은 중국 진나라의 명장 ‘온교’가 출전을 할 때 어머니 최씨가 아들의 옷 소매를 잡고 늘어지면서 출전을 막았던 것과는 크게 다르고, 위나라의 ‘조조’가 초나라 유비의 책사였던 ‘서서(원직)’의 노모를 볼모로 잡고 위나라로 유인했을 때 “충과 효를 함께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느냐고 나무라고 “조상을 볼 면목이 없다”면서 자결을 한 ‘서서’의 어머니와 닮았다고 칭송했다. 이장발은 모든 전투에서 앞장서서 싸웠으나 그해 6월 10일 문경전투에서 전사했다. 이후 통정대부 공조참의에 추증되었다.
 
홍하에서온푸른별들
이장발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홍하에서 온 푸른 별들’

충효당과이장발에대한설명
이건 화산 이씨 종친회장이 충효당과 이장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열아홉 나이에 참전해 전사한 이장발은 누구인가. 이장발은 베트남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독립국가를 이룬 ‘리왕조(1009~1225)’의 후손이다. 리왕조는 216년 동안 존속하면서 베트남의 최초 학교인 문묘를 열고, 과거제를 시행했다. 국보 1호인 ‘연우사’와 수도인 하노이를 건설하는 등 큰 치적을 남긴 왕조였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나 리왕조는 멸족을 당했다. 이때 일곱 번째 왕자였던 ‘이용상’은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했다. 조상의 제사를 모시는 ‘제기’만을 가지고 중국 송나라를 거쳐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정착했다. 옹진으로 오는 도중에 해적들에게 잡혀가는 고려 사람들을 구해내고 고려 고종으로부터 그곳을 식읍으로 받았다. 몽고군의 침입을 받았을 대는 주민들과 함께 싸워 큰 전과를 올렸다. 조정으로부터 화산군으로 봉해졌다. 이후 화산을 본관으로 삼고 ‘이용상’을 시조로 받들었다. 이용상의 둘째 아들인 ‘이일청’이 안동부사로 부임하면서 후손들이 안동과 봉화 일원에서 세거지를 이루고 살았다. 360여 년이 지난 임진왜란에서 전사한 ‘이장발’은 베트남 왕자 ‘이용상’의 13대 손이다.
 
베트남 왕족인 화산 이씨 세거지인 창평리에는 이장발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효당이 있다. 충효당 뒤편에는 베트남 왕자 '이용상'의 이름이 새겨진 유허비가 있다. 전영호기자
베트남 왕족인 화산 이씨 세거지인 창평리에는 이장발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효당이 있다. 충효당 뒤편에는 베트남 왕자 '이용상'의 이름이 새겨진 유허비가 있다. 전영호기자

 

베트남 왕족인 화산 이씨의 세거지인 창평리에는 충효당이 있다. 이장발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건립한 재사(齋祠)다. 정면4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정면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중당협실형이다. 대청 뒤편에는 판벽에 판문(널빤지 문)을 설치했다. 건물에 비하여 큰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이장발의순절시를새긴편액
이장발의 순절시를 새긴 편액, 편액을 받드는 것처럼 보이는 화반에는 베트남 국화인 연꽃이 새겨져 있다.

판문 위에는 충효당기와 이장발의 순절시 편액이 있다. 편액을 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화반이 색다르다. 연꽃이 음각되어 있다. 불교의 상징으로 연꽃을 새긴 것이 아니라 조국인 베트남의 국화(國花)인 연꽃을 새긴 것이 특별해 보인다. 수 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조국을 잊지 않고 있다는 표시라고 할 수 있다. 편액에 새겨진 ‘순절시’를 옮겨본다.

백년 사직을 구할 계획을 가지고(百年存社稷)/ 유월에 갑옷을 입었네(六月着戎衣)/나라를 위한 근심에 몸은 비록 헛되이 죽고 말지만(憂國身空死)/ 홀로 계신 어머니 못 잊어 혼백만 외로이 돌아가네(思親魂獨歸).

충효당 뒤편에 있는 유허비에는 베트남 왕자 ‘이용상’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충효당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66호다. 국가지정 문화재 승격을 준비 중이다.

주한베트남대사일행
충효당을 방문한 ‘응웬 부 뚜’ 주한 베트남 대사 일행. 봉화군청 제공

1992년 한국과 수교를 하면서 베트남이 술렁거렸다. 767년 전에 멸족된 것으로 알려졌던 리왕조의 후손들이 한국에서 일족을 이루고 살아오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리왕조의 후손들이 돌아오면 베트남이 크게 발전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 말은 수교와 함께 많은 한국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진출하면서 현실로 이어졌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를 리왕조의 후예로 공식 인정하고 출입국과 세금, 사업권 등에서 자국민과 동일한 혜택을 부여했다. 리왕조 출범일인 3월 15일에는 공식행사도 열고 있다. 리왕조의 도읍지였던 탕롱의 주민들은 옛 궁궐터에 종묘를 짓고 매년 제례를 지냈었다. 왕손이 없어 시장이 제주를 맡아 왔으나 이제는 한국의 종친회장을 초청해 제주로 삼아 제례를 지낸다. 화산 이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서 전국에 230 가구에 1775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황해도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화군에 새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바로 충효당이 있는 창평리다. 창평리와 봉성면 일원에 베트남타운 조성이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타운에는 리왕조 역사공원과 리왕조 이주로드, 기념도로, 베트남문화원, 베트남 테마거리가 들어설 계획이다. 2018년에는 봉화군이 베트남 박닌성 뜨선시와 우호교류 협약을 체결했다. 2019년에는 박닌성 우호교류단 31명이 봉화군을 방문해 양 도시의 발전방향을 논의했다. 올해 8월에는 이장발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홍하에서 온 푸른별들’이 출간됐다. 김교윤 기자·홍상철 수필가
 

[우리 마을은]

 

박정선 창평리 이장
 

박정선 이장“새 한류 확산의 전초기지 될 것”

“위국헌신의 표상으로 불리는 ‘이장발’이 우리 마을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분의 업적을 기리는 충효당을 중심으로 베트남타운 조성사업이 준비되고 있어 새로운 한류문화 보급의 전초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라면서 박정선 창평리 이장은 들떠 있었다. 마을에 있는 충효당을 중심으로 해서 베트남타운이 조성 된다면 마을의 모습이 획기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3년 전부터 마을 이장을 맡아 봉사중인 박 이장은 활발하고 열정적이었다. 학창시절에는 사격선수로 활동했다.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2등까지 오른 실력파 선수였다. 결혼 전에는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했다. 태권도 4단의 스포츠우먼이다.

마을일에도 열성이었다. 못하는 일이 없다. 남자들도 힘들다는 대형 농기계도 척척 다룬다. 마을 여성작목반원 11명과 함께 소득사업도 추진해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한다. 쌀과 고춧가루가 대표적인 품목으로 주로 부산.경남지역에 직거래로 판매한다. 일종의 공동가공 공동판매사업이다.

주민들의 추천에 의하여 이장직을 맡으면서 생명사랑과 산불예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농약 안전사고를 예방해 소중한 생명을 지킴으로써 화목하고 웃음이 넘치는 마을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농약안전보관함을 보급하고 마을 현판식을 개최해 생명존중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난 7월에는 산림청으로부터 ‘소각산불 없는 녹색마을’로 선정됐다. 산불발생의 30%는 불법 소각에 의한 것이다.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논밭두렁 태우기와 불법 쓰레기 소각 근절을 통하여 산불방지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결과였다.

가을철이 되면 마을 어르신들이 채취한 송이를 대신 판매를 해주기도 한다. 인근 산에서 송이를 채취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다. 산림조합에서 수매를 하지만 교통수단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의 송이를 수집해서 판매를 대행한다.

마을 안길 확장과 담장정비사업에 박 이장은 자신의 땅 230㎡를 무상을 제공해 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박이장은 “창평리 마을은 예전부터 정이 많았던 마을이었다”면서 “웃음과 음식그릇이 담을 넘나들고, 집안 어른 생신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 함께 식사를 하던 그 모습을 다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조성될 베트남타운이 한국과 베트남 간의 우의를 다지고 한류문화가 동남아로 다시 뻗어 나가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볼만한 곳>
 
봉화목재문화체험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

‘봉화목재문화체험장’은 나무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 일원 12만5천여 ㎡의 넓은 부지에 2011년 문을 열었다. 목공체험실과 목재도서관 전시실 어린이체험관과 까페테리아 시설을 갖추고 있다. 부대시설로 삼림욕장과 자생식물단지, 야외교육장, 어린이 놀이시설, 잔디광장, 목재육교 전망대가 있다. 선조들의 목재문화와 생활 속 목재의 쓰임새, 목재의 생산과정, 목재의 종류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체험관에서는 목재를 활용하여 생활공예품, 놀이기구, 학습기구 등 다양한 목제품을 직접 만지고,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 체험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우리 목재의 우수성을 체험해 볼 수 있다. 목재놀이시설은 어린이들의 모험심과 균형있는 신체발달과 정서함양을 위하여 목재 뱃놀이시설과 잔디광장이 만들어져 있다. 야외교육장은 체험객들의 휴식과 교육장소로 제공된다. 금강소나무가 우거진 삼림욕장을 걷다보면 스트레스와 긴장이 저절로 풀리고 마음이 편안해 진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 할 수 있는 곳이다. 삼림욕장 정상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백두대간을 바라볼 수 있다.

자생식물단지에서는 구절초와 할미꽃, 패랭이꽃, 범부채, 쑥부쟁이 등 다양한 우리 꽃을 볼 수 있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날에 휴장하고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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