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노동력으로 버티다 중국·동남아에 자리 빼앗기다
저렴한 노동력으로 버티다 중국·동남아에 자리 빼앗기다
  • 곽동훈
  • 승인 2021.01.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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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산업구조 체질이 바뀐다] (1)섬유산업의 쇠퇴
광복 이후 적은 자본으로 시작
정부 육성정책·美 원조로 성장
1987년 국내 수출액 23% 차지
지역 제조업 절반 섬유업 종사
‘조국 근대화의 기수’, ‘전국 3대 도시’로 불리던 대구의 자부심은 지난 1997년 IMF이후 섬유산업의 쇠퇴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청년 고용 꼴찌’, ‘임금 수준 꼴찌’, ‘제조업 생산증가율 꼴찌’, ‘지역 내 총생산 27년(1992년~2018년)연속 꼴찌’등 각종 경제 지표에서 전국 최하위 수준을 보이며 ‘꼴찌 도시’. ‘고담 대구’라는 멍에를 안게된다. 이후 많은 기업과 청년들은 도시를 떠나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로봇산업 선도도시를 주창하며 산업구조 체질개선에 나선 대구는, 잔뜩 움츠렸던 날개를 다시 펴고 도약을 위한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본지는 새해를 맞아 총 3편(1. 섬유산업의 쇠퇴…사라진 자부심, 2. 로봇 특화 도시 도약…대기업 몰린다, 3. 로봇 산업 전망과 지속 가능 방안)으로 지역 산업에 대한 현 상황을 진단하고, 각계 전문가와 전공 학생들에게 자문을 받아 미래형 첨단 산업인 로봇 산업이 나아갈 길과 방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950년대 대구 침산동의 제일모직공장 전경.

 
1970년대 수출산업의 첨병이 된 홀치기 작업광경. 당시 섬유공단 홍치기 작업자였던 여성 홀치기 전문가들은 수출역군으로 칭송받았다.

 
현재도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구염색산업단지. 사진은 1990년대 공단 전경.

◇ 섬유산업의 시작

대구 경제를 주도했던 섬유 산업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에 비롯됐다.

섬유역사연구기관에 따르면 지난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일본의 병참기지화 정책에 따라 국내 섬유공장들은 일본의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공장으로 시작됐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국내 섬유산업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저렴한 노동력, 원활한 원자재 공급, 적은 자본과 낮은 기술력에도 운영이 가능했던 당시의 섬유산업은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정책과 미국의 원조로 빠르게 1960년대 후반부터 기반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섬유가 대구산업의 주력 업종이 된 것은 바로 이맘때 쯤이다.

이후 섬유는 우리나라를 수출 주도형 경제로 견인한 일등공신이 된다. 1970~80년 최대 호황을 누렸던 섬유산업에 힘입어 ‘섬유 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대구의 수출량은 1987년 절정에 달했다.

당시 언론기사 등에 따르면 한 해 148억달러(현 16조2천700억, 당시 가치로 160조 추산)로 한국 통상 수출액 전체의 23%에 달했다.

지역 제조업체에서 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에 달했고, 섬유산업으로 먹고 사는 인구는 40만명에 달했다.

◇ 섬유, 그 쇠락의 시작

1990년대 中에 내수까지 추월
‘고급화’ 밀라노 프로젝트 가동
연구개발 지원금 타사업에 사용
양적·질적 개선 기회 허공으로

1990년 초반, 값싼 중국산 섬유가 글로벌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중국산에 밀린 대구 섬유는 갈곳을 잃기 시작했다. 수출은 물론 내수시장마저 중국에 추월당하기 시작하며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대구 경제 암흑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전한다.

정부는 수출 비중이 높았던 섬유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국비 6천800억원을 들여 ‘밀라노 프로젝트’를 추진하지만 죽어가는 대구 지역 섬유산업을 살려내는 데 실패하게 된다.

이미 지역 제조업체들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 등으로 이전한 상황에서 실효성 없는 곳에 많은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꼭 필요했던 연구개발 사업은 저조했다. 고급화를 위해 지역에 투입된 연구비 305억원 중 205억은 연구소 운영비로 쓰였으며, 실제 연구개발에 투입된 금액은 10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다시말해 연구개발 명목으로 투입된 2천300억원 중 4%가량만 관련 비용에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밀라노(이탈리아) 지역과 같은 고급 직물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 구축이 이 사업의 핵심이었지만 홈페이지 구축, 패션 정보지 발행, 홍보, 패션쇼 개최, 관련 조형물 건설 등에 쓰이며, 양적 또는 질적 개선에 실패하게 된다.

◇참혹한 결과…기형적 산업구조가 되다

밀라노프로젝트가 시작된 다음해인 2000년, 대구 직물 수출액은 14억달러로 대구 전체 수출(28억달러)의 49%에 달했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수출 비중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2008년에는 지역 전체 수출액의 22%(10억달러)로 추락하게 됐다.

섬유제조업의 몰락으로 지역 산업 구조는 기형적인 구조로 변하게 된다.

 

2015년 중견·대기업 거의 없고
車 부품업체 대다수가 협력업체
첨단산업단지 조성 마무리 시급
대기업 유치·지역인재 채용을

대구시 산업연보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제조업 비중은 22.6%에 그친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거의 없고 99%가 직원 50명 미만의 작은 업체다. 제조업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서비스업인데 그 비율이 77%에 이른다. 과반을 차지하는 서비스업 역시 대부분이 1인 자영업자들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고용 안정성이 높은 대기업은 전무하다.

지역에 우수한 대학들이 있지만 청년들은 대부분 졸업 후 대구를 떠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대구 인구는 연평균 1만명씩 줄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 주력 업종이던 섬유 산업은 한때 지역 전체 업종 비중에서 29%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지난 1997년 IMF이후 쇠락으로 동해안과 서해안 등 주로 해안선에 위치한 자동차·조선업 대기업들에 밀리면서 그들의 산업 후방기지로 자존심이 바닥을 치고 있다. 그나마 섬유산업 쇠퇴기 이후 가장 비중이 높아진 자동차 부품제조 산업(16%)은 주로 대기업들의 2·3·4차 밴드(협력업체)로 경기 민감도가 높아 첨단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KMK경제연구소 김성범 소장은 “대구는 섬유산업 부진 이후, 자동차·전기전자 산업의 생산 증가도 상대적으로 낮아 청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첨단 산업단지 조성을 시급하게 마무리 하고, 입주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역 인재 채용 할당제 등을 정책화 하는 등 고용 안정과 우수한 인재양성을 위한 인프라 확충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동훈기자 kwak@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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