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우의 미래칼럼] 제주와 경북, 지방살이의 멍청한 산만함
[박한우의 미래칼럼] 제주와 경북, 지방살이의 멍청한 산만함
  • 승인 2022.07.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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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 영남대 교수, 빅로컬빅펄스Lab 디렉터
최근 몇 년 전부터 특정 지역에서 한 달 살기가 시대적 트렌드로 떠올랐다. 짧은 일정으로 유명 관광지에 가서 많은 사진을 찍고 바로 떠나는 패키지 투어의 효율성을 거부한 문화적 움직임이다. 한 달 살기는 거주하는 여행이다. 제한된 시간과 꽉 찬 일정이 주는 불안감 없이 정신적으로 편히 쉬는 슬로우 투어이다. 특히 일을 놓을 수 없고 효율적으로 업무처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한두 달 외지 살기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한 여행이자 원격 근무이기 때문이다.

효율적 집중력이 아닌 멍청한 산만함이 시간 낭비가 아닌 새로운 가치로 부여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인구감소로 소멸할 우려가 있는 지방의 기초지자체에 새로운 기회이다. 예컨대 소멸 지수가 높은 경상북도는 두 주소 갖기 운동을 통해 관계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멍때리기, 슬로우 투어, 외지 살이를 원하는 사람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는 건 그래서 반가운 일이다. 햇빛도 비추지 않는 지하철에서 사무실로 바쁘게 돌아가던 서울 생활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위해 지방이 해방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주MBC가 기획한 ‘나는 제주로 출근한다’ 프로그램은 인상적이다. 제주도는 국내외 사람들에게 휴가지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지자제가 아닌 방송사가 육지에 살고 있는 아홉 명을 선발하여 제주에서의 워케이션 체험기를 기획했다. 워케이션(workcation)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로 일하면서 즐기는 삶을 의미한다. 휴가지에서 일까지 함께 하는 제주도 실험은 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지자체가 벤치마킹할만한 가치 있는 시도이다.

경상북도에서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은 지방살이를 위한 이동성(mobility)의 부담을 줄여준다. 경북도는 최근 중앙 정부의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지원 공모’분야에 서울·전북과 함께 선정됐다. 이에 경북의 한옥마을과 독도가 메타버스로 재탄생한다.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의성 고운사 등이 3차원 공간으로 만들어진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당장에 지방살이를 못하는 사람들은 경북형 메타버스를 통해, 의사 결정에 대한 선택의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사람들은 디지털트윈 공간에서 단기적이지만 이동성을 연습하면서, 지방살이의 순환적 삶을 더 탄력적인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가 급격히 확산하고, 두 번째 거주지에 대한 수요도 많이 생기고 있다. 서울정주가 지방살이보다 생산성과 창의성을 억누른다는 연구결과를 찾지 못했지만, 실제로 두 지역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 환경에서 참신하고 창의성 있는 아이디어를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한다고 말한다. 도시살이는 화상회의와 유사하게 특정 주제에만 집중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창의력을 확장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면에, 지방살이는 주변의 여러 사물들에서 단서를 찾으며 광범위한 탐색을 가능하게 하므로 독창성을 발휘하는데 좋을 수 있다.

한두 달 살이 사람들이 쉬어도 괜찮고, 일해도 괜찮은 일시적(ad-hoc) 프로그램을 만들자. 일시적이라는 것은 임시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특기를 등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현지에서 봉사든 업무를 할 수 있는 매개 고리를 마련하자. 워케이션 체험을 통해서 지방살이의 성취도와 만족도가 높아지면 관계인구는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그들을 이방인이나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방문객이 아닌 진정한 관계인구로 만들기 위한 느슨한 공동체 행사를 기획하자.

워케이션에는 식자재 구매가 필요하다. 소위 SNS 맛집 중심의 단기 여행족하고 다르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 및 유통하는 재료로 간단하게나마 무언가를 요리하고 싶은 욕구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캐나다에 가면, 식료품을 실은 대형 트레일러가 전국을 투어한다. 특정 장소에만 열리는 주말 장터에 이동성 개념을 부여한 것이다. 그로서리 네이버(Grocery Neighbour)라고 불리는 이 회사는 전 세계에 20여개의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방문자가 트레일러 내부에서 카트를 중간에 두고 한 줄로 쇼핑하기 때문에, 거리두기도 자연스럽게 가능하므로 코로나 예방 효과도 있다.

서울과 지방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대세이다. 효율성 높은 집중력과 멍청한 산만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욕구의 틈새계층이 생겨나고 있다. 소멸위험의 지방자치단체는 멍 때리고자 서울을 떠나 변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로컬 푸드와 핫 플레이스 등 전형적 관광정보에서 벗어나 독창적 서비스를 고안해 보자. 일시적 여행이 아닌 한두 달을 보내는 사람들을 거주민까지는 아니지만, 중간 계층으로라도 만들어 보자. 일과 놀이의 공진화는 오늘날 인류가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뛰어넘어야 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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