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 업무추진비
[기자수첩]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는 업무추진비
  • 승인 2023.03.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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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혁진 사회부
기초의회 업무추진비에 대한 제보 아닌 제보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지역 구의원의 업무추진비 연말 몰아 쓰기에 대한 내용이다. 연도 말에 업추비 잔액을 반납해야 해 각종 핑계로 업추비를 과하게 소진하고 있다는 말이다. 해당 구의원은 연말을 맞아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300만원을 결제했다. 지역 여러 한우집만 골라서 집행했다.

해당 의원이 소속된 의회를 시작으로 대구 나머지 구의회의 지난 연말께 자료를 살펴봤다. 겸사겸사 함께 공개된 의회사무국 의정운영공통경비도 정리했다. 예산 반납일이 다가올수록 일부 기초의원들의 씀씀이는 커졌다. 일부 의회사무국에선 1천200만원 상당의 기념품을 몰아 사거나 보름마다 100만 원어치 다과를 구입해 잔고를 비웠다. 사무용품도 수백만 원어치씩 통 크게 채워 넣었다.

전현직 구의원이나 그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매장 등은 좋은 회식처이자 간식 구입처였다.

지방선거 직후까지의 자료도 정리해봤다. 낙선하거나 출마하지 않은 일부 기초의원들은 임기 끝이 다가와서야 지역현안을 살피겠다며 연일 각종 간담회를 열었다. 조금 더 일찍 살폈더라면 낙선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산 자료를 연초까지 확장하면 주민 세금으로 적십자 회비 등을 납부하는 관행도 드러난다. 이 역시 업무추진비 이용 규정상 문제는 없지만, 남의 돈으로 기부하는 모양새에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이에 최근에는 기관장이나 정치인이 사비를 들여 적십자회비를 내는 당연한 일이 늘어나는 추세기도 하다.

예산을 들여다볼 수록 생각보다 더 안일했던 사용 실태가 드러났다. 불법은 아니지만, 적절하지도 않은 부분들이다. 사실 오늘 내일의 일도 아니다. 연말 몰아쓰기 등은 행안부에서도 지양하도록 하고 있다. 꾸준히 문제시 됐지만, 고쳐지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부적절한 관행이 이어지고 있지만 감시는 어렵다.

대구를 비롯해 전국 기초의회의 예산 활용에 대한 감시는 주로 시민단체나 언론 등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이뤄진다. 그마저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치 않고 품이 많이 들어 제대로 된 감시를 하기 힘들다. 각 기초자치단체가 자체 감사 규칙상에 의회사무국을 감사대상기관으로 포함하고 감사를 진행하지만, 집행부 예산 심사를 의회가 주관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감사를 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원회 차원의 외부 감사도 청구가 있을 때만 작동한다. 집행부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을 하는 기초의회가 정작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결국 잔치국수를 주로 파는 작은 국숫집에서 10명이 30만 원을 결제하거나, 프랜차이즈 김밥집에서 20명이 간담회 목적으로 50만 원을 사용하는 등 일반적인 소비 상식을 벗어나는 지출이 이어져도 문제를 제기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수십회에 걸쳐 인원과 무관하게 특정 금액을 기계적으로 지출하는 등 선결제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나오더라도 마찬가지다.

꾸준한 감시 없이는 악·폐습을 끊을 수 없다. 더욱 투명하게 업무추진비를 관리하기 위한 노력과 더욱 상세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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