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란 주부
친구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사람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오래 보는 사람과 친해지고 친함이 지속되면 친구가 된다. 주로 같은 나이인 경우가 다수다. 같은 시기 때어나서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학교를 다니면 저절로 친구가 된다.

굳이 친구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많으면 좋지만, 단 한명이라도 아주 친한 ‘절친’이 있으면 세상은 외롭지 않다.

홍희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한 동네 아이였다. 집이 바로 옆에 있었다. 두 집 건너 살다가 담장 너머 집으로 이사왔다. 새 집을 크게 지었다. 홍희 부모님보다 10년은 젊은 부모님들이 빨리 돈을 모았나 보다. 새 집은 궁궐 같았고, 방도 넓고 세 개이고, 부엌도 마당도 홍희네보다 두 배 크기였다.

부러운 마음, 시샘하는 마음은 없었다. 어려서인지 순수해서였는지 자신이 스스로 만족스러웠는지, 남과 비교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크고 새 집으로 이사를 가서 옆집에 사는 것이 마냥 좋았다. 담장너머로 친구를 볼 수 있고,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가까이 있어서 좋기만 할 따름이었다.

새 집으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친구네가 대구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부모님이 젊어서 도시로 나가서 돈도 많이 벌고 아이들 공부도 잘 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았다. 홍희는 가까이 이사온 친구가 떠난다는 사실에, 같이 이사가고 싶었다. 새로운 학교, 친구를 만나고 공부를 할 친구와 같이 있고 싶었다.

밤에 부모님은 옆집 이야기를 했다. 우리도 대구로 갈까 하는 의논이어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숨죽이며 귀기울였는데 결론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기 싫었던 것 같고, 도시에 가서 무슨 일을 할지 막막하고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학력도 능력도 체력도 좋지 않은 아버지가 도시에서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고향에 계속 산다는 말에 한편으론 안도했고 한편으론 아쉬웠다. 친구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놀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으므로 더 자주, 더 많이 놀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학교갈 때 친구를 부르러 갔는데, 그 친구는 이미 다른 집에 가고 없었다. 나이 한 살 많은 친척 언니네 집에 갔다고 했다. 그 애 엄마의 약간 싸늘한 표정이 그 아이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늘 같이 가던 학교를 혼자서 걸어갔다. 어색했다. 혼자서 공동묘지를 지나가려니 무서웠다. 그 친구는 다른 아이와 함께 가면서 깔깔거렸을까, 무섭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았겠지. 홍희가 그 아이를 생각하는 만큼 홍희 생각을 했을까. 그 아이가 걸어가는 공동묘지와 홍희가 혼자서 가는 묘지는 바람과 햇살의 색깔이 다를 것이다. 동네에 같은 나이 여자아이가 두 명이나 더 있었지만 그 아이들과는 얘기도 잘 하지 않았고, 오로지 그 아이와 놀았고 더는 다른 친구가 필요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다른 아이와 가버리자 홍희는 친구가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 날 학교에서 아이들을 봐도 생기가 없었고, 먼저 알은체를 하고 놀지도 못했다. 홍희의 기운을 가라앉게 만든 그 아이, 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홍희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말이다. 홍희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홍희 스스로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들어 있었다. 교실도 운동장도 흐린 날이었다. 수업도 집중이 안 되었다. 이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듯한 적막감. 가슴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 다른 아이들로 채워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아이는 또 다른 아이와 가버렸다. 홍희는 울음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참았다. 울지는 않았다. 울면 초라할 것 같았다. 바보가 될 것 같았다. 울지 않으려 애쓰며 걸어왔다. 그 길이 그렇게 길고도 멀고도 험한 길인 줄 그 날 처음 알았다.

홍희를 따돌리고 다른 아이와 가버린 그 아이가 야속했다.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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