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인간에게 있어 '표준(標準)'이란 것은 없다. 모두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고, 각자의 삶으로 살아갈 뿐이다. 모두가 자기식대로의 프레임(frame)을 형성하고, 그 프레임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여서 등급을 나눌 수 없는 존재이다. 즉, 위와 아래로 등급을 나눌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 생각도 다르고 그들이 선호하는 것도 다르고, 그들이 추구하는 최우선 가치도 다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인간이다. 손가락이 다섯 개인 사람도. 손가락이 두 개인 사람도 모두 같은 인간이다. 남녀로 정확히 구분된 외형을 가진 사람도 있고, 구분이 잘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식욕이라는 기본 욕구를 가진 것이 사람이지만, 그런 욕구가 1도 없이 단지 살기 위해서 억지로 먹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잠을 8시간 이상 자야만 '푹 잤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잠을 4시간 이상 자고 나면 머리가 아파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가 같은 인간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 개막식에서 '인간의 표준은 없다'라고 했다. 인간은 남자는 이렇게 생겨야 하고, 여자는 저렇게 생기고 눈과 코, 손과 다리는 이렇게 생겨야 한다며 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에 맞아야만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안에서 남자는 키가 몇 센티 이상이고 얼굴 크기는 어떻고, 수염이 나고 몸에 털이 많아야만 남자라고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으로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하고, 외모는 어떠해야 하고, 성격은 온순하고, 자상하며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되고 등의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부합 해야만 여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 표준이라는 것은 없다. 피부 빛이 검은 사람도 있고 피부색이 하얀 사람도 있다. 황인종인데도 피부가 백인보다 흰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우리들의 기준에서 그들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하나가 생긴다. 나쁜 짓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판단이나 질책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규칙, 즉 법규라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의 개성을 살려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규범에 어긋나고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는 법으로써 행동의 제약을 받고, 나아가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자기 오줌을 마시면서 몸을 치유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방법은 '요료법(尿療法)'이라 불리는데 예전에 TV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그들의 행동을 보고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고, 나아가 그런 행동을 혐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행동을 함부로 잘못되었다고 말을 할 수 없다. 사회의 규범 법규에서는 그 사람을 처벌할 법이 없고, 그러한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몸에 열이 많아서 겨울에 반 팔을 입고 다닌다고 그 사람은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게 사회 법규다. 그런데 덥다고 아무것도 입지 않고, 벌거벗고 길거리를 걸어 다닌다면 그 사람은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 사회가 함께 약속해서 만든 법규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공연음란죄가 해당될 것이고, 사람들한테 알몸 상태로 몸을 노출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자기 집에서 혼자서 벌거벗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행동은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연한 장소에서 그렇게 나체로 다닐 때는 처벌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장애인들을 아주 이상하게 다룬 역사가 있었다. 장애인을 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으로 해석하며 그들을 하나의 볼거리로 쇼로, 또는 제물로 바쳐진다든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악마화 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아픈 역사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답은 될 수 없겠지만 한 가지를 제안해보고 싶다. 이해보다는 수용(受容)을 해보는 것이다. 이해는 어렵지만, 수용은 쉽다. '저 사람은 저렇게 보고, 저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구나'라며 있는 그대로 수용을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있는 그대로' 수용 받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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