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숙 시인
일주일 넘게 진행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일정이 ‘노벨 주간’ 전체 행사 중 가장 마지막에 개최된다는 ‘노벨 낭독의 밤’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계엄 사태로 인해 한국을 떠나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길이 끔찍하지 않았냐’는 첫 질문에 그녀는 “시민들 덕에 그리 끔찍하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 서 있고, 맨주먹으로 군인들을 껴안으며 말린 모습들이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모두가 걱정과 경각심을 갖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문학상 시상식만큼이나 기대되는 건 수상자들이 자신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수상 기념 연설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 제목은 ‘빛과 실’이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작가가 여덟 살에 지었다는 동시로 어릴 적부터 그녀는 예사롭지 않은 마음과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던 시기, 이십 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적어두었던 문장이 떠올랐다고 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 거의 체념했을 즈음 오월 광주에서 희생된 한 젊은 야학교사의 마지막 밤에 쓴 일기를 읽으며 자신의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두 개의 질문을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으며 죽은 자들이 산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을. 그녀가 ‘소년이 온다’를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고.

한강 작가가 마지막으로 던진 이 질문은 요즘 우리가 절절하게 겪고 느끼고 있는 질문들과 맞물려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벨문학상이라는 영광을 선물해 준 작가, 그녀가 우리에게 응원봉처럼 안겨준 질문을 기쁘게 받아든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전문을 옮겨 적어본다.

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문학을 읽고 써온 모든 시간 동안 이 경이의 순간을 되풀이해 경험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어라는 실을 통해 타인들의 폐부까지 흘러들어가 내면을 만나는 경험.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꺼내 그 실에 실어, 타인들을 향해 전류처럼 흘려 내보내는 경험.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왜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졌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