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숙 시인
세상 어딘가에는 우리를 위해 누군가 불러주는 노래와 기도가 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문구처럼 소란과 들뜸은 가라앉고 조용한 새해가 열리기를 바라본다. 당신이 보여준 영광이, 당신이 가져온 평화가 새로 시작하는 세상 모든 이들의 아침에 가득하길 기원해본다.

언제부턴가 세상을 읽는 일에 게을렀던 건 아닌지 돌아본다. 두려움 때문에 무력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들려주지 않고 보여주지 않은 마음의 이면을 읽어내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젖은 빨래를 머리에 이고 옥상으로 오르는 길, 시위하듯 팻말 하나가 계단을 막아선다. 뜯겨 나간 가장자리가 가시처럼 돋친 나무판자에 새겨진 삐뚤빼뚤한 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양이 출입 금지, 문단속 철저히’ 방방곡곡 눈이 쌓여 설국의 풍경을 연출한다는 기상청 예보가 연일 쏟아진다. 한파와 동파, 냉해 등 시설물과 농작물 피해도 우려된다며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당부도 함께 이어진다.

주변의 눈을 피해 숨겨두었던 길고양이의 밥그릇을 마당 한복판으로 끄집어낸다. 밥그릇은 바닥을 보이고 흔들리고 있는 이가 시릴까 봐 따뜻하게 데운 물을 부어준 물그릇은 한파에 꽁꽁 그릇과 함께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다.

그는 몇 해째 나와 함께 동행 한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이다. 밥알을 씹어 먹는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며칠 못 본 사이 배가 부른 듯 걱정이 불을 지핀다. 애가 타들어 간다.

참치 통조림 하나를 들고 와 길고양이 앞에 가만히 내려놓는다. 오랜 시간 보아왔음에도 단 한 번 경계를 풀지 않았던 그가 웬일인지 캔 속으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침 튀기듯 떨어져 나간 한 점까지 혓바닥으로 샅샅이 훑어 먹는다. 바닥의 먼지들도 함께 입안으로 쓸려 들어간다. 연신 눈치를 살핀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그의 눈빛이 따라 흐른다. 한순간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은 나는 발에 난 쥐를 쫓아내느라 코에 침을 몇 번이나 찍어 발랐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일어설 수 없다.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그를 해치려 드는 것인 줄 오해하고 멀리 달아날까 봐 두려웠던 까닭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꼬리를 내린 채 쪼그려 앉아 얻어먹는 눈칫밥이라 할지라도 캔 하나를 다 비우는 동안만이라도 속이 따뜻했으면 하고 바랐다.

기후 우울증이란 말이 생각난다. 지구에 다가오는 기후 위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개인이 막을 방법이 없어서 슬픔이나 분노, 상실감등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우울증의 일종이다. 본인과 가족, 친구를 비롯해 국가와 인류에도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 여겨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는 달리 개인의 노력으로는 환경파괴와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히 날씨로 인해 느끼는 우울함과는 다르다고 한다.

이처럼 기후뿐 아니라 일상 또한 요즘처럼 불안과 무력감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에 의해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절인 때가 또 있었던가 싶다. 내가 못 본 것,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들은 없는지 생각하면서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계절 앞에 서 있다.

나 하나 노력한다고 이 세상 전부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의 세상은 바뀔 것이라 믿어본다. 그리고 그 세상은 생각보다 넓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이들은 대부분 사각지대에 가려진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시야와 감각은 한정적이어서 놓치는 것들이 많은 데 비해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놓치는 것이 많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남다른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해가 지나간다는 것이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면 좋겠다. 그래서 마음과 기억 그리고 관심의 사각지대에 쌓인 먼지를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사각지대에 숨겨진 것도 새해엔 보다 잘 볼 있게 되면 좋겠다.

한해가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단 며칠을 남겨두고 십이월이 저물어가고 있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찾아 귀 기울여본다. 다 떼어내고 마지막 남은 막장의 달력 뒷장에 새 달력을 덧대어 걸어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라 믿으며 고여 있지 않는 한 흐르는 강물은 바다로 가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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