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대제국이 전쟁으로 망하는 데 며칠이 걸렸을까?
병자호란, 8일 만에 한성 함락
57일 버틸 때 백성들 도륙 당해
임진왜란 당시 선조 ‘의주몽진’
왜군 무혈입성 후 딱 20일 걸려
발해, 거란족 침입 12일 만에
백제, 나당연합군에 의해 3일만
술탄2세에 침략 당한 로마제국
2206년 역사 57일만에 사라져

그림-절벽아래로
동로마제국까지 2천200년 이상 이어온 유구한 역사의 로마제국이 망하는 대는 겨우 57일 걸렸다. 그림 이대영

부자(富者)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것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 미국, 중국 혹은 일본과 같은 경제대국은 아무리 망해도 30년은 가겠지요?”

“천만에. 당장 역사책을 펴놓고 전쟁(戰爭)으로 망했던 모습들을 확인해보세요.”

우리나라의 역사부터 타임라인(time line)을 거꾸로 올라가면서 알아본다. 6·25전쟁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을 넘어 쳐들어 왔지요. 6월 28일에 서울은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졌으니 3일만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어떠했나? 1636년 12월 28일 청나라 숭덕제(崇德帝, 홍타이지)가 4만7천173명의 병력으로 친정(親征)을 한 지 8일 만에 한성이 함락(陷落)되었다. 국왕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신해 버티기를 했으나 결국 1637년 2월 24일에 삼전도(三田渡)에서 “구고두삼배(九叩頭三拜)”라는 항복의식을 치른 뒤에 얻는 교훈은 “국가사직이 안에서 썩고, 밖에서 침입해 나라가 내려앉는다(內腐招戰,而國墜亡).” 그래도 57일간 버티는 바람에 그만큼 죄없는 백성들은 도륙당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4월 13일 부산포에 침입하여 5월 2일에 국왕 선조(宣祖)는 야음(夜陰)을 틈타 혼자 살겠다고 ‘의주몽진(義州蒙塵)’이란 이름으로 달아났다. 텅텅 빈 한성을 싱겁게 무혈입성한 왜군은 도륙과 방화로 분탕(焚蕩) 잔치를 했다. 그렇게 망하는데 딱 20일이 걸렸다.

역사가들조차도 많이 궁금해하던 발해의 망국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926년 12월 31일에 거란족장(太祖) 야률아보기(耶律阿保機)가 정예기병 1만 명으로 부여성(扶餘城)을 침입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때 발해 국왕 대인선(생몰연도미상)은 고민하고 있는데, 노상(老相, 나중에 東丹國 國王이 됨) 장군이 자신에게 3만 대군을 내주면 물리치겠다고 자청해 신임하고 보냈다. 뭔가 이상하여 책사였던 야율할저(耶律轄底)를 찾아 거란족의 침공에 대한 해결방책을 논의하고자 했으나 그는 이미 도주해서 거란족으로 돌아갔다. 그때야 야율할저가 책사(策士)가 아니라 첩자(諜者)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여성(扶餘城)에서 홀한성(忽汗城 一名 上京城)까지 400㎞ 장정에 노상 장군(老相將軍)의 3만 병정은 방어는커녕 거란족 병력에 가세해서 상경성(上京城)을 1월 9일에 포위했다. 국가비상동원령을 내렸으나 발해 귀족들은 거란국 혹은 고려국에 귀순만 할뿐 동원에 응하지 않았다. 겨우 3일은 버티었으나 끝내는 1월 12일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틀 뒤 1월 14일에 비로소 항복례(降伏禮)로 “하얀 옷을 입고, 밧줄로 자신의 몸을 묶으며, 양을 뒤에 끌고, 그 뒤에는 대신 300명을 데리고 항복의식을 올렸다(王素服藁索牽羊, 率臣遼主三百餘人出降).”고 발해고(渤海考)에서 적고 있다(柳得恭, 渤海考 : “...正月辛未, 王素服藁索牽羊, 率臣遼主三百餘人出降. 遼主禮而遣之”).

당시 무식한 촌노들의 표현으로 “좀 다 먹은 쌀자루만을 쥐고있었다.”고. 머리에 조금이라도 먹물이 들었다는 사람들은 “백성들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하면 국가사직은 쓰려지고 만다(民無信, 國不立).”고 했다. 발해(渤海)는 이렇게 12일 만에 망했다. 그래도 오래 버틴 셈이다. 백제는 나당연합군이 기벌포(伎伐浦, 오늘날 서천군 장황읍)에 상륙한 날짜가 660년 8월 29일. 웅진성(熊津城)에 서 겨우 3일을 버티다가 9월 1일에 의자왕(義慈王)은 자신의 심복이었던 예식진(615~ 672)에게 끌려나와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이 들고 있는 술잔에다가 “항복의 술(降伏酒)”을 채웠다. 그렇다면 BC 753년 건국하여 1453년 5월 29일에 동로마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멸망하기까지 2,206년간의 세계 제1의 제국으로 군림했던 로마 대제국(Roman Great Empire)도 멸망하는 데는 불과 57일이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1405~ 1453) 11세는 오스만 튀르크 술탄(Sultan) 메흐메드(Mehmed, 1432~1481) 2세에게 함락되었다.

멸망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소설 ‘황제와 술탄(2020)’을 김형오(金炯旿, 1947년생)께서. 그는 2012년까지 국회의장으로 있다가 퇴임 후 7년간 자료를 모아 2016년에 소설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34쇄의 롱테일(long-tail) 대박을 쳤다. 로마 황제의 비망록(備忘錄) 형식을 빌려서 불꽃 튀기는 전략의 대결을 한 장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그렸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48세 백전노장(百戰老將)답게 i) 육지는 개미 한마디로 못 들어오는 3중 철벽방어(鐵壁防禦)에다가 ii) 바다에도 새우 한마디도 못 들어오게 붐 쇠사슬을 설치하고 38척의 통제선으로 봉쇄를 했던 일명 ‘블록체인 전략(Bloc-Chain Strategy)’을 구사했다. 오늘날도 데이터 보안을 위해 블록체인시스템(bloc-chain system)을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에서도 블록체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에 반해 로마 황제(皇帝)에게 도전했던 이슬람 술탄 메흐메드(Mehmed) 2세는 21세의 새파란 젊은이로 패기(覇氣) 하나만은 하늘을 찔렸다. 그의 전략의 요지를 언급해 보면, i) 3주간(1453년 4월 3일부터 4월 23일까지) 함락 프로젝트(Fall Project)를 설계했다. ii) 병력은 로마 수비군(의용군 포함)은 7천 명인데 공격하는 술탄병력은 8만 명으로 10배가 참전했다. iii) 오르반(Orban)이 설계한 공성전용(攻城戰用) 포탑(砲塔, Turret), 다르다넬스 대포(Dardanelles Cannon) 70문을 특수 제작해서 사용했다. 극비공성계책(極秘攻城計策)은 성벽밑에 폭약 장전과 폭파로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에 320척의 전선(戰船)으로 로마성벽을 완전포위한다. iv) 갈라타 성탑(Galata Castle Tower), 그곳은 당시 제노바식민지였기에 3겹붐쇠사슬(boom chain)과 통제선 38척으로 봉쇄하고 있었기에 묘수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메흐메드 2세 술탄은 작전계획대로 다 추진했음에도 3중성벽도 무너뜨리지 못했고, 3중붐쇠사슬의 봉쇄를 뚫지 못했다. 결국은 3주를 탐색전에 다 허송세월을 하고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메흐메드 술탄 2세는 작전실패로 지도자 권한(leadership)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4월 19일 23:58분경 더이상 전쟁을 못 하겠다는 종전선언을 하고자 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술탄뿐만 아니라 참석자 모두가 하나 같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술탄인지 술판인지도 몰랐으며, 분명한 건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이때 이름도 모르는 젊은 신참 간부(新參 幹部) 한 명이 메흐메드 2세 술탄에게 따질 듯이 대들었다. 그의 주장은 i) 여기서 로마 제국에게 형편없이 깨졌다는 실상을 내보여, 로마제국 군대에게 승리를 자만하도록 심리전(心理戰, psychological warfare)을 전개하자고. 실제로 여기서 도전을 중단한다면 역사적 비웃음만 살 것이다. ii) 모두가 다 아는 뻔한 작전만으로 세월을 보낼 게 아니다. iii) 10년 전에도 베네치아(Venice)에서 배가 육지로 올라갔다. 바이킹 해적(Viking pirate)들은 빈번히 배를 육지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금각만(Golden Horn Bay) 입구에 쇠사슬이 설치되었다고 왜 갈라타 언덕(Galata Hill) 200m를 배가 왜 못 넘어갑니까? 모두가 조용했다. 그리고 포기할 게 아니라 심기일전(心氣一轉)해야 한다고.

술탄이 참패했다는 소문과 같이 육전(陸戰)이고 해전(海戰)도 2일간 조용히 개미 한 마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문에 가세해 술탄이 패전으로 민중 반란을 피해 도주를 했다는 등... 별의별 헛소문만이 로마 황제 귀에 들어갔다. 1453년 4월 20일 그날 심야(深夜)에 해발 200m의 갈라타 언덕(Galata Hill, 제노바의 식민지)에다가 통나무 레일(log rail)을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기름칠하는 사람들 뒤에는 베식타스(Besiktas)의 배들이 갈라타 성벽(Galata Wall)으로 300척이 다 옮겨졌다. 전선(warship) 모두가 금각만(金角灣, Golden HornBay)에 ‘연잎에 물방울처럼(like water droplets on a lotus leaf)’ 띄워졌다. 곧바로 로마 황제의 뒤성벽으로 전선(戰船)들이 쏜살같이 향했다. 2일간 주야로 ‘소낙비앞 천둥과 번개’ 같은 포성과 번쩍임으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1453년 5월 29일 04:00경에 승전고(勝戰鼓)가 울렸다. 술탄과 병정은 동쪽 하늘의 떠 있는 그믐달과 샛별을 보면서 “이제 오스만튀르크의 새벽이 밝아온다.”고 외쳤다.

이렇게 로마제국의 2,206년 역사는 57일 만에 역사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짓궂은 친구가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 전쟁함수(歷史的戰爭函數, historical war function)로 오늘날 미국(美國) 혹은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망하는데 며칠걸리겠느냐?” 역사적으로 봐서 로마는 2206년이고 미국은 미국건국(美國建國)은 1776년 7월 4일에서 계산하면 248년이기에 6~7일(57일×11.24%) 정도로 산출된다. 우리나라는 산출할 것도 없이, i) 1950년 6·25전쟁 때 3일 혹은 ii)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庚戌國恥)처럼 아무런 항전 한번도 못하고 넘겨주었던 전례(前例)를 제시하여 답변을 대신한다.
 

 
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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