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분위기·감정…눈으로 전달하는 ‘色의 마법’


바람 속에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는 새싹을 품은 싱긋한 흙 내음이 묻어난다. 설레는 마음에 오랜만에 여유를 내어 영화 한 편을 골랐다. 이 계절의 생동감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발랄한 애니메이션 영화만 한 것이 없겠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색감과 연출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힐링’이 되기 때문이다.
색감, 인간 심리에 직관적 자극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강력한 스토리텔링 도구로 쓰여
필자의 직업적 특성상 영화를 볼 때면, 가장 먼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요소가 색감인데, 작품에서 가장 본질적인 시나리오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배우, 대사, 스토리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시각적 요소를 통해 8할 이상이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시각적 연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색감은 인간 심리에 매우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자극이다. 따라서, 특정한 색감은 평생에 잊히지 않는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삶을 변화시키는 인사이트가 될 수도, 혹은 좋지 않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을 만큼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러한 색채심리는 애니메이션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색감이 의미하는 바와 의도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감상한다면, 그 깊이감과 시나리오에 대한 감상이 훨씬 더 풍부해질 수있다.
예컨대, 대중들에게 많은 혹평을 받았던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를 보면, 색감 연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인어공주 원작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밝고 러블리한 환상적인 바닷속 세계가 아닌, 압도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느낌을 주는 저채도의 심해 분위기로 연출된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더구나, 주인공 아리엘의 찰랑이는 빨간 머리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과 아름다운 공주를 상징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원작과는 다른 시도였는지, 브라운 톤의 레게 스타일로 표현이 되면서 아쉬움을 넘어 혹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애니, 시각적 스토리텔링의 정점
의미·의도 생각하며 감상한다면
더욱 깊은 감동 받을 수 있어
지난 겨울에도 여전히 사랑받았던 겨울 왕국(Frozen, 2013)*의 미술감독 마이클 지아모(Michael Giaimo)는 ‘스칸디나비아 풍의 로맨틱하고도 강렬한 분위기’를 목표로 설정했다. 그는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의 자연환경을 참고하여, 빛이 반사되는 얼음의 질감과 눈이 쌓이는 방식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엘사의 마법이 발현될 때의 푸른색과 안나의 따뜻한 색감이 대비를 이루도록 하여, 캐릭터의 감정선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미술적 결정이 영화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이온 킹(The Lion King, 1994)*의 색채와 조명 설계를 한 미술감독 앤디 개스킬(Andy Gaskill)은 라이온 킹에서 ‘아프리카 대자연의 웅장함’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 세렝게티의 빛과 색감을 철저히 연구했다고 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스카가 심바와 대결하는 장면에서는 붉은 노을과 어두운 그림자를 적극 활용하여, 갈등의 강도를 높였다. 이러한 색채와 조명의 활용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라, 감정적 서사를 강화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했다.
각 감정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 역시, 감정 시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피트 닥터(Pete Docter) 감독의 연출은 감정을 캐릭터화하는 독창적인 비주얼을 통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술감독 랄프 이글스턴(Ralph Eggleston)은 감정들의 성격을 반영하여 각 캐릭터에 서로 다른 텍스처를 부여했다. 기쁨(Joy)은 빛이 나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슬픔(Sadness)은 부드러운 벨벳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연출적, 미술적 선택이 감정의 본질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인간 내면이 아닌 자연과 캐릭터의 상호작용을 표현한 애니메이션도 있다. 모아나(Moana, 2016)의 론 클레멘츠(Ron Clements)와 존 머스커(John Musker) 감독은 모아나에서 바다를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처럼 표현하고자 했다. 미술감독 이안 구딩(Ian Gooding)과 협력하여 바다의 움직임이 모아나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설정했고, 이를 통해 서사적으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단순한 환경이 아니라 감정을 지닌 요소로서 자연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는 애니메이션 연출이 어떻게 서사를 강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철학적 메시지가 있어 독창적 시나리오의 영화 코코(Coco, 2017)도 있다. 감독 리 언크리치(Lee Unkrich)와 미술감독 할리 앤트니(Harley Jessup)는 코코에서 ‘죽은 자의 날(Dia de los Muertos)’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밀접한 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조명이 캐릭터의 감정선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명확히 대비시켜 영화의 주제를 강하게 전달했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미술감독과 연출은 단순한 제작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작품의 감성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색채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색감 활용, 장면 연출 기법, 시대와 장르에 따른 색채 변화는 애니메이션의 몰입도를 높이고,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달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즉, 색감은 단순한 디자인 요소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강력한 도구로 이해해야 한다.
디즈니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이들의 협업이 얼마나 정교하게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앞으로 애니메이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미술감독과 연출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그들의 창의성과 협업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것이다. 오늘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각 장면과 캐릭터들의 색감에 대한 메시지도 함께 고려해서 감상해보면 어떨까?
류지희<디자이너·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