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혼란한 국내외 정세에 더하여 큰 산불이 전국 곳곳을 휩쓸었다. 피해가 너무 커서 완전 회복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조차 어렵다.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의 정치도 요원한 것 같고 미국 발 리스크는 변수가 아니라 이제 상수가 되었다. 지구 반대편 전쟁도 계속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으니 온 세상이 소란스럽다.
올해 새봄에는 하동·광양으로 봄꽃나들이를 계획했건만, 나라밖 일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산불에 다들 울고 있으니 그럴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런 어렵고 혼란한 상황에서도 일상은 이어지고 모두가 맡은 바 역할은 해야 하는 법. 고맙게도 새봄이면 우리를 들뜨게 만드는 통영국제음악제가 올해도 열렸다. 몇 번을 망설이다 폐막 즈음에 찾았다.
폐막 공연은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이었다.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폭격으로 파괴된 영국 성 미카엘 대성당 복원 헌당식을 위한 위촉 작품으로 만들어 졌다. 거기에 작곡자가 전쟁과 관련되어 세상을 떠난 4명의 친구들을 추모하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한다.
초연당시 3명의 독창자를 영국, 독일, 러시아 이렇게 전쟁 당사국 성악가로 초대하였으나 러시아의 명 소프라노 ‘갈리나 비시네프스카야’는 소련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하여 다른 성악가로 대체된 일이 있었다 한다. 소련당국이 출국을 막은 이유는 갈리나가 당시 소련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러시아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아내이기도 했지만 그 역시 남편 못지않게 독재정권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나는 음악제 폐막공연으로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을 골랐던 것은 모험이자 용감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평소 익숙하지 않은 이 작품을 듣기위해 시간과 돈을 쓰기가 선뜻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음악을 통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더 좋은 날이 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더하여 어떤 자신감이 없었다면 결정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 된다.
결론적으로 음악회는 감동적이었다. 음악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 역시 이런 마음을 읽고 깊이 공감하였다고 나는 느낀다.
한국의 마에스트라 성시연이 이끄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성악가들의 완성도 역시 매우 높아 나는 오기를 잘했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음악회를 감상했다.
나는 폐막 전날 도착하여 젊은 지휘자 윤한결이 이끄는 ‘K’ARTS 신포니에타 with 황수미‘도 감상하였다.
이 공연 역시 익숙하지 않은 현대음악(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현대음악이기는 하지만) 중심이어서 나를 망설이게 하였다. 그러나 결론은 내가 기억하기로 가장 재미있게 감상한 현대음악이었다.
그 이유는 요즘 떠오르고 있는 지휘자 윤한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음악을 잘 파악하고 또한 그것을 매우 섬세하고 확실히 표현했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현대음악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노래하니 생소하고 난해하다는 인상을 주는 음악도 매우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다음날의 폐막공연에서는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모든 출연진이 훌륭했지만 자랑스러운 우리의 바리톤 김기훈은 완벽한 발성에 더하여 가사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표정 연기까지 더하여 브리튼의 음악을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시연의 지휘를 보면서 어쩌면 우리보다 음악의 본고장에서 더 그의 예술성을 알아봐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의 행보를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성시연의 지휘는 매우 설득력 있고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쓰기에 따라서 더 큰 보석(이미 중요한 커리어를 많이 쌓았지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세계적 지휘자들은 오페라무대를 통하여 가장 많이 배웠다고 한다. 오페라는 음악을 만들어 가는 능력에 더하여 텍스트를 깊이 이해해야하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기악과 변수가 많은 성악을 함께, 게다가 때로는 발레까지 이끌고 가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좋은 오페라 지휘자는 귀하다.
그리고 실력이 검증된 마에스트로라고 해도 모든 오페라를 다 완벽히 지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페라의 성격에 따라 각기 잘 다루는 영역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내에서 벌어지는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외국 지휘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그런 면에서 최근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는 더 돋보인다)
한국 지휘계는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저변이 넓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언어의 장벽도 없고 기본기도 대단히 튼튼한 젊은 지휘자들이 흔히 말하듯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많은 선배 대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준비된 그들도 멋진 오페라무대를 통하여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형국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