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외형
나무 줄기가 몸통 칭칭 감아
용틀임 하듯 하늘 향해 솟아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 하듯
약간 기울어진 모습 특징

사진
순천 송광사 산내 암자인 천자암의 나한전 옆에 있는 쌍향수 모습. 196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화창한 봄날 여행은 어디를 가나 좋다. 자연의 기운을 흠뻑 느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지난 9일 전라도 순천의 조계산 송광사를 다녀왔다. 송광사 가는 길 주변에는 벚꽃이 한창이었고, 활엽수가 대부분인 송광사 주위 조계산 초목은 연둣빛 새싹을 본격적으로 틔우기 시작했다. 송광사 대웅전 앞 매실나무인 송광매(수령 300년 정도)의 꽃은 이미 져버렸다.

대구 남구문화원이 마련한 송광사 답사여행에 따라 간 여정이었다. 16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인 송광사는 여러 번 다녀왔다. 가장 최근에 간 것은 2019년 여름 배롱나무꽃을 취재하러 갔을 때다.

이번 답사여행은 송광사에서 출가한 종오 스님(청도 성지암 주지)이 안내했다. 덕분에 송광사 주지 스님 방에서 주지 스님이 우려 주는 맛있는 보이차를 마셨고, 출입이 통제되는 방장 스님 거처(상사당)를 방문해 현묵 방장스님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주지 스님은 송광사가 삼다(三多)·삼무(三無)로 유명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삼다는 스님과 전각, 소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소나무가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소나무가 매우 많아 사찰 이름도 ‘송광사(松廣寺)’로 지었다고 했다. 지금은 주위에 소나무가 많은 것은 아니어서인지, 사찰 안내를 맡은 스님은 스님과 전각, 보물을 세 가지로 꼽기도 했다. 삼무, 즉 없는 세 가지는 석탑과 풍경, 주련이라고 했다. 석탑이 없는 것은 송광사 터가 연꽃 모양 터이기 때문에 석탑을 세우면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주련이나 풍경은 참선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송광사를 처음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1996년 늦은 봄이었을 것이다. 홀로 떠난 전라도 무작정 여행이었는데, 첫날 찾은 곳이 송광사였다. 송광사에 들러 둘러보다 사찰 옆 냇가를 건너는, 보따리를 양손에 든 아주머니를 만나 짐 하나를 받아들어 주며 그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개울을 건너 산비탈 길을 한참 올라 도착한 곳은 인월암이었다. 그곳 스님인 원순 스님은 자신도 빈 암자를 도배하고 인월암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날이라며, 암자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그날 암자에서 좌선을 하며 새벽을 맞았는데, 오전 5시쯤 갑자기 수천 마리의 새들이 함께 울어대는 듯한, 엄청난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새소리가 너무나 듣기가 좋았다. 하나도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환희심이 일어나는 듯했다. 한참 동안 새소리와 몰아일체가 되는 시간을 보냈다.

이날 이후 원순 스님은 인월암에 머물며 자신이 번역한 불경 서적을 출간할 때마다 보내주곤 했다. ‘명추회요’ ‘초발심자경문’ ‘도서’ ‘선요’ ‘서장’ 등. 그 이후에도 몇 번 인월암을 찾았는데, 이번에 원순 스님 소식을 물으니 스님은 송광사를 떠나고, 인월암도 2023년 3월에 불이 나 모두 타버렸다고 했다. 원순 스님은 인월암에 머물다 2022년 부산 동명불원 주지로 취임한 모양이다.

◇보조국사와 금나라 왕자(담당국사)가 꽂은 향나무

이번에는 일행이 송광사 암자인 불일암을 갈 때, 나는 따로 천자암 쌍향수(雙香樹)를 보러 갔다. 향나무를 취재할 때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 쌍향수를 알게 되어 찾아가보려고 했었는데, 결국 만나보지 못한 나무였다. 그래서 이번에 종오 스님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걸어서는 못 간다며 자신의 상좌 스님 차를 이용해 갔다 오라고 배려했다. 덕분에 한 시간 정도 만에 천자암을 다녀올 수 있었고, 독특한 수형의 수령 800년 향나무(천연기념물)를 직접 보게 되었다.

천자암은 송광사 산문을 나와 왼쪽 도로를 따라 한참 가다 마을을 지나고 험한 편도 길을 따라 올라가야 했다. 막바지에 있는, 최근에 개통한 도로 덕분에 암자 바로 옆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갈 수 있었다. 산길로는 천자암에서 송광사까지 3.4㎞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

천자암 나한전 옆, 대웅전 뒤편 동쪽에 자리한 쌍향수는 사진으로만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고 볼만했다. 두 그루가 각기 용틀임을 하며 나란히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데, 나한전 쪽으로 약간 기운 모습이었다. 몸통 줄기는 굵은 구렁이나 용이 칭칭 감고 있는 듯했는데, 다른 어떤 향나무 고목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3분의 1 정도는 치료를 했는지 짙은 갈색으로 칠한 듯 보이는데, 다른 부분과 어우러져 매우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신비로운 전설

고려시대 보조국사와 그 제자

中서 돌아올때 짚고 온 지팡이

나란히 꽂은 것이 현재 쌍향수로

줄기에 손 대면 극락行 전설도

쌍향수의 높이는 12.5m 정도. 어른 가슴높이 나무 둘레는 두 나무가 각각 3.98m와 3.24m라고 한다. 암자 입구에 들어서면 전각 사이로 우뚝 솟은 이 나무가 눈에 바로 들어온다.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1158~1210)와 그 제자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자랐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향나무의 수령은 800여 년.

보조 지눌은 중국 금나라에 유학을 했었는데, 유학 당시 금나라 왕비가 병을 앓고 있었다. 이때 금나라의 왕인 장종(章宗)은 지눌에게 왕비의 병이 낫도록 기도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눌은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렸고, 결국 왕비의 병이 쾌유되었다. 장종은 너무나 기뻐 지눌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 하나를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사양하다 지눌은 결국 장종의 아들 중 가장 총명한 태자를 제자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장종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그래서 지눌은 나중에 고려 국사가 된 담당과 함께 고려로 돌아왔다. 고려에 온 담당은 수행처를 찾다가 순천 조계산 자락에 이르게 되고, 지금의 천자암 자리에 터를 잡고 암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에 터를 잡고 암자를 건립할 때 지눌과 담당이 쥐고 다니던 향나무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라났고, 지금의 쌍향수가 되었다고 한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에 있는 천자암은 송광사의 제9세 국사인 담당국사가 창건했는데, 담당이 금나라 왕자였으므로 천자암(天子庵)이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나무의 줄기는 엿가락 꼬듯이 꼬여 올라가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닮았다. 이 나무의 줄기에 손을 대면 극락을 간다는 전설이 있어 지나가는 길손들이 오가다 손을 댔다고 하며, 나무의 모양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해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천연기념물 88호

백두산 등지서 자라는 굽향나무과

함경북도 명천군서 군락 이뤄

남쪽에 존재하는 유일한 노거수

천자암 쌍향수는 여러 가지 향나무 중 곱향나무에 속한다. 곱향나무는 백두산 등지에서 자라는 향나무다. 북한의 함경북도 명천군에는 군락을 이루는 곱향나무 자생지가 있는데, 북한 천연기념물 제319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남쪽에는 천자암 쌍향수 말고는 노거수가 없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1962년)돼 있다.

이 쌍향수는 지난 3월 16일 낮에 천자암 요사채에서 화재가 일어나 불타버릴 뻔했다. 다행히 강풍이 불지 않고 그 전에 조금 내린 비로 낙엽이 젖어있어 산불로 번지지 않은데다, 신속한 대처로 요사채만 태우고 진화되었다. 불탄 요사채 뒤편에 목조건물인 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쌍향수가 있다.

◇송광사 3대 명물

송광사에는 3대 명물이 전하는데, 그 첫째가 천자암 쌍향수이다. 둘째가 비사리구시, 그리고 셋째는 능견난사이다. 비사리구시는 사찰의 큰 행사 때 대중의 밥을 담아두는 목제 용기다. 느티나무로 만들었으며, 이 구시(구유)에는 쌀 7가마분의 밥(4천명 분)을 담을 수 있다. 승보전 옆에 놓여있다.

능견난사는 원감국사(1226~1292)가 원나라에서 가져왔다는, 놋쇠로 만든 그릇 세트. 이 그릇들을 모두 포개어 놓아도 딱 들어맞을 정도로 정교함이 탁월하다. 훗날 조선 숙종이 똑같은 그릇을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하는 것을 보는 “능히 볼 수는 있어도 그 이치를 알기는 어렵구나”라며 ‘능견난사(能見難思)’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한다. 초기에는 500개였으나 현재는 29개만 남아있다.
 

 

글·사진=김봉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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